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라임라이트 시절 (1)

원평재 2007. 7. 8. 08:11

("라임라이트 시절"은 오래 전에 한번 올렸던 완전한 픽션, 허구입니다.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한번쯤 꿈꾸어 보고 싶은 백일몽입니다.

그러나 또 한번쯤은 이런 신기루 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고 싶은 마음의 기록이자,

한번쯤 그런 세계에 있었던 것 같은 상상력 승리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세번째 창작 단편집을 준비 하던 중에, 사라져 없어진줄 알았던 이 자료가 나와서

정리 삼아 다시 2회에 걸쳐 올립니다.

읽지 않았던 분들이 많았으리라 추측, 기대(?) 하며 다시 올려 봅니다.

  

청평 못가서 "안전 유원지"에 몇사람이 모였다.
남자가 나까지 셋, 여자가 둘이었다.
톱밥 때는 집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나는 초가을, 초저녁이었다.
모인 사람들이 인터넷 살롱 "라임라이트"의 패잔병들인지 아니면

마지막 살아남은 자들, '라스트 서바이버즈'라고 해야 옳은지 분간이

되지않았다.
이 곳에서 모이자고 약도가 들어있는 메일을 받은 것은 사흘전.
내가 소속되어있던 "라임라이트 살롱"이 문을 닫은지 꼭 한 달 만이었다.

가만히 있자.
"라임라이트"살롱을 이야기 하자면 내가 있는 문화재 관리국의 컴퓨터

관련 이야기부터 시작하여야겠다.
모든 일의 초창기가 다 그렇듯이 지금은 내가 있는 곳의 정보 저장 관련

능력이 가히 정부내에서 탑 수준을 넘나들고 있지만 여러해 전만해도

걸음마 수준이었다. 

정부 자체가 종합정보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겨우 SI 방식으로 구축을 시작해나가던 시절이니 문화재 쪽이야 말해

무엇하랴.
백본 장치를 시스코의 것으로 하면서도 선정과정에 말이 많았고,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달랐지만 중견간부들은 모두 컴맹 수준

이었다.

또한 당시만 해도 MS-DOS의 명령 지시어를 유저가 직접 사용하여야

그림이나 음악이 뜨던 시절이었으며 정보통신 회사인 "드림 도움"에서

"인터넷 살롱"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한지 한달이나 되었을까,

내가 있는 문화재 관리국에서는 중견 간부들에게 쿠폰을 주고 무료로

근처에 있는 "광화문 컴퓨터 학원"에서 교육을 받도록 하였으며 과정이

끝나면 반드시 그곳에서 발행하는 수료증을 받아오게 하였다.

우리를 가르치던 강사는 의욕이 넘쳤고 또 광화문 인근의 다른 위탁교육

기관과의 경쟁도 의식되었던지 우리에게 주식회사 "드림 도움"에서 그 때

막 Web 브라우저를 생성하여 만든 "인터넷 살롱"의 존재를 알려주고 그걸

가르치고 또한 가입도 시켜주었다.

인터넷 메일 주소니 닉 네임이니 하는 새로운 개념도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없는 수준에서 습득했으니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이었다.

MS-DOS를 뗄때쯤에는 곧 확장자 파일인 "dot HTML"
이 편리하게

인터넷 살롱계에 도입되어서 자신이 만든게 아니더라도 편리하게 남의

노작을 퍼 올수 있게되어서 컴맹을 면하는 수준의 초심자들도 대단한

모습의 그림과 경치를 자신의 것인양 자랑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드래그만 하면 그림이 삽질 되는 시대를 거쳐서 이제는

자신이 디카로 찍은 영상을 거의 실시간으로 쉽게 올리는 단계, 아니

지금은 이미 동영상 UCC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으니 변화가 끔찍하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의 학습 능력이랄까 경쟁력과 경쟁심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여서 명령어 치는 일이 수월치 않다고 낑낑대다가도 금방 몇가지

형태를 구현하면서 컴퓨터 강사들의 수준을 금방 넘어서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청출어람이나 청어람"이라고 어떤 강사가 칭찬인지 탄식인지를 읊던 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훈련을 함께 받았던 고급 인력의 수강생들이 인터넷 살롱에 가입할

때에는 자신들의 연령을 고려하여 몇군데로 분산하여 들어갔다.
내 나이 당시 40대 초반,
나는 "라임라이트"라는 살롱을 소개 받아서 가입하였고 이윽고 HTML

명령어를 모두 쳐가면서 그림과 글과 노래를 섞어서 가슴져미게 아름다운

허상을 만드는 작업에 깊이깊이 빠져들어가고 말았다.
라임라이트 살롱의 주인장은 여자였다.
그녀는 분명코 아름다워야 되었다.

내 상상의 세계에서는---.
그러나 실 공간에서의 존재론적 탐색을 해보면 그녀는 내가 접하거나

만들어 낸 수 많은 허상들처럼 오리무중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역사학을 전공하고 문화재 관리국의 말단 공무원으로 들어와서

현실계가 항상 빡빡한 나에게 이 사이버의 세계는 저 광막한 역사 속의

끝없는 신천지였으며, 얼굴도 모르는 여자 주인장은 장미꽃 보다도 더 곱고

아름다운 "파타모르가나(신기루)"의 모습으로 나에게 닥아올 따름이었다.

