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청동 시대 (2)

원평재 2007. 5. 31. 13:35
26075 

 

그 혹독한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최후의 승자가 된양, 대학에 들어와

한동안 긴장으로부터 풀어져 늘어져 있을 때에 군대를 갖다온 복학생,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다.

그는 정말 천부적인 환쟁이였다.

대학 일학년 때에 대한민국 미술전에 입상을 하였고 나중에는 우수상

대열에도 여러차례 넘나들었지만, 군대에서도 그는 솜씨를 인정받아서

육군 본부의 차트사 및 전문 도안사로 근무하였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군 복무중에도 실력과 근무 태도로 인정을 받아서

인근 삼각지의 이류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로 간판을 그리느라 밤을

새웠다고 한다.

충무로에서 영화 배우들의 얼굴에 "메이크 업"인지 "분장 또랑"인지를 

바르며 돈을 번것은 제대 직후 복학을 하기전 얼마동안이라는 소문도

돌았으나 그는 당시의 일을 고백하는 데에만은 인색하였다.

하여간 오일 페인팅이나 화장품이나 인쇄, 카피 계통과 관계가 있는

화공 약품을 아르바이트 삼아서 오래 다룬 것만은 사실이었다.

 

"미희야, 내가 너 찜했다."

그는 복학할 당시에도 온 몸에, 아니 입고 온 작업복 전부에 오일 페인팅을

잔뜩 묻히고서 그런 식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였다.

미희는 그녀의 이름이었지만 정말 그녀는 아름다운 미희였다.

그는 그림에 쏟아붓는 시간과 열정의 몇배를 더 들여서 처음에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접근하였고, 나중에 몸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에도 계속

또한 그러하였다.

 

그렇게 심신이 길들여진 그녀에게 남편의 임포 사태는 상상도 못했던,

그리고 감당해 낼 수 없는 쇼크였다.

그 사태를 남편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는 식으로 걱정을 하던 초기 상태가

지나자 이제는 그녀 자신이 자기의 몸에 생긴 적신호--, 라기보다 이상

신호, 혹은 전에 없던 신호를 근심하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는 그 후 몇 달  

만에 서서히 새로운 생리 현상을 갖기 시작하였다.

 

물론 그녀가 남편이 임포에 빠진 이 난리통의 진행 과정에서 제 몫만

챙기고 고민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주변에서 누가 그런 내색이라도 보였다면 그녀는 목을 매고 죽어버리고

싶었을 정도로 억울해 하였을 것이다.

자신의 상태와는 전혀 별개로 오로지 남편의 건강과 관련하여 심리,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온통 이 병원 저 병원으로 함께 돌아다니지 않은

병원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지극정성이었으며 그 방면이라면 무슨 이름난

병원 순례 리스트 같은 것이라도 만들라면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여간 그런 복합적 검진 과정에서 그나마 그의 몸에 다른 병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만은 천만다행에 속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인간의 몸은 아이러니였다.

아니 무서웠다.

남편이 다른 건강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때쯤 부터 그녀의

몸에는 그 욕망의 젖음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항상 그렇지만은 않았다.

케이블 TV에서 잘 생긴 리처드 기어를 보았을 때---,

아무도 없는 석양의 유화 실기실에서 실물 등신대의 데이비드 석고상을

바라보는 한가로운 시간에---, 

혹은 인파 속에서 얼굴만 둥둥 떠가는 어떤 키 크고 잘 생긴 남자의 모습을

문득 보았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 그 젖음 현상은 초조롭게, 혹은 그 반대로 느슨한 일탈의

감미로운 감정과 함께 그녀를 찾아왔다.

 

아, 그리고 "한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이 전람회가 열리던 첫날,

아니 그 전날 미리 혼자 와서 설명회 준비를 하느라 메모를 하며 고흐의

그림 앞에서 저 로뎅의 "청동시대"에 눈이 마주치던 순간---,

그 젖음 현상은 그녀의 몸에서 민망하지만 확실하게 또 일어났다.

 

이번 전람회에 맞추어서 그녀가 도슨트로 나선 설명회는 세번으로 잡혀

있었다.

문화 센터에서의 그녀의 유화 지도가 세 클라스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말하자면 이 시대 사회 교육을 담당하는 기관들의 유화 이론과

실기 분야에서는 명장(名匠)에 다름 아니었다.

수입도 괜찮았다.

그건 어쨌든, 오늘은 이번 설명회 행사의 끝날이었는데, 그녀의 몸 현상은

예외없이 또다시 일어났고 거기에 더하여 잘 생긴 청년까지 나타나서

휘날레를 장식해 주는 꼴이 되고 었다.

