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딕시랜드의 그녀 (8)

원평재 2007. 9. 17. 11:36

 오랜 시간 후의 해후 답지 않게 그들은 서로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 사이에 한두번 무슨 계기였던가, 사진이 오고 간적은 있었다.

아니 오고간게 아니라 그녀가 그에게 사진을 메일로 보낸 적이 있었다.

그의 사진은 영어 학원 PR 사이트에 항상 떠있긴 하였고---.

그녀는 원래 서양티가 물씬 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순전한 백인 여자 같지는 않았지만 히스페닉같은 느낌이랄까 그런

이국 취향의 모습이 항상 보는이의 감정을 일렁거리게 했는데

오랜 만에 다시 보아도 그 설레이는 느낌은 그에게 금방 되살아났다.

누가 보아도 그녀의 용모와 자태가 선정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었으나 본인으로서는 어쨌든 억울하다고 불평하던 옛 기억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억울하긴? 있는 모습 그대로 풍기는 인상인데---."

"선생님까지 그러시나요? 하여간 제 속 마음의 일부가 그렇게 나타나

보이니까 싫죠.

남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저는 속마음이 들어나야해요? 가면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예요."

그런 대화가 오고간 기억까지 배 교수에게는 생생하였다.

 

그녀는 배 교수를 보자마자 그의 품에 몸을 던지고 양 팔과 손으로 그를 와락

껴안았다.

그도 엉겹걸에 주위나 앞뒤를 잴 것 없이 오른 쪽 팔과 손으로는 그녀의 어깨를,

또 다른 왼 팔과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 살 근처를 얼싸안았다.

익숙지 않은 그의 포옹 자세가 결핍스러웠는지 그녀가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며 "하티 허그, 하티 허그"하고 부르짖었다.

그녀의 말은 발전기같았고 그는 금방 감전이 되었다.

뜨거운 포옹이란 양 팔과 손에 힘을 주는 것 만이 아니었다.

그는 부르르 떨며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로 그녀와 밀착이 되었다.

그녀도 자가발전의 고압 전류가 부메랑이 되어서 상큼한 머릿 냄새를

그의 얼굴에 흩 날리며 똑같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하였다.

아, 그리고 다시 머리, 어깨, 코, 귀, 코, 귀도 하였다.

 

일행이 모두 뿔뿔이 흩어진 것은 아까 확인이 되었지만, 배교수는 이제야

세상에 정말 혼자인 듯한 해방감을 맛보았다.

진정한 혼자임은 그냥 홀로일 때가 아니라 진정한 대자적(對自的) 존재로

자신을 자리매김할 때에야 이루어지는 신묘한 순간임도 그는 깨달았다.

대학 일학년 때 읽고 오랜 숙제로 남았던, 즉자적 존재와 대자적 존재라는

어휘의 진정한 의미가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풀리는 느낌이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그리웠어요. 그리웠어요. 정말 그리웠어요.

그리고 지금도 사랑해요, 사랑해요, 정말 사랑해요."

"나도 항상 정애 생각에 가득했구나, 하지만 그게 모두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만---."

"뭐가 그리 아직도 인색하세요---."

"인색한게 아니라 항상 남 보다는 진지한척 성찰하려다 보니 그렇게

인색하게 보일지도 모르겠구나.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원래 국민윤리 교수 아니냐,

하지만 인생 후반에 너만큼 그립고 보고싶은 사람도 없었다. 아마 죽을 때

까지도 그럴거야---."

그녀의 서늘한 눈매에서 금방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그가 맨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보니 내가 너를 사랑해 왔구나. 정말로---."

 

 

 

"제가 죄 받을 짓을 저질렀는데두요? 선생님 길을 막았잖아요."

"그 대신에 얻고 번 것도 많아. 돈을 좀 벌었고 이렇게 인간적으로 성숙도

하였고---."

"선생님, 우리 여기에서 이러지 말고 어디로 가자구요. 제가 보조로 사람

하나를 쓰고 있거든요."

그녀는 키가 왜소한 흑백 혼혈아를 하나 옆에 세워놓고 있었다.

