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동백 김 유 조 열흘기한으로 짧게나마 모국 방문길에 나선 것은 집안의 경조사가 겹쳤기 때문이었다. 오빠 네의 큰 아들이 부랴부랴 혼례를 서둘러 올리게 되었는데 중환을 앓고 계신 내 친정아버지의 병세가 갑자기 악화된 탓이었다. 결혼식은 성황이었으나 아슬아슬하게 끝났다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밤 비행기로 장조카와 조카며느리가 신혼여행을 동남아로 떠나고 난 다음날 친정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오래 앓고 계셨기에 차라리 큰 슬픔은 없었고 상속문제도 법대로 잘 처리되었다. 멀리서 살아가는 일에만 매달려 오래 뵙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불효녀’ 타령을 했는데도 고향의 야산을 오빠와 내게 반반으로 나누어주고 가셨다. 상속받은 야산은 무언가로 묶여있다고 하였다. 하긴 그게 재산 분쟁을 막아주었는지도 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