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딕시랜드의 그녀 (4)

원평재 2007. 9. 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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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중소도시의 "간호전문 대학"에서 그는 국민윤리와 국사 등의 국책 과목을

가르치다가 나중에 문교부의 시책이 바뀌어 그런 시간이 줄어들고 마침내

사라지자 새로 생긴 '메디컬 잉글리쉬' 를 가르쳤다.

간호전문대학생들의 꿈이 모두 그러하지는 않았지만 대개는 미국의 RN 시험에

합격하여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의 간호사 자격 시험은 예나 지금이나 영어가 필수인데 초기에는 토플

점수로 잣대를 삼더니 나중에는 병원 상황을 전제한 '메디컬 시추에이션 잉글리쉬'

시험으로 까다롭게 바뀌면서 RN 시험이 전체적으로 어려워졌고 취업 이민의

문도 서서히 닫히기 시작하였다.

 

 

그런 변화의 초창기에 정아는 어떤 인문계 대학에서 변 교수가 있는 간호전문

대학으로 편입을 왔다.

정아는 아름다웠다..

4년제 대학을 휴학까지 해가며 거의 졸업에 임박해서 3년제 간호대학 초급

학년으로 편입을 하였으니 그녀는 나이도 설익지 않았고 기본 자세도 보통

또래의 학생들 보다 원숙하였다.

"선생니임~."

처음 들어와서 부터 그녀는 변 교수에게 찰싹 달라붙었다는 표현이 딱 맞는

그런 역동적인 학생이었다.

 

학생지도 교수 제도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변교수가 그녀의 담당은 아니었고

또 대부분 학생들은 교양과목 분야 보다는 간호학을 전공하는 여자 교수들을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잘 따르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졸업후의 취업과 관련이 있어서도 그랬고 또 거의 유일한 젊은 남자

교수에게 표나게 접근하기가 보통의 학생으로서는 눈치도 보이고 여하튼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변 교수는 학생들과의 사이가 대체로 소원한 편이었다.

국민윤리와 같은 딱딱한 국책 과목 탓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학생들과의 간격을

멀리한 탓이 더 컸다.

나중에 메디칼 잉글리쉬로 강의를 바꾸면서 사제 간격은 많이 좁혀졌으나

그래도 그는 엄하고 까다롭고 잘난체하는 교수였다.

말하자면 그 강고한 담벼락을 정아가 부수고 달려든 것이었다.

 

"선생니임~~, 어떡허면 좋죠?"

그녀는 편입된지 며칠 후에 변 교수의 방으로 찾아들어왔다.

보통 '부재중'이라는 팻말을 내 걸어놓고 있는 연구실을 수업이 끝나자 마자

따라 들어왔으니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표현이라면 'S라인'이라고 할 만만 늘씬한 몸매를 적당히 꼬면서 그녀는 

다짜고짜 인생 상담, 아니 진로 상담이라는 학생의 권리를 이용하여 교수의

연구실을 쳐들어 온 것이었다.

'진로 지도'는 당시로 치면 '문교부'의 권유 사항이었고 소속 대학의 독려사항

이었으며 따라서 교수의 의무였다.

 

"학생! 아무리 진로 지도 상담이 학생의 권리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막연

하잖아. 막연하기가 여기 대청댐 같이 넓어---."

"말할께요, 선생니임. 제가 편입을 왔는데요, 원래 국문과 학생이었거든요,

어떡허면 좋죠?"

"또 막연한 주관식 질문---."

대략 이런 막연한 방식으로 사제관계는 시작되었다.

 

 

 

'선정아'라는 이름의 그 편입생은 시인이 되고 싶어서 4년제 대학의 국문과를

택했으나 막상 졸업을 앞두고 생각해보니 간호사가 되어서 미국으로 가는 것이

인생의 '정도'랄까, 바른 길이자 빠른길 같아서 편입 학원까지 다니면서 3년제

간호 전문대학으로 옮겨 왔다는 것이었다.

"인생의 정도라---, 참 당돌하고 겁 없는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런게 어디

있겠어---."

변교수가 혀를 찼다.

 

"아, 제가 한이 많아서 그래요. 그래서 국문과를 택하고 시인이 되고자 했지만

제 능력이나 앞날이 그렇게 고상한 능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차라리 병들고 아픈

사람에게 봉사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간호사의 길이 어느날 눈에 확들어

오더라구요.

그 생각은 어둠 속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빛나는 것 처럼 어느 순간 제 앞

에서 발광했어요.

그러니 그게 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선생니임~."

