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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천당 읽기, 거리의 막춤, 필리핀 장터, 문예진흥 위원회, 그리고

원평재 2013. 5. 31. 19:09

 

 

 

 

 

 

 

 

 

 

丕闡堂

좀체 읽기가 쉽지않다.

 대학로 문예진흥 위원회에 갈 일이 있어서 인근 성균관 문묘 쪽을 기웃거리다가

발목이 잡혀서 쩔쩔맸다.

비천당이라니.... 

 

 

성균관 명륜당이나 대성전이야 익히 알려진 곳이라서

이번에는 조금 생경한 쪽만 선택과 집중을 해본다. 

 

 

성균관 정문에서 조금 올라오다 보면 보이는 비천당은

 

과거를 볼 때 시험을 치는 제 2 시험장이었다.

 

 

명칭의 내력은 

 

주자(朱子)가 말한 "큰 도를 밝힌다.[丕闡大猷]"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현종(顯宗) 5년(1664)에 건립되었다,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88년에 비천당만을 중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이곳은 제1 과장(科場)인 명륜당과 함께 제2 과장(科場)으로서 활용되어서

마당이 저렇게 넓은 모양이다,

 


비천당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성균관으로 들어가는 또다른 문이 나온다.

그 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명륜당의 모습이 보이고 양 옆으로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보인다.

기숙사의 방 하나에는 두명의 유생이 기거하였는데

세도가의 자녀들은 여기 머물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지냈다고 한다.


 

 

명륜당 뒤에는 존경각(尊經閣) 육일각(六一閣)이 있다.

 

존경각은 대학 도서관이었고,

 

육일각은 활과 화살을 보관하던 곳이었다.

 

육일각에 활과 화살을 보관한 것을 보아 유생들이 공부뿐만 아니라

 

몸을 수련하는 일도 함께 한 것을 알 수 있다.

 
 

 

 

명륜당 북쪽에 있는 존경각은 성종 6년(1475)에 한명회(韓明澮)의 건의로 건립되었으며,

성종은 수 만권의 책을 하사하였다.

중종 9년(1514)에 소실되어 복원한 뒤로 왜란(倭亂) 때 다시 소실된 것을

인조 4년(1626)에 중건하고, 영조 48년(1772)에 개수(改修)하였다.

존경각은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효시(嚆矢)로서 조선시대 말기까지

약 400여년 동안 유일한 대학도서관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했다.

 

 

데이트 하던 남녀가 일탈을 하였는데,

수령이 600년 된 은행나무가 두 그루 서있지만

모두 수컷이어서 열매를 딸 수 없다는 사실은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면 요즈음 누가 그런데에 관심 가지랴


 


 

 

성균관은 1398년에 현재 위치에 건립되었다.

 

그 후 화재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여러 차례 보수하고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성균관은 크게 묘우와 학사 두 가지로 나뉜다.

 

묘우에는 대성전, 동서무, 동삼문, 신삼문, 대학당, 묘정비각, 제기고,

 

전사청, 수복청, 향관청이 있다.

 

학사에는 명륜당, 동재, 서재, 존경각, 육일각, 정록청, 진사식당, 비천당, 탕평비, 하연대, 은행나무,

 

어정수가 있다.

 

 

 

  

 

옛 성균관 유생들의 흔적을 뒤로하고

오늘날 젊은이들의 광장으로 들어와본다.

 

 

 

 

 

 

 

 

  

 

  

 

 

혜화동 성당 앞에 매주 필리핀 장터가 생긴다.

객지 생활의 서름이나 한 같은 것이 이날 여기에서 모두 여과되고

또 생활의 편리도 도모하고~~~.

 

 

이날 San Miguel 맥주 두병을 사서 마셨다.

음식에는 손대지 않았다.

 

 

 

 

 

 

 

 

 

 

  

문예지의 속간호에 실을 좌담을 위하여

문예진흥 위원회의 권영빈 이사장의 방에 몇사람이 모였다.

한국 문예의 세계화, 한류, 노벨상 등의 담론에 이어

다문화 가정 문제도 떠올렸다.

필리핀 장터를 상기하며~

 

 

 

 

 

 

한때 이름난 커미디언 이원승이 개업한지 오래된

이태리 정통 피자집

 

  

 

추억의 거리를 뒤로한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우리가 겪는 것은
모두가 한때일 뿐.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 생애의 과정을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런 일도
지내 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에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 스스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그 고통을 이겨 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새로운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는가에 따라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법정스님의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