달리는 길 양쪽은 모두 사구(沙丘)를 이루고 있었다.
한족 자원 안내원이 "사추"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라고 하여서 내가 아마도
"사구(沙丘)"이리라고 했더니 웃으며 맞다고 반가워했다.
토문, 도문, 두만, 투먼 부분에서도 그의 발음과 지형 설명에는 다소 혼란이 있어서
길 눈이 어두운 첫 방문객에게는 곤혹감을 주었으나 그게 의도적 오독은 아니었으리라
짐작을 한다.
그러나 위의 설명판에서도 보듯이 도문과 두만이 오락가락하고 설명하는 사람의
발음이 또 애매했는데---, 그래 이 또한 요즈음 인문학에서 유행하는 말처럼
경계의 모호성이 아니겠는가.
내 친구 한사람은 내가 이 곳으로 떠나기 전에 송별의 자리를 마련해 주면서
굳이 그가 쓴 "아, 백두산"이라는 글을 보여주고,
도문과 두만, 이도백하에서 오도백하까지 피끓는 설명을 나에게 해 주었지만 짧은
여행기에 재론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의도적 오독"이니, "경계의 모호성"이라---,
말을 하고 나니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문학 쟁론이 생각난다.
하지만 눈 앞에 전개되고 있는 이 엄혹한 구조주의적 판세를 목도하고 보니
그런 담론들이 모두 다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니야, 그래도 인문쟁이들이 우선 나서야하는 것이야."
내 친구가 팔을 걷어부치며 나를 힐난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여간 네 땅, 내 땅 구별과는 관계없이 넓고 긴 지역에 선사 이래로 펼쳐져
있는 저 신비의 모래 언덕들은 내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장관이었는데
중국 쪽 땅에는 공원도 만들어져 있었으나 아직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방천에서 러시아 쪽을 보니 꽤 큰 국경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고 기관차가 긴 꼬리를
달고 정차해 있었다.
그 지역이 아마 "하싼"이라는 이름을 지난 세기부터 달기 시작했지만 그 보다도
훨씬 오래전에는 "불멸의 영웅 이순신"이 녹둔도에서 야인들과 겨루며 내다 본 땅이
아니련가.
사실은 아까 점심을 먹었던 "경신 식당" 인근도 역사의 자취를 찾자면 "안드레아
김대건 성인"께서 지나다니시고 머물기도 했던 역사적 흔적이 있었고 그곳에는
가톨릭 교회가 서 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예전에는 "경신 포구"라고 하여서 큰 배가 드나들던 곳이었다고 한다.
나진, 선봉 공단은 계획만 요란했고 공장 굴뚝에서 연기는 상기 아니 일었는데,
이 곳 흑룡강 신문을 보니 거기 개설된 카지노에 중국 사람들이 많이 가서 가산을
탕진한 경우도 있고 하여 요즈음은 해관을 통과 하는데에도 검사가 까다로워졌고
종내에는 외국과 합작으로 문을 연 그 카지노가 문을 닫았다던가---.
(왼 쪽은 러시아, 오른 쪽은 북한, 사진을 찍은 곳은 중국 땅이었다. 이 곳을 준설하면
예전처럼 큰 선박이 드나들어서 북한이 큰 이득을 볼 수있는 기회의 땅이라는데 아직
그 기회는 도래치 않고 있었다. 하늘이 주신 기회도 사람이 완성하는 것이어늘---.)
(금 삼각지, 그러니까 골든 트라이앵글을 표방하면서도 한중러 이외에 일본의 상업적
존재를 부각코자 하는 인상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일본해라니---.자원 봉사자는
그러니까 "동해이지요"라고 하며 깊은 이해를 보여주었다.)
방천에서 나진까지 얼마나 걸리더냐고 그 곳을 갔다온 사람에게 내가 물어보았더니
4시간 반이 걸리더라는 대답이 나왔다.
거리보다도 도로 사정이 그렇단다.
(강을 건너면 북녘 땅---, 이 곳 望海閣은 입장료 수입부터---.)
돌아오는 길은 웬일인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보니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UN 사무처 직원을 뽑는 비율은 보통 800:1의 경쟁인데 UNDP가 제대로 가동하면
한국 출신의 프리미엄 가능성도 있다.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와 세금에 비해서 연봉은 6-7만 불에 불과하지만 세금이
모두 면제되고 정년 보장에 여러 가지로 유틸리티의 사용에 특전이 있다.
아이들이 돈만 생각하지 말고 세계의 공복(公僕)인 이런 보람있는 일에 종사하면
얼마나 좋았으랴.
교회의 장로인 내 친구의 총명한 여식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하이 커미셔너”,
그러니까 "고등 판무관"을 하고 있어서 스위스의 제네바에 살고 있다.
하는 일도 참으로 보람이 있거니와 세계의 공무원이니 우리 식으로 말하면 진짜로
크게 출세를 한 셈이다.
가문의 영광이 따로 있겠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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