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청동 시대 (6)

원평재 2007. 6. 7. 06:00
 

 

 

그는 이혼한 부모의 어머니쪽에서 자랐다.

지금 이 시간에 태어난 아이들이라면 열명 중 서너명이 필경 그런

결손 가정에서 자라게 되리라는 예측 통계도 있지만 서른이 넘은 그의

세대에서 이혼 가정의 자녀란 아직 희귀 동물이었다.

빼어난 점도 남과 다르다는 이유로 신경이 쓰이는 사춘기에, 결딴이 난

그의 가정 환경은 당연히 그를 주눅들게하였다.

 

특히 두가지가 그의 성장을 방해하였다.

같은 아파트 동네에 살면서 남의 냄새를 잘 맡는 하이에나 같은 학교

친구들의 준동과 또 하나는 같이 사는 어머니의 냄새 공세였다.

그녀는 향수는 물론이거니와 화장수를 바꾸었을 때 마다, 아니 일부러

그런 것들을 매번 바꾸어가며 그에게 맡아보라고 하였다.

공격 포인트는 그의 콧구멍이었지만 향수를 실어오는 공격의 무기랄까,

미사일의 발사대는 그녀의 젖가슴이었다.

"불쌍한 것, 그 때 네가 내 젖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컸어---."

그녀는 자신의 큰 젖가슴을 그의 코와 입 근방에 드리대며 눈물을 찔끔

거렸다.

 

그녀가 새로운 향수를 맡아보라면서 그에게 달려들면 어렸을 적에는 

젖가슴 두개가 그의 머리통 위에서부터 아래로 하강하며 출렁거렸고, 

그가 부쩍 부쩍 자라나자 풍만한 젖가슴과 젖꼭지는 그의 눈아래에서

카오스 이론이 맞다는듯 방향성 예측을 거부하며 아무렇게나 출렁

거렸다. 

젖 냄새와 저급한 향수가 뒤섞인 모성애의 거대한 본산을 바라보며 그는 

끔찍하게도 살모의 흉계도 꾸민적이 있었으나 다행하게 차령산맥과 노령

산맥이 잇닿는 첩첩산중에 자리한 어떤 "대안 기숙 학교"로 보내어지고

부터는 안정을 찾았다.

부인과 아들을 버린 아버지의 "때늦은 선견지명" 덕분이었다.

 

학급 친구들이 떠안고 들어온 파괴된 가정의 가혹하고 처참한 "경우의 수"

속에서 위안을 받자마자 그는 성적을 뛰어나게 올렸고 의과대학으로 진학

하여서 내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이 나라의 풍속도대로 대학에 진학을 하면 모든 통과의례를 금방 다

마치면서 이윽고 완전한 성인이 되는줄 그와 주변인들은 인식했고 인정

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성장통 같은걸로 여겼던 지난 과정, 꿋꿋한 사나이가 되기 위하여서는

참으로 다행한 시련으로 여긴 과거, 그 상처는 내내 아물지 않고 그를

괴롭혔다.

특별히 남녀간의 사이가 그러하였다.

그는 소개팅에서 만난 여학생을 두번 이상 만나지 못하였다.

청순하거나 매혹적인 인상의 여학생들도 두번째 만나고 보면 결점이 눈에

들어왔다.

외모가 그를 압도하면 얼른 고약한 그녀의 심성이 그의 뇌리에 걸려서

본색을 드러낸다는 식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의과대학을 다닌다고 세상을 너무 깔본다거나 터무니 없이 

여자를 밝힌다는 악성 소문도 만들었다.

결국 그는 항상 외톨이었다.

전자 현미경의 차가운 대물, 대안 렌즈와 말없는 대면을 하는 해부병리학은

그에게 천직이었다.

 

 

 

"어디 브런치하는데 갈까요?"

몇백년에 걸친 근대 서구 미술사가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수료생들을 애써 떨군 그녀가 청년을 익히 잘아는 사촌 동생처럼 대하며

말을 걸었다.

앳띤 얼굴이지만 말과 태도에는 희미하나마 카리스마가 있었다.

"네, 터미널 근처에 브런치하는 좋은데가 많이 생겼어요.

아, 거기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요.

맨날 병원으로 브런치 광고가 와요."

청년도 한두살 손위 누나를 대하듯 얼른 그녀의 브런치 제안을 접수

하였다.

 

"내가 차를 빼올께---. 닥터?"

"주차장으로 함께가요."

"우리 아는 사이 아닐까?"

"하하하, 저도 누나 같은 생각이 드네요. 프리드만인가 하는 사람이

지구는 평평하다라는 책을 냈던데, 아무튼 인터넷 때문에 우리가 모두

정치한 그물망 속에 들어 있어서 상호간에 소개가 필요없나봐요.

단일 평면에서 함께 살아온듯한---,

제가 말이 많네요. 저는 원래 입에 군둥내 풍기며 사는데---."

"나와는 반대네. 나는 이거 그림 그린다는 사람이 어쩌다 아침부터 말로

시작해서 저녁까지 말을 계속하며 지내는 날이 많아요."

 

신일 의과대학 병원을 지나가며 그가 말했다.

"저기 의대 나와서 지금은 계속 수련의로 일해요."

"아, 이제 형평이 맞네. 나만 발가벗듯이 다 드러내 놓았는데, 나도 이제

꽃미남의 신분 증명서를 겨우 다 들여다 본 기분이야."

"제 직업으로는 사람을 볼때 벌써 옷은 보이지 않아요. 옷 속에 몸이 있고

몸 속에 세포가 있다는 생각이지요."

"그럼 산부인과 전공?"

"에이, 옷은 여자만 입고 벗나요. 저는 해부 병리학이라고---."

"산부인과였으면 참 좋았을 것을---."

"왜요? 아, 불임? 죄송합니다."

"맞아요. 의사 앞에만 서면 우린 다 고백성사를 할 태세가 된다니까---.

호호호."

진동으로 해 둔 그의 휴대폰이 아까부터 계속 몸부림을 쳤다.

"받지 그래요?"

"도망 나왔어요. 도망자예요. 지금 이 순간은---. 제가 없어도 병원은

잘 돌아가니까 염려마세요. 신경쓰이시면 밧데리를 빼버릴 수도 있어요."

 

그들은 금방 외국 체인의 호텔 레스토랑에 도착하였다.

약속한듯 배가 고팠던 두 사람은 투데이즈 스페셜로 브런치를 맛있게

먹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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