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재빠른 손동작으로 다이아먼드 사방 무늬를 찍어나가던 모습과
고흐가 다이아먼드 무늬가 찍힌 시트 위에서 열심히 유화 물감을 펴나가는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 되어서 그녀는 잠시 이야기의 맥락을 놓칠번
하였다.
얼떨결에 바튼 기침을 몇차례 하고 나서야 그녀는 낭랑한 목소리를 되
찾았다.
"고흐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동생 테오에게 내가 그릴수 있는 가장 우수한
작품 계열로는 거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라고 편지에서 술회하고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의 마찌에르(matiere), 그러니까 재질감,
소재감이 좌우에 있는 그의 다른 그림들 보다는 훨씬 얄팍하게 보이지는
않는지요?
네, 그렇습니다!
이 그림을 그릴때 그는 정신병원 요양소에 있었지요.
캔바스를 구하기도 힘든 그의 생활 조건 속에서 가을 낙조의 햇살은 빛에
함몰되어 발광한 이 화가에게 결코 버릴 수 없는 치열한 한 순간이었어요.
빛의 순간을 포착해야하는 그의 미학적 욕망은 그로하여금 얼른 병실의
침대 시트를 찢어서 캔바스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결국 침대 시트를 대용한 이 화폭은 캔바스 천 보다 물감을 빨아들이는
정도가 심해서 이렇게 유화의 질감을 얄팍하게 만들어 버린것이지요."
로뎅의 청동시대 앞에서 입상처럼 서있는 청년은 그녀의 속 마음을 조금
이라도 짐작이나 하는지 어떤지 그저 멀찍이에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청아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혼자일까---?"
그는 실없이 자문하였다.
작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까지 띈 그녀의 모습은 소녀 같았지만 무언가
욕망과 우수라는 상반된 느낌이 동반하여 서려있는 눈동자가 남녀간의
관계같은 건 벌써 오래전에 터득하고나서 이어 곧장 버렸다는 그런 복잡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는 2000원에 빌린 해설 헤드 세트를 귀에서 떼어 포킷에 집어넣고 그녀의
육성 설명만 한 마디도 빼놓지 않겠다는 듯 경청하고 있었다.
오래지않아 그녀의 정말 청아하면서도 물끼가 촉촉한 음성이 그의 페니스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페니스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저 로뎅이 조각한 "청동시대"에 붙은 그 생식기 만한 정도로 그의 다리
사이에 붙어있었다.
"조금 작지 않을까?"
간혹 총각다운 염려가 공중탕 같은 데에서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으나
해부학적으로는 자신의 것이 오히려 큰 편이란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마주보는 상대의 생식기가 더 커 보인다는 진실도 해부학 레지던트인
그에게는 명약관화하였다.
천지창조에서의 아담의 그 크기를 생각해보면---, 그는 큰 편이라고 자신
하였다.
예과 때에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하며 바티칸의 "코펠라 시스틴", 그러니까
"시스틴 성당"에서 들었던 설명이 생각났다.
"Micle was a scientist."
미켈란젤로는 과학자였으니까 그의 인체 분석은 정확히 정상 기준이었을
것이었다.
아담의 창조 (1), 1510년 프레스코 280*570cm, 바티칸궁 시스티나 성당 천장 부분
이곳 전람회장에서 멀지 않은 명문 "신일(信一) 의과 대학 병원"의 레지던트
인 그는 어제부터 배당된 어떤 환자의 생체 세포 조직을 바수어 내면서
"옹코진", 그러니까 암종의 흔적을 밤새 찾고 있었으나 도무지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없었다.
살점을 바수며 온통 세포조직을 다 훑어보는 작업은 "디몰리션"이라고
하였고 "옹코진"은 암을 유발하는 요인이거나 그로 인한 흔적을 말하는
것이었다.
조직검사를 위하여 생체를 떼놓은 환자는 지금 다 죽어가는 상태라는
것이 어제 저녁 다섯시 정각에 "칼 퇴근"을 하며 그에게 남겨놓은
담당 과장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에게 주어진 과제란 암종의 유무와 종류를 반드시 찾아내어서
수술의 당위성과 그 방향을 제시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혹은 던져진 살점을 밤새 바수어내며 암의 유무와 그 진행
방향과 속도를 추적하다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그는 아침 일찍
사우나 장으로 가서 몸을 좀 풀고는 이어 가까이에 있는 이 전람회장으로
어쩌면 마음을 풀어볼 수는 없을까 하고 불쑥 찾아 온 것이었다.
늦게 출근하는 담당 과장이 행방불명된 자기의 목을 잘랐으면 좋겠다는
막가는 심정이 불끈 솟아 올랐다.
하지만 그럴리는 없었다.
성형외과니 안과니 돈이 되는 전공으로 레지던트들은 모두 필사적 선택을
했고 그 해에 해부병리학을 전공으로 정한 사람은 전국에서 그를 포함하여
모두 열 손가락을 겨우 넘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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