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삼포진에서 발신 중"(마지막 회)

원평재 2004. 12. 9. 09:37
두 사건을 겪으며 팔자 소관이라는 다소 느슨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녀의 이름에 얽힌 우스게 소리도 처음 들었다."제 이름이 손 전망인데 야릇하고 이상하지 않았어요?""조금은---, 항렬자에 붙들린 경우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맞아요. 전망이라는 이름의 가운데에 있는 전이 돌림 항렬인데 거기에다가 다음에는 아들을 바란다고 바랄 망자를 붙였나봐요.어릴때는 손전등이라는 별명에 시달렸는데 철이들고 부터는 순절망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아요. 지금도 그래요."그녀의 얼굴은 종내 펼쳐지지않더니 나중에 생각해 보니 헤어지기, 혹은 사라지기 한달쯤 전에 조금 화색이 돌았다. 젊은 청년이 가정 교사로 들어왔는데 참 순수하다고 하였다. "진실 그 자체, 진실의 본체가 마침내 나타났단 말인가?"내가 마음이 좀 편치 않은 상태에서 한 마디를 농담처럼 했다."복잡한 말씀은 잘 모르겠고 하여간 순수한 청년이에요.""젊은이한테 팜므 파탈은 되지 마시게---.""뭐라구요? 저속해요."내 심사가 왜 그때 본능적으로 틀어졌는지는 모르겠다.그녀의 얼굴은 다시 찌프려지더니 종내 펴지지 않았고오랫만에 내 쪽에서 몸을 청하였으나 그녀는 응치않고 자리를 떴다.기억이 정확지는 않지만 부실한 연락이 한두번 있었던가,이윽고  한달 후에 폭탄 선언이 나왔다."기억하시죠? 공장 건설이 빠를수도 있다고---. 남편이 올라오게 되었어요."우리는 헤어지고 말고할 절차도 필요없었다.그녀는 핸드폰을 정지하였고 집 전화에서는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아니, 한번 그런적이 있었고 내가 다시 전화를 걸 이유는없었다.내 오관은 이성의 지배를 받아들였고 모든 일상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한편 국가적으로는 IMF가 찾아와서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대는 내 어깨는 뼈가 빠졌고,이런 판에 사랑 타령은 원시 목가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심지어 욕정까지도.그러나 아침 커피 시간에 아파트 아래에  와닿던 그녀의 멋진 세단과 비슷한 빛갈이나 모양의 승용차가 창 밖으로 보이면 나는 빙의 현상, 그래 홀림 현상에 빠져들어서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이별 직후의 당시 상황을 나는 엄밀히 "실연" 때문이라는 표현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거창하게 말하여서 불의에 의햐여 탄압받은 언론인이 그 폭력적 결과로 부부는 태평양을 사이로 별리 상태인데, 진실 게임 때문에 받아낸 가정법원의 이혼 판결문을 면죄부처럼 장농 밑에 간수하고 살아가는 여인으로부터기이한 제안을 받았던 것이다---.시간은 흘러 누가 보아도 야합이랄 수 밖에 달리 말하기 힘든 두 남녀의 한해 동안에 걸쳐서 벌인 정사의 끝은또다시 여인으로부터 나온 불확실한 이유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걸 "실연"이라고 명명하고 가슴을 져민다면 이건 너무나파렴치하고 이기적인 발상인지도 모른다.그러나 '빙의 현상', 곧 가슴과 머리를 휘어잡는 '홀림 현상'은 시시각각으로 사내의 가슴과 머리를 휘감아 짓이겼고표현할 길 없이 찢겨나가는 시간의 편린들도 좀체 제 자리에다시 모일 길이 없었다.하지만 역시 도도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개인사는 한갓 포말인가.우선 IMF라고 하는 한 나라의 전도조차 예측이 불가능한 일대 재난 속에서 개인인 나도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며 생존전략을짜나아가야했다.결국 존재론 적인 담론 위에서는 시간이 약이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잠언이야말로  만고의 진리이고 삶의 정석이었다.환율은 1700원대 까지 올라가서 내 가족들은 부족한 행활비를마련한다고 뉴욕의 변두리, 브롱스로 이사하여 낮에는 맨하탄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 근처에서 키오스크를 하나 차려놓고 노점상까지 하는 형편이 되었다.내가 가족이라고 부르는 구성원들의 이러한 참상은 전화값을아끼느라고 제대로 대화도 못나누며 나에게 전달되는 현실이었고지난날의 실연으로 인한 아픈 가슴은 목마른 자의 신기루만도 못한과거의 환상이 되었다.나는 이제 독서 지도 강좌같은 고상한 지적 노동도 모두 다내 팽개치고 학원의 영어 강의에만 열중하여서 고정 수입을 배가시켜야만 하였다.다행히도 나라가 미증유의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MBA를 지망하는 대학생들이나 청년 실업자들이 늘었고 이들은 GMAT를 통과해야 되었으므로 이 방면에 일찌기 눈을 뜬 나의 밥상이 되었다.토플, 토익의 영역은 원래부터 나의 텃밭이었고---.밥상이니 텃밭이니하는 어휘가 거칠긴 해도 이 바닥에서는 통밥으로 통하는 기본 어휘이다.IMF의 시련이 나의 실연을 치유해 낼 때쯤, 토플 시험이 CBT 방식, 그러니까 '컴퓨터 베이스 테스트'로 바뀌었다.공자님이 말씀하셨지, 성인도 시속을 따르라고---.