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해혼식 (解婚式) / 3회 연재중 두번째 꼭지입니다.

원평재 2004. 3. 7. 07:22
해혼식/ 解婚式 (3회 중 두번째)
그의 눈에서 약간의 광채가 났지만 나는 무시하였다. 그가 농원을 하며 가끔 서울에 와서 친구들에게 내세운 자랑은 "청정 유기농"이었다. 유기농 소채를 재배하니 계약을 하고 사먹어라, 주기적으로 배송은 책임지겠다---, 그런 제안도 많이 앴었다. 모두들 긍정은 하면서도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값도 문제였지만 주기적으로 채소를 공급받는다는 그 체계가 도시의 소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틀이었다. 먹고 싶을 때 아무거나 조금 사다먹거나 말거나---, 외식도 해야하고---, 그래 우린 송충이인데 솔잎이나 조금 갉아먹지---, 분위기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결국 그는 무료로 유기농산물들을 부정기적으로 동기들에게 나누어 주며 흡족해 하더니,그나마 최근에는 시들해지고 말았었다. 정작 현지에서 그의 농원을 보니 그가 역점을 두는 것은 죽은 나무 살리는 일 같았다. 별별 수종의 나무들이 봄빛 아래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장관댁의 정원수로 있던거며 이건 아파트 재개발 단지에서 버린 것, 저건 국도를 내며 파헤친 것들---, 나무의 종류만도 100여가지가 훨씬 넘어섰다고 했다. 아직은 병이 완전히 낳지않은 상태의 나무들이 잔뜩 허덕거리고 있었으나,이제 해가 가면 모두 힘차게 숨을 쉴거라며 그는 나무들을 쓰다듬었다. 정말 틀림없이 이 병든 나무들은 마침내 거목으로 성장하리라는 느낌을 문외한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골프 좀 칠까?" 그가 또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알고보니 그는 산자락 협곡을 병풍삼아서 비거리가 250야드쯤 되는 훌륭한 자연 골프 연습장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물은 쳐놓지 않았으나 공이 산계곡에서 어디로 내빼겠는가, 그 나마 공도 서울에서 연습장하는 곳에서 낡은 것을 교체할 때 무료로 잔뜩 얻어온 것인데---. 잃어버려도 그만이었다.나는 아이언 3번을 잡고 그는 5번을 잡았다. 우리는 잡초 위에 공을 놓고 힘차게 스윙을 하였다. 그의 자세는 좀 우스웠으나 비거리는 대단한 장타였다. 한 박스를 나누어 치고나서 우리는 공을 줏으러 산계곡을 함께 올랐다. 그는 어디쯤에 공이 숨어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계란 줏듯이, 혹은 살아있는 새의 알을 줏듯이 바구니에 공을 줏어 담았다. "아, 고사리가 벌써 나왔네!" 그가 탄성을 발하며 고사리를 꺾어서 바구니에 담았다. 한보름 가량 예년에 비해 일찍 나왔다는 것이다. "올 봄이 유난히 이르네---, 그리고 고사리는 이렇게 꺾이는 부분부터 먹는거야. 이거 가져가서 먹어봐." "나 같은 홀애비가 무슨 고사리 요리야---." 그러면서도 이건 늙은 댄서 박양차지구나, 나는 데리바리 목적지, 곧 배송처를 이미 점찍어놓았다. "이건 당귀야, 좀 뜯어가자. 서울의 대패 쌈밥집 체인에서 먹는 것 보다는 향이 훨씬 다를거야." "고기는 있냐? 내가 참치캔 한박스는 사왔다만---" "족발 삶아놓은게 있으니 그거면 되잖아." 참치는 뜯지않고 그가 독식할 뜻임을 분명히 하였다. 이 친구, 평소 부식이 부실하구나---, 나는 짐작하였다.우리는 손을 씻고 컨테이너 박스로 들어갔다. 오곡밥과 된장과 김치, 이상하게 삶아놓은 딱딱한 돼지 족발, 그리고 당귀나물이 전부였다. "농꾼이 되면 반은 알콜 중독자가 되지. 술은 뭘로할까? 맥주를 준비했는데---." "설마 우리가 맥주 마시러 예까지 왔을까, 막걸리 없어?" "요즘은 시골도 일하고 나서는 모두 맥주를 마시지." 그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며 말했다. "전기 값이 싸지?" 내가 묻자 농가 전기료는 도시의 반 값이라고 그가 알려주었다. "이 김치도 유기농 배추로 담았겠네?" "물론이지, 유기농 채소는 김치로만 먹어도 양기가 세진다구---." 막걸리가 들어가자 입이 헤퍼진 두 남자의 이야기의 행로는 역시 그 곳이었다. "내 마누라는 미국있지만 난 도시 생활을 하잖아. 그러니 배설구가있지. 자네는 유기농 배추 먹고 힘까지 불끈 솟는데, 어떻게 견디나?" "내가 본래 농민 운동을 했잖아. 그 때 이름난 분들을 많이 알았지---." 그 떼 개인적으로 알게된 저명인사들 중에는 모든 사람들이 잘 아는 유명한 "H 옹"도 있었다고 한다.그때 교분을 쌓다보니 서로 깊은 곳도 알게 되었는데 그중의 하나는이 양반이 정력이 절륜했다는 것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그래서 사고를 많이 쳤지. 어릴때 황해도 부잣집의 부모님이 늦게 본 이 아드님에게 보신을 많이 시킨 모양인데 그게 이 양반을 여자와 섹스 부분에 대해서만은 처신이 어렵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고 하더군. 