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로 보이는 세 커플과 한창때는 갓 넘긴 여성 연극 배우 한 사람이 밴을 타고
아틀란타에서 뉴 올리언즈로 향하였다.
청년 가이드 한 사람이 더 있었으나 그는 안내와 운전이라는 직분에 충실하였을
따름이었다.
모두 이른 아침에 집을 떠난 셈이어서 그들은 우선 한인 마을, 둘루쓰(Duluth)에 있는
오리엔탈 마켓의 설렁탕 집에서 아침부터 먹었다.
혼자 온 여배우는 저 이름도 유명한 남지희였는데, 작년도에는 초반에
쏜톤 와일더(Thornton Wylder)의 "아우어 타운(Our Town)"으로 히트를
쳤다가 연말에 다시 올린 로드 쇼에서는 참패를 당했다고 밥을 먹으며
남 이야기하듯이 연극계의 소식을 털어놓았다.
연말의 참패는 같은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뮤지컬로 무대에 올라온 탓이 가장
컸고 또 연초에 힛트를 쳤을 때의 최고 배역들이 이런 저런 사유로 로드 쇼를
준비하던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나오겠다던 언약을 취소하는 바람에 막말로
개판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가끔 연극판의 거친 말을 마다 않는 여배우였지만, 연극 배우란 모름지기
이런 모습이구나 싶게 그녀의 이목구비는 분명하고도 아름답게 조탁되어서
세월을 이기고 있었다.
"연극 인생이 가난하고 처량하죠?"
중소 기업을 하다가 아들에게 물려주고 여행이나 다닌다는 부부의 부인이
여배우의 등장에 질렸는지 공격적으로 나왔다.
그녀가 남편을 대할 때에도 그런 막가는 소리를 하여서 특별히 여배우가
화를 낼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어쩌다 처음부터 남편을 무기질 급이라고 폄하하여서 일행을
이른 아침부터 깜짝 놀라게 하였던 것이다.
하긴 그래봐야 남편의 보호막을 믿는 구석이 더 큰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남편의 호칭은 윤 사장이었으니 그녀는 윤사장 사모님이었다.
"아이구, 사모님. 헝그리 정신이 바로 예술혼이지요."
어쨌거나 분위기가 좀 경직 되려는 순간, 현대 상사에서 전무까지 하다가
나왔다는 노 신사, 정 사장이 분위기를 누그렸다.
전무 직책으로 퇴사를 하였으나 호칭은 사장이었다.
연극 배우는 그의 말을 반색하며 수용하였다.
"네, 연극하는 분들이 다 취로사업 대상자들이라고 스스로 그래요. 실제로
IMF 직후에는 그런 돈이라도 타내려고 연극 협회에서 정식으로 신청한 적도
있었지요.
정말 연극인들이 다들 가난해요.
그래서 먹고 살려고 아르바이트를 따로 하는데 그나마 돈이 모이면 또 연극
올리는데에 다 털어넣지요, 호호호."
"요즈음은 문예 진흥 기금 같은 데에서 지원이 꽤 나오지 않나요?"
대체로 말이 없는 편에 속하던 마지막 남자가 대화에 잠시 끼어들었다.
서울에서 그날 새벽에 아틀란타로 막 들어온 커플의 남편이었다.
신분을 끝내 감추다가 어떤 계기에서 교수라는 그의 직함이 드러나기는 했다.
하지만 별로 신분을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정식 교수라기 보다
대학 내에 부속된 평생 교육원 같은데에서 강의를 하거나 백화점 문화 센터의
강사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부인의 입에서 가끔 남편의 직업이 교수라는 정황이 드러났으니, 설마 가짜
교수는 아닐듯 싶었다.
둘러대려면 창고나 건물을 하나쯤 소유한 사장님 행세가 훨씬 더 대접을 받는
세태에 그런 고리타분한 직업을 지어낼 일은 아닐 것이었다.
하여간 서울 본사에서 자료를 받은 가이드의 그에 대한 호칭은 내내 "변 교수님"
이었다.
(계속)
'팩션 FA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딕시랜드의 그녀 (3) (0) | 2007.09.07 |
---|---|
딕시랜드의 그녀 (2) (0) | 2007.09.05 |
라임라이트 시절 (2-끝) (0) | 2007.07.09 |
라임라이트 시절 (1) (0) | 2007.07.08 |
주홍 글자 (4-끝) (0) | 2007.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