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고흐의 그림 앞에 섰다.
"큰 플라타나스 나무(1889년)"(The Large Plane Trees)라는 이름의
유화였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유화 이론과 실기 지도를 하는 그녀가 자기 클래스의
수강 회원들을 이끌고 아침 일찍 명화 탐방을 시작했을 때는 "미술관"이
한산한 편이었는데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이 그녀의 앞으로 마구 불어났다.
일반 관람객들이 그녀의 맑은 음성과 특색있게 간추린 설명에 자꾸 빨려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한양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기획전 "서구 미술; 인상파에서 아방가르드
까지"에서였다.
그녀는 음정을 한 옥타브 높여서 앞쪽에 서있는 관람객들에게 말했다.
"제 클래스의 유화반 회원들 말고는 저기 뒷쪽으로 가셔서 설명을 들어
주시겠어요?
미안하지만 이 설명회는 우리 문화 센터 회원들 몫으로 진행이 되고있어서
수료식 앨범도 찍고 있고, 또 협찬사에서 PR과 CF 사진도 찍어야 하기에
그렇답니다.
뒷쪽이 싫으시다면 30분만 기다리셨다가 이 곳 화랑 전속의 도슨트(dct)가
이끄는 설명회에 참석하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림을 아는 사람들의 상식이 작용한듯 앞줄에서 그녀에게 빠짝 붙어
있던 일반 관람객들이 아무 불평없이 뒤쪽으로 물러났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 속에 있는 멋진 청년의 모습을 아쉬운듯 바라보았다.
그 청년 정도라면 배짱 좋게 백화점 문화 센터의 일행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으련만 청년은 정직하게 사뭇 맨 뒤쪽으로 가버렸다.
다만 그 청년도 명화 못지않게 그녀의 얼굴이 중요하다는듯 잘 생긴
자신의 이목구비를 그녀에게 넋나간듯 집중시키는 표정이 역력하였으나
워낙 뒤쪽으로 물러난 탓에 그 잘난 얼굴이 못난이들 사이에서 드러났다
감추어졌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청년은 이내 그 뒷쪽에 있는 로뎅의 작품, "청동시대" 옆,
관람객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공간에 자신도 작품인양 입상(立像)이 되어
우뚝 자리를 잡고는 다시 그녀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청년의 키가 180센티미터는 넘을성 싶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무심한척 바라보던 그녀의 다리 사이가 촉촉히
젖기 시작하였다.
그건---, 그러니까 그 "젖음 현상"은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그녀의
두 다리사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생리적 현상이 꼭 그 청년 때문만은 아니었다.
함께 그림을 그리는 남편이 갑자기 임포가 되면서 그 현상은 시작되었다.
대학생 때부터 도제관계인양 그녀를 여러 방식으로, 그러니까 체위와
손놀림을 포함하여, 강렬하게, 격하게 가르치고 달구어내고 담금질하고
또 벼루어내어서 남녀 관계란 모두 이런건가보다 그녀가 생각하며 살아온
10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작년 가을 어느날 부터 그는 갑자기 임포 상태가
되었다.
처음에는 그런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알지 못하던
그녀는 남편의 상태가 그녀에게도 치명적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고는
늦게서야 쇼크 상태에 빠져들었다.
마음만 내키면 목이 마를 때 청량음료를 마시듯이 손을 뻗치면 잡히는줄로
생각했던 아무것도 아닌 그 남녀간의 일이 사실은 비범했던 일이었으며
그렇지 못한 남녀들이 이 세상에는 지천이라는 것을 그녀는 겨우 깨닫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아무런 대책이 아니어서 사태는 심각했고 결국 속수무책
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녀가 마치 대단한 섹스 매니어로 조련된듯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 항상 피동적으로 그의 몸놀림에 따라다니다시피,
그러나 싫증을 내지는 않는 수준이었는데, 그가 그렇게 갑자기 서리맞은
폐원의 관상용 고추처럼 변질 되고부터 그녀의 몸 속이 난리법석을 떨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표현을 쓴다면 생체의 "아이러니"였다.
그녀는 처녀적에 자위도 거의, 아니 전혀 하지 않았다.
미술 대학을 지망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학업과 실기 시험을 모두
해내야하는 과정은 사실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형극의 길이었다.
형극의 길이라는게 좀 과장된 표현 갖지만 사실은 그 보다 더 적절한
설명은 세상에 없는듯 싶었다.
글쎄 음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이라면 혹시 동병상련으로 이해를 할 수
있을는지---.
그녀의 생각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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