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있으면 벼라별 궁리를 다 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치사한 추리는 그녀의 남편이 혹시 경제사범으로 복역중인가 하는 생각이었다.이런 추측은 조금만 진전되면 점점 더 파렴치한 공상과 기대로발전하여서 걷잡을 수 없게 된다.나는 얼른 이런 생각을 원인 무효, 폐기처분하였는데 신문사 있을 때에 인연이 있던 어떤 흥신소 쪽과 무슨 다른 일로연락이 닿아서 얼떨결에 그녀의 집안을 좀 알아보게 하였다.단서가 되는 "키 워드"는 그녀의 이름과 대략적인 주소였고알아야할 검색 목표는 그녀 남편의 현재 상태로 국한 하였다. 그녀 부부와 시댁은 집을 여러채 소유하고 있었고 부부의 거처,그러니까 두 사람의 주민등록은 각각 달리 되어있다는 정황이 쉽게 들어났다.부부가 별거를 하는건지, 부동산 관리를 위한 방편인지는 흥신소가 알아내야할 계약의 범주는 아니었다.부인의 외출이 새벽부터 잦다는 정도는 부수적으로 나왔다.그건 물론 나 때문일 것이었다.그 이상의 법 테두리를 넘는 부분은 계약 쌍방이 금지구역으로 삼았다.그녀가 나를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나의 지식? 내 처지? 알량한 내 명성?아니면 권태의 끝자락에 우연히 내가 서 있었나---.그러나 차츰 그녀가 나를 좋아한 근저에는 그런 치사한 토대가아니라 진실이나 정의에 대한 나의 타고난 집착이라는 특별한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되었다. 진실을 감출 필요없이 필봉을 휘둘렀던 내 성격이 이젠 이빠진 호랑이가 되었어도 은연중에 그 감각이 배어 나온다고 자주 그녀가 말한 적이 있었다.어쩌면 너무나 당연한듯한 그런 인간성이 그녀의 남편에게서는 신혼 초부터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연애 결혼이 아니었군요?""그럼요. 중매였죠. 제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숙부님이 부잣집으로 중매를 놓았지요."남편된 사람은 학벌도 좋았고 외모도 반듯했는데, 그런데 진실이라고는 그림자 조차도 달고 있지않았다는 것이다.하지만 나도 이제는 그녀와의 이상한 관계로 인하여 진실의 근본은 놓치고 정의도 상당부분 훼절되었는데,겨우 그 그림자만이라도 생래적인 특징으로 아직은 달고있다는말인가.그녀는 상황 논리를 무시하지 말라고하였다.이런 번민만으로도 그녀는 신뢰의 본질을 나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다 밝히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서 말힐 수는 없지만 그녀도 상황 논리가 없다면 말문이 막히는 지경이 아니냐,효력이 정지된 이혼 판결문이 영원한 면죄부도 아니고---.그건 그렇다치고, 결혼한 남편에게서 진실의 그림자 조차도 발견할 수 없었다면, 그 가식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었느냐는 나의 몇차례 질문에 그녀는 한번도 정확히 답하지 않았다. 구체적 사건이나 사실이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이 가식이라는 식이거나 앞서 말한 바데로 자존심 문제라고 하거나,꼬집어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면서 그녀는 모호한 답을단호한 방식으로 진술하였을 뿐이다. 물론 이 대답에 대한 진실의 스펙트럼을 내 능력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다.봄 안개가 묻어나올 때 시작한 다소 밋밋하던 사랑 연습은 여름이 되며 본격적으로 달구어졌고 늦가을의 차가운 모연이 넘실댈 때에도 식을 줄 모르며 보다 원숙해졌다."우리 다시 반년만 연장해요, 지방의 공장 건설이 좀 늦어지나 봐요."꼭 육개월이 되던 날 그녀가 조용히 속삭였다."그럽시다."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긴장 속에서 그날을 마지하던 나는 덧붙이는 말 없이 동의하였다."다만 이번 6개월은 언제 끝날는지 몰라요. 공장 건설이 빨리 끝날 수도 있으니까요.""그래, 무리하지는 말고 두고 봅시다---."이 덤덤한 기간 연장의 대화 방식과 그 내용을 진실이라는잣대에서 본다면 도대체 몇점짜리나 되었을까.또한 공사 기간의 연장이란 핑게도 어쩌면 다른 밝힐 수 없는이유의 또다른 표현은 아니란 말인가---.하여간 기약없는 반년이 다시 시작되었고 나는 훌륭한 운전기사를 둔 덕택으로 강연 일정의 여유를 계속 유지하였다.아, 그 사이에 두가지 일이 있었다. 한번은 갑자기 그녀로 부터 연락이 두절된 사건이었다.약속된 시간에 이 VIP 기사가 나타나지 않아서 당연히 내 일정은 낭패를 보게 되었다. 그 때 막 보급되기 시작한 핸드폰으로 아무리 연락을 했으나 그녀의 전화는 꺼져있었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부정행위를 하다가 적발되어 학부형 소환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죽을 맛"이라는 표현을 썼다.그리고 얼마되지 않아서는 우리가 탄 차가 교통 사고를 냈다. 전말을 소상하게 옮길 수는 없지만 사고 원인의 제공은 분명우리차가 했는데, 다만 상대방이 음주 운전이었다.교통 경찰이 오고 모든 책임은 음주 운전자 쪽으로 돌아갔다. 뒷 수습 단계에서 내 VIP기사, 손여사가 몇차례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그녀는 아무래도 유리한 진술을 꾸며댔을 것이다.사정은 음주 운전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마침내 내 미녀운전기사 쪽은 면책이 되었다.하지만 결과와 관련없이 이 VIP기사의 얼굴은 우울했다."죽을 맛"이라는 표현을 나는 다시 들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