시대적 변화에 민감한 나는 남들 보다 이미 조금 앞서나가서'컴퓨터 활용 학습' 곧 computer aided edu 방면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이를 토대로 인터넷 시험 방식에 적절한 솔류션도 독보적으로 개발하여서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이럭저럭 남들이 맨발 벗고 쫓아와도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족탈불급의 경지를 누리며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하자  지나간줄 알았던 상처의 아픔이 때맞추어 다시 나를 방문하였다. 물론 아픔의 강도는 세파가 훑고 지나간 풍화작용이 있어서말할 수 없이 무디고 미어진 상태가 되어서 어쩌면 사라진 낭만시대의 낭만적 재현같은 달콤하게 슈거 코팅이 된그런 아픔이 되어있었다."아차! 순절망 여사도 그 때 컴퓨터를 배우고 있었지!"어느날 아침, 이제는 사라진 세단 차의 정차를 아파트 창밖으로미친 사람처럼 기다리다가어떤 생각이 섬광처럼 내 머리를 가로질렀다."그래, 인터넷의 세계구나!"나는 무릅을 치고 마침내 그 때부터 인터넷 카페니, 칼럼이니, 블로그니 하는 싸이버의 바다를 유영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그녀의 닉도 모르면서 어이 저 광활한 인터넷의 바다에서 그녀가 떠도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으랴.   아니 그녀가 수영인지 유영인지를 하고나 있단 말인가---.여기에서 내가 생각해 낸것이 무작정 e-mail을 광활한 인터넷 메일의 바다로 띄우는 것이었다.이럴줄 알았으면 손전망 여사의 닉 네임이나 e-mail 주소라도 알아놓았으련만---.하지만 우리가 헤어지던 시절만해도 이런 장족의 발전이 이 신천지에서 천지개벽처럼 일어나리라고는 감히 상상이나 하였던가.나는 그녀의 이메일을 내 생각데로 만들고 꾸며 보았다. 수많은 컴비네이션, 그래 순열과 조합이 가능했으니 그 "경우의 수"와 "숨은 뜻"을 어떻게 조합했는지 하는 구체적 실예는 여기에서 들수도 없다.어쨌든 나는 그 수많은 주소를 향하여 나의 이 메일에 답신을 보내라고 발신에 발신을 거듭하였다.응신이 있었냐고?엉뚱한 응신이나 미친녀석 취급의 답신은 간혹 있었으나 모든 절규는 메이리없이 허공중에서 사라졌다.아니 "실패한 전달"이라는 응신이 대부분이었다.간혹 전달된 주소로 다시 메일을 날려보면 잘해봐야 미쳤냐는답신이 돌아왔다.그럴 때면 핵 낙진으로 죽어가면서 전 세계를 향하여 절규하던"삼포진에서 발신중"이 떠올랐다.그 사이에 아들과 딸은 뉴욕 대학(NYU)과 SUNY, Stony Brook에 스칼라쉽을 받고 입학하였다. 실력과 자신 같아서는 보스톤의 두 명문으로 갈수도 있었으나 아이들 에미가 이리저리 모은 돈과 모기지를 얻어서 맨하탄에음식점, "델리 카티슨"을 열었기 때문에 엄마를 도와야 한다는 효심이 그들의 발목을 뉴욕에 붙들어 매었다.그러던 중에 "나인-일레븐", 즉 "9-11 사태"가 터졌다. 내가 서울에서 토플 열강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식당에서 먹고 있는데 지구 종말같은 난리가 화면에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광란의 전율이 아니랄까봐서 TV 화면도 전율하느라 흔들리고 끊기고를 반복하였다. 나는 예전에 근무하던 신문사, 외신부로 달려갔다. 속보가 조금 빠르게, 또 정확하게 들어왔다. 맨하탄, 내 가족들이 영업을 하는 그 곳이 그라운드 제로 지역으로 쑥밭이었다.일반 전화는 물론 모바일도 통신 두절이었다. 밤을 꼬박 세운 다음날 새벽에 가족들로 부터 내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WTO 가까이에 있는 건물에서 모두 꼼짝 말고 들어가 있으라는경찰과 소방관들의 권고 방송을 무시하고,한국인의 기질과 기지를 발휘하여 여럿이서 함께 튀어나왔는데 그게 생사를 가른 선택이었던 모양이라고 아내가 울먹였다."아이들은?""모두 신학기가 막 시작되어 학교로 갔다가 집으로 걸어서 들어왔어요."캠퍼스가 맨하탄에 있는 NYU의 큰 애가 특히 놀라움과 고생이심했던 모양이다."하여간 당신도 가족이라면 다 때려치우고 맨하탄으로 빨리 나와요. 엉엉엉!""여보, 여기 서울 일도 순서가 있지. 그리고 거기간들 내가 막일을 도와줄 수도 없고---.""당장 이리로 와요. 그렇지 않으면 영영 헤어집시다. 우리가 지금 CNN에 나오는 저 흙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몰골과 꼭 같아요. 엉엉엉!""그래, 내가 곧 그리로 나갈께.""잠시 왔다가 돌아갈 생각 말아요. 완전히 보따리 싸서 와요. 안그러면 나 바람이 날거예요. 엉엉엉.""바람이 날 것 같다"는 말이 나왔을 때에야 겨우 나는 현실감을 찾을 수 있었다.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위하여 지난 십년간 뼈빠지게 일한 것은아무런 감사의 대상이 아니고 이제 잘못하면 아내와 아이들의마음을 잃어버릴 판이 되었다."그래, 내가 너무 우리식데로 살았구나. 평생을 전쟁치면서 살았어---. 돈만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면 모든 일이 다 된다고 생각했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순절망만 주고 살았을까---."영문을 모르고 나를 바라보는 외신실의 야근 당직 후배에게 나는 뜻모를 말을 주절대고 있었다.   마치 "삼포진에서 발신중"이라는 옛 기억의 송신문처럼---.편히 쉬어요 내사랑/모짜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