"아, 그럼 답이 다 나왔네. 그런걸 갖고 무얼---. 아, 그렇다고 일어나 나가라는 건

아니고---."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고 멋이 있는 젊은이가 있을까, 변 교수야 말로 참으로

오랜만에 무슨 인생의 정도를 발견한 양, 정아가 마치 나비처럼 날아가 버릴까

걱정이라는 듯이 나가려고도 하지 않는 그녀를 붙들어 앉히다시피 하였다.

  

참으로 '선정아'는 이름처럼 선정적인 데가 많았지만 변교수가 그녀에게 이끌린건

그런 다소 야비한 욕망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매우 사소한 다른 데에 있었다.

그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국민윤리학과를 나와서 대학원 석사 과정도 모두

같은 대학을 다녔다.

국민윤리를 해외에서 유학하고 수학 할 수는 없는 처지라서 대학원 박사과정은

당시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정신 문화 연구원'으로 가서 장학금을 받아가며 계속

공부할 행운도 잡았다.

결국 까마득하고 험난한 학문의 도정이 의외로 빨리 큰 고생도 없이 일사천리가

되었고 마침내 박사학위까지도 얼른 진짜를 확보하고야 말았다.

 

하지만 다 지나놓고 보니 외국 박사가 아니라 국내박사의 타이틀에 얽메이게 되는

숙명을 따 안았고 학위 취득 후의 전도는 그리 밝지 못했다.

그는 속죄라도 하는듯이 경향각지의 대학 강사 시간을 거리와 지역적 불편도 마다

않고 뛰다가 마침내 지방 간호 전문대학의 교수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간호 전문대학의 발랄하고 예쁘고 부지런한 학생들은 무슨 포원 진 일이라도

있는양, 시도 때도 없이 그를 "교수님"이라고 불러대고 즐거워했다.

그럴수록 그의 꿈은 항상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오랜 전통,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목이 말라 있었다.

물론 '선생님'이라는 어휘 자체에 포원이 진 것이 아니라 그 '호칭사'에 따르는

함의가 타는 목마름이었을 따름이었다.

 

전문대학의 전임이 된 이후에도 그는 어렵게나마 강의 시간을 얻어서 관악산 아래

모교로 출강을 하는 날이면 하루종일 선생님이라는 호칭 속에 묻혀서 황홀하였다.

그가 바라마지않는 꿈은 항상 삼년제 지방 간호 전문대학을 떠나서 서울 대학으로

입성하는 '그날'이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이기만 해도 원도 한도 없었을 것이니 모교인 서울대학교야 말로

일러 무삼하리오.

 

지방 전문 대학, 그의 연구실에는 그래서 자고로 책이나 생활 필수품이 있을리

없었다.

나쁘게 표현하면, 아니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그는 배신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충성심이 결여된 인간의 전형일는지도 몰랐다.

 

그도 그런 자신의 내면을 들키지는 않겠다는 듯이 동료들이나 학생들이 자기의

연구실에 출입하는 것을 가급적 막았으나 선정아 양의 다이내믹한 돌진만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서울 가실 꿈만 꾸고 계시죠? 제가 다 알아요."

그녀는 자주 찾아 오면서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툭하면 그런식으로 그를 공박

하였다.

"정아에게 꿈이 있듯이 나도 꿈이 없으란 법이 있나."

"그래도 너무 표가 나요."

"나를 선생님이라고 유일하게 부르는 정아 말고는 이 연구실 분위기를 아무도

몰라.

내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해. 출입금지거든---. 필요하면 교수 연구동

입구에 있는 북 카페에서 만나잖아."

"네---. 그런 점에서는 감사드려요. 그런데 저만 유일하게 선생님을 선생님이라구 

부른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인데요?"

"아, 그런 감상 같은게 내 속에는 있어. 그건 그렇고 정아는 왜 그렇게 미국으로

갈려고 하나?"

"네에~, 미국으로 가는게 꿈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떠나는게 꿈이랄까요."

"왜?"

"아, 선생님께 꿈이 계시듯이 제게도 꿈이 없으란 법이 있나요, 호호호."

(계속)

  

 

뉴 올리언즈의 초입에 있는 Artisan Hotel에 머물었습니다.

유서깊은 예술적 분위기의 호텔이었지만 다 흘러간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벽화와 천정화가 예전의 영광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굳이 여기에 올리고, 또 남기고 싶은 남부 글로리의 흔적입니다.

 

 

지난 회에 카준 크레올 재즈, "Mr Acker Bilk"를 배경 음악으로 넣었는데

그 재킷을 구하여서 이번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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