"딸은 아니고?".:

"딸이라면 이렇게 일이나 시키고 있겠어요? 그리고 모르셨어요?

제가 불임이잖아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불임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카페로 갈까?"

배 교수가 제안하였다.

"아니요, 사모님도 오셨고 일행도 있는데 불편하잖아요. 밀린 이야기 하기도

그렇고---.

아, 밀린 이야기라기 보다 제 가슴 속의 이야기를 그런 데에서는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잘 아는 작은 호텔이 이 근처에 있어요.

한때는 문화 예술인들의 아지트였는데 거기도 지난 홍수에 다 망가졌지만

이럭저럭 들어가 지낼만은 해요."

그녀의 안내에 그는 엉거주춤, 그러나 군말없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가까이에있는 호텔로 가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틀란타의 병원에서 해고를 당하자 그녀는 금방 뉴 올리언즈로 내려왔다.

인근에 있는 모빌이나 빌락시, 그리고 텍사스의 오스틴, 와코, 갈베스톤의

병원에서도 간호사 자리가 났으나 그녀는 무조건 뉴 올리언즈 프렌치 쿼터로

내려왔다고 하였다.

 

"선생님, 제 DNA에는 방랑, 환상, 멜랑콜리, 그리고 제멋대로 살고 싶은 자유인

기질이 가득한가 봐요.

빈틈없는 스케줄과 초긴장 속에서 살아야하는 병원 생활 몇년만에 저는 넌더리가

났어요.

오퍼가 왔지만 다 집어치우고 프렌치 쿼터로 내려와 버린거예요.

이 곳의 재즈 음율에 얽힌 몽환과 멜랑콜릭 무드는 그냥 제 가슴을 후벼파요.

쿵작 쿵작 심장이 뛰는 박자와 맞먹는 재즈의 비트 박자와 선율은 그냥 제 온 몸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원초적 본능이랍니다.

저는 여기 프렌치 쿼터에 와서야 처음으로 정식 결혼을 해요.

카준 크레올에 속하는 흑인 연주자였지요. 사람이 참 좋아요.

우리는 재즈 카페를 운영했어요. 큰 돈은 몰라도 먹고 살만했고 우선 마음이

편했어요.

한도 슬픔도 마침내 다 사라진줄 알았지요.

그런데 미친년, 카트리나가 달려들었지요. 아마도 저 때문에 그년이 이리로

좇아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년 때문에 뉴올리언즈 전체로는 행방불명자까지 포함해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으나 여기 프렌치 쿼터 구역에서는 사람이 많이 죽지는 않았어요.

사람이 죽은 곳은 가난한 흑인들이 사는 게토 지역이었지요.

우리는 모두 수퍼 돔으로 피난을 갔어요.

그런데 제 남편이 그냥 거기에 피난민으로 있을 수만은 없다고, 재난 구조

작업에 발런티어로 나갔다가 흘러온 뗏목에 두다리를 잃고 말았어요.

살아남은게 천행이죠.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돈도 나오고 저는 그 가족이라서 프렌치 쿼터의

먼저번 가게를 날렸다고 여기 프렌치 마켓에 자리를 하나 얻었어요.

하지만 저녁이면 너무 외로워요. 재즈 음악을 들으며 한없이 울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들은 인근에 있는 어떤 호텔 데스크에 섰다.

그녀는 미리 예약이 되어있는지 카드 키를 받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갔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고 닫히고 다시 몇층이던가에서 열리고 그리고 호텔 룸,

문을 열고 그들이 조금 오래된 가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문이 닫히자 그녀는 배 교수의 목에 달랑 매달렸다.

"선생님, 지금 당장 저 좀 안아주세요.

선생님을 이젠 놓치고 싶지 않아요. 이번이 아니면 영영 놓칠것 같아요.

안아주세요.

샤워도 하기 싫어요.

아, 남편은 제가 가끔 데이트 하는걸 알아요. 이혼도 해 주겠다는데요---.

그러나 선생님이 아니면 저는 남편을 버릴 수 없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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