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김승옥의 "싸게 사들이기"를 생각하며.(2-1)

원평재 2005. 4. 24. 08:10

(진학 소학교와 연변 대학 인근에 있는 이 곳에는 북한 서적들이 많았다)

 

연길에 와서 60년대 식이니 70년대 식이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이 곳에서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격이나 개성이나 특징이나

언필칭 능력과는 하등 상관이 없이 발화자의 감상이나 내부 조응을

자기나름으로 소화시키는 것일지라도 표현은 조심스럽고 삼가해야할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전제하고나면 연길에서 또 할 말은 별로 남지 않는다.

비즈니스 맨들도 그런 표현의 성역을 지켜야한다면 사업 이야기를

꺼내기가 수월치 않을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60년대식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는 서울의 60년대식으로 시작되지만 연길의 풍경에서

촉발된 서사이고 종내에는 연길 이야기와 섞이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냥 가슴 풀어헤친 기분으로 내 젊은날의 초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연길의 오늘을 한국의 60년대에 빗댔느냐고 말한다면

천부당 만부당이다.

 

내 60년대 이야기는 지금은 절필한지 오래된 작가 김승옥이

청춘시절에 끄적였던 위대한 단편집, "서울, 1964년 겨울"을

빙자코자 하는데, 출간된 년대야 당연히 60년대였다.

 

지금은 어눌해진 이 달변의 작가가 일본 땅에서 태어난 것은

1941년이었고 터질듯한 자의식을 누에 고치처럼  자신의 속에

품고 앉아서 글을 쓴 연대가 60년대였으니 그보다 조금 늦게

태어나서 다소 편안한 자세로 그의 자의식을 비단 실 뽑듯

되새김질하며 또 실을 뽑고난 번데기까지 만끽한 나는

그런 점에서는 행운아인 셈이었다.

 

내 기억은 안개처럼 몽롱하고 몽환적이지만 아마도 나는 당시

그 단편집 속의 "무진기행" 에 나오는,

시골 구석으로 쫓기듯 내려온 작품 속의 음악선생을 멋데로

상상하며 내 젊은날의 좌절 속에서 음습한 수음의 동작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싸게 사들이기"라는 단편은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책을 싸게

사모으는 대학생이 벌이는 도시 뒷골목의 20세기 모험담이다.

탐욕스럽게 생긴 곰보 영감이 주인인 헌책방에서 그 대학생은

눈에 들어오는 괜찮은 책이 있으면 얼른 침을 발라 한 페이지를

찢어낸 다음 책방 주인에게 다가간다.

 

거래가 성립될 즈음, 그는 찢어진 페이지를 들이대면서 값을

후려친다.

이 것이 단순한 헌 책방 이야기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대학생을

탓하고 곰보 주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리라.

그러나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치 않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탐욕스러운 인상의 곰보 영감에게는 나이 차이가 큰 육덕좋은

마누라가 있고 그녀의 눈빛도 항상 탐욕과 욕정으로 이글거리고

있다.

대학생 주인공은 이 욕정의 마누라를 "낮거리"로 또한 후려쳤던

것 같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결국 작가의 목소리는 물질적 욕망과 욕구에 가득한 산업사회의

60년대 식을 자의식에 가득한 젊은이를 통하여 능멸하고 능욕한

것이었다.

 

(연길의 신화서적은 서울의 교보와 같은 존재이다. 규모는 작지만 위상은 비슷하다.)

 

1964년도는 한국에서 한일 협정 비준 반대와 한미 행협 개정을

요구한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계엄령에 짙밟히고,

사회적으로는 산업사회의 도래와 이에따른 농촌 사회의 붕괴가

급속도로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다이나믹한 사람들에게는 미증유의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재미에

눈뜰 무렵이었고 자의식 가득한 청년들에게는 좌절과 절망에

몸서리치며 마스터베이션이라도 해야될 사정이 있었다.

 

내가 순례한 헌책방들의 궤적도 이와같은 분위기 속의 독도법에

다름아니었다.

그 행동반경은 탈출구가 없던 내 청춘시절의 순례역정이기도 했고

또 어쩌면 엿장사의 가위 소리에 얼굴을 내밀고 거래 되곤했다던

시골 농가의 잠자던 국보급 전적들,

예컨데 "훈민정음 해례본" 같은 횡재가 헌책방까지 묻어들어오지나

않았을까---를 꿈 꾼 가난한 사행심까지 교활하게 포함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때는 로토 복권 같은게 없었으니 헌 책방에서 값비싼 고 서적이나

건지는 수 밖에 창백한 지성인이 팔자를 고칠 재간은 없었다.

과연 시골 전적이나 먼지를 뒤집어 쓴 옛 문집 가운데에서 횡재가

나왔다는 전설이 횡행하던 시절이었다.

 

그 때 일반적인 헌 책들의 값은 어떤 수준이었을까?

그리고 "폐허" 동인지나 "장미촌"같은 수준은 언감생심이었으나

그래도 족보가 있는 해묵은 잡지, 예컨데 "현대문학""사상계""자유문학"

같은건 그 값이 지금으로 치면 어느정도였을까?

아마도 설렁탕이나 짜장연 곱배기 한그릇 값?

 

내가 여기 연길의 헌책방을 누비는 까닭은 이제와서 겉으로는

다소 어수룩하게 보이는 이 도시에서 철 지난 희귀본을 발견해보자는

어처구니 없는 욕심하고는 절대로 거리가 멀다.

그것은 마치 늦게 시작한 한 때의 내 수석 취미와 같아서 탐석을

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줄을 나는 알고 있다.

 

내 작은 소망은 이 곳에서 자생한 조선족 문학의 현상을 통시적,

공시적으로 한번 관심있게 들여다 보자는 개인적, 학문적 탐구심, 

그러기 위하여서 묵은 자료를 구하기 위함이다.

 

처음 서시장 난전에서 헌책을 뒤적일 때만해도 너무나 싼 값에

내 가슴은 울렁거렸고 꼭 무슨 도적질을 하는것 같았다.

권당 10원이 넘는 책이라고는 없었으니 아무리 물건 값이 싼

연길이라할지라고 꼭 사기를 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5원짜리 식사가 있고, 10원이면 어지간한

음식은 골라 먹을 수 있는 이 곳의 상대성 원리에 눈을 뜨게 되자

헌 책과 관련한 내 안복과 지평도 넓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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