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조선족 자치주에서의 "라스트 모히칸" 담론

원평재 2005. 6. 9. 09:25

미국 문학 개론 시간에 "모히칸 족의 최후"를 보았다.
영화 감상의 가장 큰 목표는 영어 듣기 능력을 제고하면서

현대 영화기법에 대하여서도 토론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다.

 

물론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탄생에 따른 피어린 역사와 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디언들을 오늘에 되살려 호도하려는

할리우드에서의 제국주의적 발상에 대하여서도 논의의 광장은

확대되어 펼쳐질 수 있으리라.

이 과정이나 결과는 친미냐 반미냐의 차원은 아닐 것이었다.

 

자주 강조하지만 미국과 같은 거대 패권 국가가 역사상 수많은

제국이 겪는 쇠퇴의 기미 없이 활기찬 유기체로 건강진단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열린 체제(open society)를 지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오와 오류를 얄미울 정도로 재빨리 검증하는 열린사회의 수많은

장치들,
일단 그런 장치에 걸리면 곧장 공론화하여 여론의 힘으로 거르고

교정하여 차선을 기약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열린 체계가

작동하는 한,
이 거대 국가는 공룡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중국 건설의 아버지들에게는 초기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철학도 타산지석이 될 것이고,
해체의 비운을 맞은 소비에트 러시아에게는 때늦은 반면교사가 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하였다.
그러고 나서 감상문 페이퍼를 받았다.

 

역시 젊은이들의 지평은 넓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들 속에서 오늘 여기 조선족 사회의 고뇌하는

상념을 뽑고 자아올리는 그들의 글 줄기에 나는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 울렁거림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은 현재 시점의 판별이

아니라
미래 시점의 판별, 우리가 어떤 비전을 갖고 미래를 대비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울렁거림의 속성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젊은 발언을 여기에 올리고 함께 생각하고 싶다.
본인에게도 이런 양해를 구했음은 물론이고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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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나의 많은 관심을 끌었던 건 주인공

호크아이였다.
모히칸 족에 의해 자라는 오크아이는 어렸을 때 살해당한 식민지

영국인의 아들로, 쇠망해가는 모히칸 족의 추장 칭가치국과

그의 아들 웅카스에 의해 키워진다.

 

끊임없는 지도를 통한 삶으로 부터 그는 원주민들의 미덕과 기술을

배우게 된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전쟁이 일어나자, 호크아이는 그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게 된다.

 

이 사실은 나로 하여금 나의 정체에 대해 다시 심사숙고할 시간을

가지게 하였다.

나는 중국 연변조선족 자치주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이다.

 

조선족은 200여년의 이주역사를 지닌 소수 월경 민족으로서

티베트족, 몽고족, 위그르족 등 중국의 다른 소수 민족과는 달리,

한반도에 모국을 가지고 있으며
한반도의 인접지역에 집거하면서 살고 있다.

 

연변 조선족은, 일부 한민족 특유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생활에서는 조선족 규범 속에서 생활하고 공적으로는

중국 한족의 규범을 따라야하는 2중적 생활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런 우리로서 도대체 우리는 두 나라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여야만이 정확한 것인가,

나는 쉽게 답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일 월드컵 때 있은 일이다.
한국팀이 4강에 진출할 때 우리는 너무나 기뻤다.

우리는 TV를 통해 날마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 승리에,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있었다.

 

하지만 만약에 중국 팀과 한국팀이 시합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설자리를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백퍼센트로 한국편이 돼주긴 어려웠다.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우리는 충분한 특권을 향유하며 살고 있고
소수민족이라는 이유로 압박과 핍박 속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측을 놓고 보면 겉으로는, 형식적으로는 "우리는

한민족이다"라고 울부짖지만 우리 조선족에 대해 너무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거 같다.

 

내가 인터넷에서 본 내용인데 한국 사람들은 연변조선족에 대해

20가지도 더 넘는 편견을 라렬 했었다.

연변사투리는 너무 촌스럽다. 연변 사람들은 사치를 즐긴다.

연변 사람들은 돈을 위해선 한국의 노예가 되는 걸 달갑게 여긴다.
연변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배신을 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진짜 우리의 정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거

같았다.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영화를 보면서 쉬임없이 나한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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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년을 맞아서 객원교수로 이 곳 대학에 오기 직전에 나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전 정신문화연구원)"에서 서경석 목사의

조선족 문제에 관한 발제에 대하여 대표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분의 주장은 현재의 “재외 국민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서

중국과 구소련의 동포들은 원천 제외한 “제외 동포 법”이

되었다는 것이다.

 

건국 이전에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은 이 새로운 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어서 고국으로의 이주나 취업이 봉쇄되어 각종

사기와 불법이 횡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예 문호를 활짝 열 되 3년으로 체재 기간을 엄격히

제한하면 가정 파탄도 막고 취업 사기도 예방하고 국내 노동

시장도 안정될 일석 삼조 이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분의

주장이었다.

 

사람이 남녀간의 문제를 버틸 수 있는 동물적 기한은 대략

3년이라고 그분은 말하였다.
그 기간이 지나면 성인이 아닌 한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와서 보니 "재외 국민법"이 "제외 동포법"이 된 사연에는

중국 정부의 입장도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다민족 다원주의 국가에서 잘 살고 있는 자치주 사람들을

타국이 마음대로 작정할 수 있는 법이 세상 어디에 있느냐,

그냥 외국인 법의 테두리에서 취급해 달라---,

그런 주권국으로서의 자국민에 대한 주장이 작용한 것 같다.

 

오늘 새벽에는 멀리 쿠웨이트에서 축구 승전보가 전파를 탔다.
캠퍼스 기숙사에도 밤새워 TV를 켜둔다고 했었다.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도 많았지만 하여간 이 곳의 내 학생들은 얼마나 열광하였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