난 남자로서 그 양반을 이해는 해. 하지만 아픈 부인을 옆방에 두고 소리를 질러가며 방사를 한 것은 좀 심했다싶어. 당시 박정권의 중앙정보부에서도 이 반체제 인사의 그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배꼽 아래는 문제 삼지 않는다는 박통(朴統)의 철학으로 넘어갔다더군, 하하하." 우리는 유쾌하게 함께 웃었다. "그 때 함께 일한 P라는 분이 있었는데 이분은 그런 윤리를 이해 하지 못했어. 그래서 나이 52세에 자기 부인과 해혼식(解婚式)을 했다는 것 아니겠어." "해혼식?" "그렇지. 우리가 섹스를 하는 것은 자손을 낳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러니까 젊을 때는 그 짓을 열심히 해도 된다, 그러나 이제 자녀가 생기고 어느 정도 장성하면 순 쾌락을 추구하는 그 짓은 그만두어야한다, 마누라와 남편의 관계도 오누이 수준으로 돌리자. 죽는날 까지 그짓은 하지 말자, 돼지를 보라, 닭을 보라, 심지어 나르는 새들도 그 짓을 열심히 하는데 이게 다 꼴사납다. 인간이 금수와 다른점이 무언가---, H 옹은 그러했지만 난 해혼식이다, 대충 이런 철학이었지." "노익장의 H옹이나 해혼식의 P선생이나 모두 대단한 어른들이셨구만---" 내가 어정쩡하게 입맛을 다셨다. "참는 쪽이 더 위대하다고 나는 믿어." 한 때 절륜한 정력을 과시했고 한 연애께나 드날렸던 내 친구가 확신을 가진 어조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어찌 자네같은 절륜의 사나이가 유기농까지 상식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가?" 내가 농담을 가장하고 궁금증을 확대시켰다. "불가나 유가나 기독교의 금제(禁制)와 극기의 부분들을 뽑아서 매일 일정시간 읽고 암기하고 묵상을 하지." "어, 이 친구야 말로 어느새 해혼식을 하고 말았네," 나는 속으로 짐작하였으나 더이상 말로 확인 할 수는 없었다. "난 요즘 나무와 연애를 해. 전에는 동물적인 사랑을 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식물적인 사랑을 한단 말이지. 저 아름다운 나무들과 사랑에 빠지고 나니 싱싱하게 물이 오르는 소리와 새순이나 꽃잎이 돋아나는 소리도 내 귀에는 확실히 들려. 인간은 배신도 하고 언약도 어기지만 식물은 정직해. 내가 준 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몇배로 나를 기쁘게 해주지. 나는 새벽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나무들과 사랑을 하고 대화를 해. 저 싱싱한 나무들의 모습을 보고 내 생각을 다시 음미해 보라구---" 서산에는 어느덧 해가 뉘엿거렸으나 나는 취기로 인하여 차를 몰 계제가 못되어서 잠깐 컨테이너 박스에 몸을 뉩혔다가 새벽에 출발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의 농장 옆에 붙어 있는 천여평 포도원은 그가 가꾸는 농장과 규모의 면에서나 가능성의 면에서 너무 비교가 되어 구입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임시수도 이전 계획과 함께 투기억제 지역으로 묶여서 매매도 쉽지않았다. "가등기 같은걸 쳐도 된다만---" 그가 조금 권유하였다. "난 현찰 박치기 장사꾼이잖아. 그런 식으로 복잡하게 하지는 않겠어." 나는 현장에 와보고 농사지을 뜻을 깨끗이 접었다. 또한 제조와 유통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 땅에다가 돈을 묻고강태공처럼 낙시밥에 물고기가 걸리기를 기댜리는 것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여간 이런저런 결심을 하게된 것만도 오늘의 나들이는 소득이 있는 셈이었다. 아니 더 큰 선물이 생겼지 않은가. 아내와의 이산 가족 상태를 항상 내 인생의 어두운 면, 실패의 국면으로만 여겼는데 "해혼식"이라고 하는 위대한 생활철학이 있지않은가---. 아이들이 컸으니 이제 부부간의 그 동물적인 의식은 절제, 아니 금제하고 살자. 그것은 위대한 생활철학이 될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해혼 상태로 살아온 것이 인생의 실패 국면만은 아니로구나.나는 유쾌하게 가벼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오줌이 마려워서 잠이 깼다. 이제 봄이 꽤 깊었는데도 과연 그의 말데로 뼛속까지 냉기가 오싹거렸다. 다만 전기 장판이 시골의 온돌처럼 느껴졌다. 옆에 같이 누웠던 친구는 모습이 없었는데 무슨 이상한 물체가 흔들흔들 방안을 오락거리더니 이내 스르르 사라졌다. 유령이 달리있나,여기 유령이 있네, 그런 확신이 문득 들었다.아니 아마도 과음 끝에 헛게 보였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래저래 오싹한 기분을 느끼며 간이 화장실에 가기 위하여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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