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그걸 보고 저를 떠올렸다고 합니다.
평소 헤밍웨이 관련 작품 번역을 여러권 했고, 몇년 전 헤밍웨이 탄생 100주년 때에도
이런 저런 매체에 이름을 좀 올렸으며, <한국 헤밍웨이 학회>에서는 학회장에 이어
고문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니 무언가 관련이 있으리라 생각들을 하셨겠지요.
사실 작품 번역도 메이저 출판사에서 여러권했고, 그중에는 "헤밍웨이 미 공개 단편선"
이라는 좀 센세이셔널 한 것 까지 있었으니 무심한 분들이라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랐겠지요.
하지만 저도 그 건물과 간판에 대해 그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어느날 "헤밍웨이 출판사"라는 곳에서 논술고사 대비를 위한 텍스트와 논술을 위한 길잡이,
문제 예시, 해설 등등의 기획을 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하는 일 없이 바쁜 사람에게 80권으로 기획된 리딩 리스트 중에서 "무기여 잘있거라"
한 작품을 맡아서 편역을 책임져 달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간청을 물리치지 못하는 유약한 성품과, 내 입장에서 헤밍웨이의 작품을 맡지 않으면
체면문제라는 과욕이 겻들여서 요즈음 결국 그 일에 정신없이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헤밍웨이 출판사"라는 이름이 너무 파격적이라고 생각 되실지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유명한 "(마크)트웨인 출판사"도 있고 "조이스 출판사"도 있으니 크게 파격은 아니고,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할 인상적인 작명술이라고도 생각이 됩니다.
편역을 하면서는 작품에 나오는 남녀 관계, 노골적인 성 담론을 어찌 처리하느냐,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마당에---, 라는 고민이 대두 되었는데, 아무튼 문제가
많은 부분은 우선 많이 생략하고 또 에에둘러 표현하려고 했으나 사실은 너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경청 했지요---.
요즈음 청소년들의 수준을 제가 너무 과소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음주 부분에 대해서도 청소년 텍스트 임을 감안하여 적절한 수준의 가지치기를 했다는
사실을 덧붙입니다.
그리고 남녀간의 대화체 문제---,
우리나라는 일단 남녀 간의 대화라면 활자화 된 지문이거나 방송이거나
모두 남자가 여자에게는 "해라"라는 낮춤 말을 쓰고, 여자가 남자에게는
높임 말을 쓰는 오랜 전통이 있습니다.
이걸 확 뜯어고쳐서 상호 존대말을 하는 문체로 다 바꾸지는 못하고---,
유교 전통의 신봉자라서가 아니라 현재 우리 언어 습관상 완전히 바꾸면
실감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호 존중의 언어가 정착되기를 바라면서 중용을 취해 보기로
했지요---.
전에 내가 번역했던 것을 보아도 완전한 존대말로는 남녀간의 사랑의
교감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적당히 버므렸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자라나는 세대에게 읽힐 책으로 마련 되는 것이라서 조금 어색
하더라도 미래 지향적인 편역이 되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아, 경부 고속도로를 올라오다가 오른 쪽으로 보이는 그 건물은 출판사
소유의 건물이지만 도심과의 교통관계상 창고와 유통을 위하여 사용되고
있답니다.
지금 사용중인 사무실 공간은
서울 마포구 창전동 6-153번지 1층
K&K(한국헤밍웨이 출판사 세계문학부)
이더군요.
물론 저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도서 출판사입니다.
배경 음악으로 쓴 "무기들아 잘있거라"라는 노래에 관한 느낌입니다.
지금 이 글의 배경 음악으로 넣고자 그 제목으로 노래를 찾으니 나오지를
않습니다.
알고보니 원래 제목인 "무기들아---"가 아니라 그 사이에
<무기여 잘있거라>라는 소설과 같은 이름으로 변했더군요.
A Farewell to Arms에서의 복수 형태가 "무기", "무기들"로 비틀거리다가
소설 제목과 이중인화가 된 모양입니다.
아니면 포스트 모던 시대의 '패러디'성이 그간 강조되어 마침내 정착
된건지---.
말이 난 김에 하나 덧붙입니다.
Arms를 굳이 '무기'로 이해하지 말고 '팔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자는
주장도 본토의 논단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사랑(포옹)과의 이별"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다시 하여서,
허무주의의 극치를 나타낸 주제로 보자는 주장입니다.
하긴 문학에 정답이 없지요---.
새로 편역을 하면서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깊은 뜻이 작품에 녹아있는
대목을 새로 많이 재발견했습니다.
'연륜만한 보석이 없다'는 어떤 시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명작이란 그렇게 음미할 수록 새로운 가치를 전달해 주는가 싶습니다.
더위 속에 바쁜 조건에 붙들려서 "빼앗긴 여름"이라고 현상을 불러
보려다가 문득 김승옥이 오래전에 쓴 "내가 훔친 여름"이라는 작품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훔친 여름, 그렇게 적극적으로 이 계절을 보내렵니다.
페토우스키 스토운이라는 이 화석은 북 미시간 호수가에 있는
같은 이름의 마을에서 채취되는 기념품 "돌"입니다.
한 세대 전만 하여도 반출이 자유로웠는데 지금은 상당히
제한된다고 합니다.
청소년기에 헤밍웨이 가족들은 여름마다 이 곳에 매년 들렸던
기록이 나옵니다.
이 돌 중의 한 점을 돌아가신 영문학자 장왕록 선생님께 예전에
드렸는데, 따님인 서강대의 장영희 선생에게 몇년전 행방을 물어보니
잘 모른다는 대답이더군요^^.
헤밍웨이 작품명 통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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