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기차가 연착, 연발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기차가 정시에 들어왔다.
"기적이 일어났네!"
"아뇨, 이건 어제 기차가 들어온 것입니다."
인도 유머라고 한다.
그런데 그 유머를 썰렁하게 만든 일이 일어났다.
저녁 8시, '바라나시'행 기차가 정말 정시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즐거워하기는 시기상조.
출발 시간은 한 30분이 지체하였다.
그래도 횡재한 셈이란다.
짐을 맡기고나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인파가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었고 모두 보퉁이를
이고 지고 있어서 짐들이 분간도 되지 않았다.
겨우 들어온 플랫포옴의 철로에는 고양이 만한 쥐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녔다.
기차를 타기까지 여러가지 긴장이 있었다.
아수라장 같은 델리 '역전앞에서' 짐꾼을 불러 일행의 짐을 '구루마'에 싣고
플랫포옴에 진입시키는 안내원 '씽'의 행동은 거의 야전군 사령관 같았으나
짐을 맡긴 우리의 심정은 조마조마하였다.
그러나 그건 한갓 기우!
그 난리통에도 하나 빠뜨림 없이 모든 짐들이 거뜬히 통과 의례를 마치고 우리의
앞에 등장하였으니 그 순간 힌두 청년 안내원 '씽'은 개선장군이었다.
플랫포옴도 또 하나의 난장판이었으나 인도인들은 바닥에 앉아서 먹고 떠들며
시간과의 싸움에 이기고 있었다.
막상 기차가 느릿느릿 들어오기 시작하자 사정은 더욱 가관이었다.
우리는 침대칸에 지정 좌석표를 모두 배정 받고 있었지만 일반칸에 타야하는
인도인들은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고 기차 속으로 돌진하였다.
아스라한 기억 속의 어떤 장면들이 떠올랐다.
한 세대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서울역 추석 전야 압사 사건 같은 것이 이곳에 아직 상시 존재하고 있었다.
아니 한국 동란 때는 이보다도 더하였지---.
우리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바라나시'였다.
"얼마나 걸릴까?"
우리말을 아주 잘하는 씽에게 물어보았다.
"한 열두 시간으로 아시면 됩니다."
그가 긴 속눈섭을 껌벅이며 대답하였다.
많은 함의가 있는 대답이자 표정이었다.
결국 일반 상식대로 열다섯시간이 걸려서야 '바라나시'로 입성하게 된다.
다음날 정오는 채 못채우고 우리는 기차를 내리게 된다.
침대차는 중국 있을 때에 길림성, 흑룡강 성을 여행할 때 이용했던 그
허름하고 불편한 침대 열차와 아주 흡사하였다.
그래도 냉방이 잘 되었고 인도인들이 친절하였다.
그러니까 일반칸에 탄 사람들 보다 우리와 함께 지정 침대칸을 이용하는
인도인들은 상류층이었고 그외에 배낭여행을 하는 얌전한 일본 청년들이 또
많았다.
3층으로 된 침대차에서 일행은 분산되어 인도인들과 섞였다.
해외 여행의 진면목이 나타나는 순간이었다.
마침 가까이에 있는 인도인 두 사람과 말문을 텄다.
영어를 아주 잘 하는 의사들이었는데 북부 파키스탄 가까이로 출장을 간다고
하였다.
"파키스탄과 왜 적대적인가?"
"아니다. 그들과 우리는 형제간이다. 좀 못? 동생이라고나 할까---.
내일 모레면 양국간 연례 크리켓 시합이 있을 정도로 숙명의 라이벌이자 이웃이고
형제이다.
너희도 남북이 대치하고 있지 않은가, 왜 그러나?"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별로 적대적이지 않다는 그들의 말이 백퍼센트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인도의 공용어, 힌두어와 파키스탄의 공용어,
우르두어가 매우 근친 관계어로서 뜻이 거의 통할 수 있는데 다만 글자는
시작하는 순서가 파키스탄에서는 오른쪽으로 부터라고 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긴장 관계를 외국인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
그들의 공세가 계속되었다.
"그래, 아마도 서구 매스컴과 미디어가 과장한 측면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교언과 덕담으로 말 마무리를 지었다.
아침 식사는 도리없이 현지에서 준비된 '신라면'으로 떼웠다.
홍차에 우유를 탄 '짜이'도 한잔씩 하였다.
통과 의례(Rite of Passage)는 인류사와 함께 하였다.
지금도 원시 부족들 사이에는 성년이 되는 젊은이들을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성인 의식을 혹독하게 시키고나서 탈락자는 버린 다음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만 데리고 돌아온다고 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집단의 성인 사회에 복귀하여서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도식화하면 대체로 출발(departure)-->개안(initiation)-->복귀
(return)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인생의 도처에서 수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일회적이지만은
않지만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이고 의미있는 과정은 대체로 청년기의 길목에서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문학 작품 속에서 개안의 주제는 작가들의 문학 수업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기차여행이나 배를 타고 떠나는 출발, 그 이동의 심상이 투영되어 있는
문학 작품들이 그런 맥락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와서야 또 무슨 통과의례이며, 무슨 개안의 주제인지 모르겠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내 정신 연령은 아직도 개안을 하지 못한 미숙아의 수준에 머물고 있기에
이제라도 통과의례를 갈망하고 있지 않겠는가---.
기차여행의 종점이 저 갠지스 강변의 '바라나시'인 점도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해
보았다---.
저녁 8시 출발의 기차가 8시에 들어왔다, 일단 지각을 한 셈이지만 이 곳 기준으로는 거의 정각
수준이란다. 어제 들어올 기차는 물론 아니었다^^.
난리가 났지만 흉을 볼 일만은 아니다. 누구나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으랴---.
무심코 포착한 얼굴들이 모두 애수를 띈듯하다.
아늑한(?) 침대칸의 내부---.
수도 꼭지에 무거운 추 같은 것이 달려있어서 그걸 돌리지 말고 위로 올리면
물이 나온다.
비단 기차칸에서만 아니고 모든 공공의 수도에서는---.
기차에서 내다 본 인도의 농촌 마을---. 넓고 아름다웠다.
컵 라면과 짜이와 일본 배낭 여행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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