결국 라임라이트 살롱이라는 사이버 공간에서 나는 그녀의 정열에 넘치는

사이버 숨결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은근히 내 신분을 무슨 고시에 합격하여 중앙부서에 근무하는 고급
공무원으로 둔갑시켰다.
그만한 신분으로 이쪽의 아이덴티티를 축성하여야 장미 보다 더 아름다운

주인장이 안심하고 내 토양에서 뿌리를 내릴것 아니겠는가.

이런 갸륵하고도 순정한 마음이 근본인데 누가 무슨 신분을 사칭한다고

손꾸락질을 할 수 있으랴. 

당시는 인터넷 공간에서 '실명 확인'이라는 개념이 거론도 되지 않던 시절

이었다.

사람이 몰두하면 이렇게 변하여갔다.

 

이야기가 너무 광막하다.

이쯤에서 이야기의 전개를 구체화하고 싶다.
라임라이트의 여주인장은 문화재 관련의 지식과 또 귀한 역사적 자료등을
조합하여 매일 눈이 번쩍 뜨일 글을 쏘아 올리는 나에게 배구 경기로 말하자면
강 스파이크로 대쉬하였고  나도 손바닥에 불이 번쩍할 정도로 잘 리시브
하였다.

얼굴도 알지 못하였으면서 우리는 토스와 강 스파이크 그리고 절묘한
리시브를 매일 계속 하였다.
그 때는 오프 라인에서의 '정모'니 '별모'니 '벙개'니 하던 제도(?)도 개발되지

않았던 때라서 멀쩡한 중년남녀가 직접 대면하기란 조선 시대에 사대부 남녀가

대낮에 궁궐에서 만나는 일보다도 힘든 시절이었다.

두사람은 처음에는 메일 방식으로 서로의 숨결을 주고받았다.
얼마가 지나니까 매번 다시 주소를 치지않아도 글이 오고갈 수 있는
시스템이 "살롱"에 장착되었다.
대체로 살롱의 주인이 자기의 살롱을 홍보하거나 회원들에게 대규모로
안부를 전하는 제도로 고안된 것인데 실제로는 개인간의 감정도 교류가

될 수있는 새로운 통로가 되었다.

그러니까 주인장은 개인에게 시도 때도 없이 메일을 보내기도 하고

대량으로 모든 회원들에게 자신의 편지를 보낼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시스템이 당시만 해도 살롱 주인장의

특권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채팅이라는 통로까지도 설치되어 있는 마당이 아니던가---.

"라임라이트"는 회원이 2만명을 넘을 정도로 팽창하였다.
이 곳에서 활동하던 인터넷 그물망 속의 수 많은 선지자, 술탄, 이맘,

부족장들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해 나아갔다.
어떤 글쟁이가 빠져나갔을 때 '레드로즈'라는 닉 네임을 갖고 있는,
장미보다 더 아름답다고 내가 믿은 우리의 안주인은 통곡하였고
또 심사가 고약한 훼방꾼 같은 회원이 어느날 탈퇴하였을 때 그녀는
환호작약하는 글을 우리에게 보냈다.
물론 모두 인터넷 메일, 우리가 그냥 "멜"이라고 하는 그 장치를 통하여서

말이다.

그게 당시만 해도 새로 생긴 "살롱 메일 시스템"이었다

잘 모르긴 해도 그녀는 술이 좀 쎈 편인듯하였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메일을 통하여 엄청나게 토해놓은 수북한 토사물을
나는 새벽에 말끔히 걸레질하고 아름다운 고궁이나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답글을 달았다.

그녀는 술이 깨는 아침이 돌아오면 부끄러워하였다.

부끄러움으로 가득한 그녀의 메일을 받으면서 나는 하루의 일과를

신선하게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었다.
그날도 나는 청소부의 심정으로 메일을 켰다.
그러나 메일에는 기대했던 레드로즈의 토사물이 전혀 뜨지 않았다.
나는 얼른 살롱 "라임라이트"로 들어가 보았다.

맙소사!
그곳의 "이야기 방"에는 술이 취하면 밤새 나에게 토해 놓는 장미님의
사랑의 글들이 정신없이 널부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님이여"로 시작한 토막글들이 시간이 갈수록 농도가 진해지더니
마침내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다.
"아, 사랑하는 당신의 품안에서 잠들고 시포라"
이런 정도의 토사물은 약과였고 우리는 이제 키스를 넘어 깊이 몸을 섞고
있는 사이처럼 진도가 나가있었다.
사이버 섹스였다.

그것이 살롱 라임라이트의 "이야기 방",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에 길게

떠있는 것이 아닌가.

그 곳은 살롱 회원이 아니라 손님 자격으로도 읽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녀의 전화 번호라도 알아놓았을 것을---.
감미롭고도 뜨거운 메일의 효과에 익숙하여 우리는 이런 비상사태에도
대비치 못하였구나.
술이 취한 그녀는 새벽녘에나 눈을 붙였을 터이니 이 비상사태를 언제나

깨닫게 될는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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