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학 산책

브라우닝 시인 부부의 덜 알려진 시 세계

원평재 2005. 6. 5. 21:17
 

로버트와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시 세계

(덜 알려진 부분들---)

 

 

 

짧은 귀향에서 돌아 와, 망향의 심금을 로버트 브라우닝의 “고향 생각”이라는

싯귀에 이중인화 했더니,

문우들이 좀 까다로운 그 서정시를 번역도 해주고 글 마당도 펴주었다.

 

기왕에 깔아준 멍석 위에서 멍하니 옛날 생각을 좀 더듬어 보니,

오라! “밥(Robert)과 일라이저(Eliza) 브라우닝” 부처(夫妻)의 문학 세계에서

덜 알려진 부분들을 내가 한 때 좀 아는 체 했었지,

그걸 한번 끌어다 써보자,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고향 생각도 좀 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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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연길은 장미가 없는 동네랍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모란도 없답니다.

다만 라일락은 있는데 5월에 피더군요.

 

T S 엘리엇이 여기 사람이었더라면 “오월(사월이 아니라)은 가장 잔인한 달,

바람과 비로 라일락을 흔들어 깨우고---”

이렇게 그의 황무지(The Waste Land"에서 노래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참으로 화창한 일요 아침, 여기 채플 쪽으로 슬슬 걸어가는데

노란색 찔레꽃이 길가에 만개해 있는 것입니다.

빨간 찔레꽃은 전혀 보이지 않고---.

불현듯 오늘 이야기는 노란색 찔레 사진으로 장식하자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로버트 브라우닝이 여섯 살이나 연상인 엘리자베스 베럿(Barrett)의 병상으로

뛰어든 것은 문자 그대로 쳐들어간 행동에 다름 아니었답니다.

그 때 엘리자베스는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진 천재 여류시인이었고

로버트는 아직도 문청(文靑)쯤 되었겠지요.

 

양가와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은 결합하였고 이탈리아로 도망을

가서살며 그들이 이루어낸 사랑은,

사랑이라는 관념의 통념을 재구축하는 전범(典範)이 되더군요---.

 

결혼 후부터는 문명(文名)을 로버트가 더 날렸지만 부인은 미성년자 노동착취

문제 등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 관심을 쏟는 사회운동가 역할이 더 컸지요, 아마.

그녀는 베럿 가문의 이름을 항상 미들네임으로 자랑스레 달고 다녔답니다.

로버트도 사랑하는 연상의 아내가 벌이는 사회운동에 무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음의 노래가 외조의 예가 되겠지요.

 

“피파가 피리를 불며 지나가네(Pippa Passes)”라는 시 입니다.


“한해 중에는 봄/하루 중 아침/아침 7시/언덕에는 진주이슬 맺히고/

종달새는 날고/달팽이는 가시나무 위에/하느님은 하늘에/모든 것이 평화롭다/”

라는 이 노래는 가사에 나타난 바데로의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성년 노동자인 Pippa가 겨우 하루 휴가를 얻어서 피리를 불며

길 따라 지나가는 정경을 고요하게 그려나가다가 마지막 라인(詩行)에서

반어적으로 뒤집어버리는 것인데 보통은 서정시로만 이해하고

그 이상은 잘 모르지요.

 


 

봄, 아침, 일곱 시, 진주이슬, 나르는 종달새, 나무위의 달팽이, 이런 키 워드가

얼마나 낭만적이고 서정에 가득 합니까---.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그 다음에 나오는 마지막 두 라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영국도 노동환경은 말할 수 없이 열악하였습니다.

 


 

나중에 세월이 더 흘러 영국의 힘이 세계화되었을 때에는 물론 이 열악한

노동 집약적 산업장은 식민지, 제3세계로 떠넘겨졌고 영국의 지식인들은

인도의 캘커타나 홍콩의 섬유, 봉제 공장에 와서 탄식만 한바탕 늘어놓으면

되었지만---.


 

피파는, 아니 로버트 브라우닝은 가사의 끝 두 라인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이 짧은 시는 사실 이렇게 무겁습니다.

 


 

 

자, 이제 사랑이야기나 조금 더 하지요.

흔히 “포르투갈 말에서 번역한 소네트”로 오역하는

“Sonnet from the Portuguese"는 ”까무잡잡이가 바치는 연시(戀詩)“쯤이

정확할 것입니다.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로버트가 흔히 my Portuguese라고 불렀던

엘리자베스(그래서 정관사가 붙어 the Portuguese)가 남편에게 지어 바친

소네트들인데 참 절창입니다.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사랑을 위해서만 사랑해 주세요/

그리고 부디/미소 때문에, 미모 때문에,/부드러운 말씨 때문에,/

그리고 또 내 생각과 잘 어울리는/재치 있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그런 날엔/나에게 느긋한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저 여인을 사랑한다고는/정말이지 말하지 마세요//-------//

내 뺨의 눈물을 닦아주는 당신의/사랑어린 연민으로도/날 사랑하진 마세요/

당신의 위안을 오래 받았던 사람은 울음을 잊게 되고/그래서, 당신의 사랑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해설: 내 눈이 호수 같아서 사랑했다면 이게 성형수술인줄 알게 되거나,

자연산일지라도 나이가 들어서 호수가 개펄처럼 되고나면 그대 사랑도

개펄이 될 테니까 눈 때문에 사랑한다고는 마세요---,ㅎㅎ, 아니 히히.)

 



사랑의 방법론을 이야기 하는 까무잡잡이의 또 다른 소네트를 볼까요.

 

“당신을 얼마나 사랑 하느냐고요? 헤아려 보겠어요/참된 존재와 이상적인 미의

뵈지 않는 끝자락을/내 영혼이 더듬어 찾을 때 그것이 도달할 수 있는/깊이와

폭과 높이만큼 당신을 사랑해요/”

 

(해설: 이 부분의 뜻이 어렵다구요? 이 구절이 난해하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영혼이 더듬어 찾는 경계선이란 한계가 없는 영역이니까, 가이없는 사랑의

변경을 말하는 것이지요. 시가 이어집니다),

 


(핑구어리-사과배가 이제 신록으로 이 해의 출발을 했습니다.)

 

“햇빛과 촛불아래 일상의 그지없이 조용한/필요에 따르듯이 당신을

사랑해요./”

(해설: 이 첫 구절은 소월의 시에 나오는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님 생각”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고,

두 번째 구절, “조용한 필요에 따르듯이”란 말은 명품이나 짝퉁 수준이 아니라

일상의 필수품 수준으로 사랑한단 말이지요,

예컨대 치솔이나 치약처럼, 예컨대 숫 갈처럼, 예컨대 요강 아니 화장실처럼

사랑한다는 말이지요.

거창한 관념이나 임마누엘 칸트의 저서 같은 수준이나 무슨 낙시나 그렇지

골프 용구같은 수준의 필요성이 아니라 젓가락처럼, 빗자루처럼, 라면처럼

사랑 하오리이다---).

 



연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