 

정말 이번 전람회는 대단하였다.

우선 전시 작품의 컬렉션이 좋았다.

클리블런드 미술관의 소장품 중에서도 인상주의로부터 초현실주의

까지를 적절하게 망라한 대표 작품들을 어느 쪽 큐레이터들이 선정

했는지 그녀로서는 알 바가 아니었으나 하여간 선택의 안목이 높았다.

 

작품의 배열에도 한치의 느슨함이 없었다.

인상파, 후기 인상파, 모더니즘, 아방가르드 초현실 주의까지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각각의 전시실에 나누어 배치하였으되 그 시대적

변천사의 중간 지대에 해당하는 그림들의 처리가 특히 인상적이고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보통 하는대로라면 편의상 어느 한쪽편으로 시대구분을 소속시켜

몰아넣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회에서는 새로운 경향성의 선도자이자 그 앞 시대의

마지막이 되는 역사적 미들 그라운드의 작가 작품들도 따로 떼어내어서

한 시대에서 다음 시대의 방 문턱을 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토를 달아주었다. 

 

아니 말이나 글로만 토를 단 것이 아니라 정말 전시장의 콤파트먼트를

넘어가는 부분에 얕은 문턱을 만들고 그 위치의 전후에 전시를 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그 역사성을 일깨워 준 점에 그녀는 감탄하였다.

설명회를 조직하여 관람객을 이끌고 나가야하는 도슨트의 입장에서는

특히 이 치밀한 배열 방식이 여간 편하지가 않았다.

 

미술사적인 배려가 흠씬 배인 이 배열 방식에는 한가지 우연이 개입

되어서 비밀리에 그녀의 의표를 찌르는 일이 일어났다.

바로 고흐의 플라타나스 그림을 등뒤로하여 관람객들을 앞에 놓고 서

바로 건너 편에 로뎅의 "청동시대"가 눈에 바로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등신대의 입상인 이 전신 나상을 그녀가 건너다 바라보면서 등 뒤에 걸린

빈센트 반 고흐의 큰 플라타너스 나무를 설명하면 그녀는 말할 수 없는

희열 속에서 자신의 몸이 정말로 흠씬 젖어오르는, 오르가즘의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아, 누가 이 지고의 순간을 다만 눈치라도 챌 수 있으랴---.

그녀는 작고 빨간 다이아먼드 무늬가 촘촘히 찍힌 자신의 팬티가 이미

흥건히 젖어 있음을 느꼈다.

 

그 팬티에 다이아먼드 무늬를 판화의 프린트 기법으로 찍어준 것은 

남편의 솜씨였다.

아내, 미희가 도슨트로 설명을 해나갈 작품에 고흐의 "큰 플라타너스 나무"

가 있는 것을 알게된 남편이 그렇게 찍어준 것이었다.

"여보, 그 작품의 캔바스가 정신 병원의 침대 시트인줄 알지?

말기에 고흐가 요양했던 정신병원 말이야. 잘 들여다보면 병원 시트에

찍힌 다이아먼드 무늬가 아직도 보여.

내가 당신 팬티에 그 무늬를 프린트해 줄께."

"에이, 민망해. 당신 갑자기 왜그래요?"

그녀는 차마 임포 이후에 성도착 증세까지 찾아왔느냐는 식으로 남편을

몰아세우지는 못했다.

 

"내가 요즈음 우울해. 섹슈얼 히포콘드리아, 육체적 임포 현상에 정신적

우울증이 겹쳤다는군. 유씨엘에이(UCLA)에서 수련의를 했다는 의사는

섹슈얼 하이포콘드리아라고 혀를 꼬부리고 버터 냄새를 풍기데---.

아무튼 나같이 젊은 놈이 육체적 임포 현상을 계속 겪으니 심리적으로도

도착증세 같은걸로 발전하나봐---.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이 작업은 그런 때문이 아니고 당신이 나선 이번

행사를 기념하는 퍼포먼스같은거야---."

그는 그녀가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말도 술술 내뱉으며 다이아먼드 사방

연속 무늬를 여러장 갖다놓은 그녀의 작은 면 팬티에 찍고 있었다.

 

"날자, 날자꾸나!"

그녀가 외쳤다.

"웃자, 웃자꾸나!"

그가 화답하며 두사람은 하이 파이브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어려울 때 그들이 하던 옛 습관이었다.

그런 중에도 그는 남은 한 손으로 다이아먼드 사방 무늬를 쉼없이 찍어

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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