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테푸르) 시크리 성에서 왕자를 얻은 무굴 왕조의 3대 "악바르" 왕은 기쁨에 넘쳐
이곳으로 천도를 한다.
그러나 물 부족과 기간 시설의 미비로 결국 16년만에 아그라 성으로 돌아간다.
아그라의 타즈 마할도 나에게는 감상을 자아냈지만 그보다 더 한 감상은 폐허가 된
이곳 시크리 성에서 절절하였다.
팩션 한 꼭지를 이 폐허의 성채에서 자아내어 아래에 연재해봅니다---.
지방 국립대학에서 민속학 교수로 있는 내가 인도 여행을 처음 한다는 것은 좀
부끄러운 일이었다.
다만 나의 주 전공은 아메리칸 인디언과 고대 동아시아 선주민들간의 민속적
관계를 따지는 일에 집중되다보니 이런 편향이 생긴 것 같다는 변명은 가능하다.
반대로 내가 깍듯이 모시는, 같은 과의 원로이시고 이제는 명예교수로 은퇴하신
박문식 선생님은 나의 이런 자세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중국과 일본의 고미술이 전공이던 이 분은 두 나라는 물론이고 남들이
생각지도 않던 시절부터 인도 문화와 민속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거의 독학으로
진행하여서 국내에서는 독보적 위치를 선점한 분이기도 하다.
그는 인도에도 여러차례 다녀왔고 한 두해 정도는 연구년으로 아예 그곳에서
생활도 하고 배냥 여행으로 인도 전체를 돌고 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부인과 함께 갔으나 몇달만에 부인이 풍토병을 앓는 바람에 혼자서 두해를
보내고 온 관록이 학계에서는 아직도 회자되곤 한다.
청년 시절부터 원래 머리칼이 하얀분이라서 인도에서 이발이나 면도도 하지 않은채,
인도 전통 옷을 휘감고 찍어서 부쳐 보내온 사진을 보며 우리는 성자가 따로 없다고
놀란적도 있었다.
"어떻게 혼자 지내셨어요?"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여기 우리나라에서도 밥 짓고 빨래하는 일을 내가 많이해요. 집 사람이 몸이
약하잖아---."
"에이, 그게 아니라 어떻게 그 곳에서 독신으로 지내셨어요?"
"아, 인도 여자하고 연애했지. 하하하."
그렇게 유머가 있고 호방한 성격인데 사실은 인품이 고결하였다.
그렇게 역동적이던 그분도 나이가 드시면서 언제부터이던가 인도 이야기를
삼가했다.
심지어 학문적 차원으로 인도쪽에 관하여 물어 보아도 그는 별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이러저런 대중잡지 같은 데에도 가리지 않고 핑크 빛이 도는 내용으로
인도 이야기를 많이 써내던 분이었다.
"학문하는 분이 좀 주책스럽지 않은가---."
그런 말도 돌았지만 민속학이라는 것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잡학 대접을 받고
무시되는 세태에 누군가라도 자꾸 그 방면에 대하여 선전 문구를 돌려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 박 교수님의 지론이었다.
"그런 잡문을 원로께서 자꾸 쓰시니까 잡학 대접 받지요---."
팔팔한 젊은 학자들이 반발도 하곤 했으나 그분의 지론을 꺾지 못하였는데
어느때 부터이던가 그는 말문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저 이번에 인도갑니다. 선생님."
마침 그분이 명예 교수로 강의를 나오던 날에 만날 기회가 있어서 내가 말했다.
"어? 학회 일로?"
그분이 예의 그 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냥 관광 여행입니다."
사실은 내 친구 하나가 크게 사업을 하는데 내 이름을 그 회사의 사외 이사로
올려놓고 있었다.
물정에 어두운 백면서생(白面書生)을 편리한대로 써먹는구나 싶으면서도
사실은 고마울 때가 많았다.
서울 본사에서 분기별 정기 이사회와 때로 임시 이사회를 할때면 왕복 여비와
출장비를 내가 있는 지방으로 두둑하게 보내주었고,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던 나같은 사람에게 새로운 지평으로 눈을 뜨게 하여
주었다.
이번에도 그 회사에서는 인도에 투자 계획이 있어서 회장과 참모들이 현장
확인을 나가는데, 나를 그 일행에 넣어준 것이었다.
델리에서 가까운 구자라뜨 지역이 투자 대상 지역이었고 현장 답사가 끝나면
짧은 여행 계획도 들어있었다.
타즈마할, 카마수트라, 바라나시, 그런 이름들이 두서없이 비서실로 부터 내게
전달이 되었다.
"학기 중에 관광 여행이라---, 팔자 좋군."
박 교수가 조금 힐난하는 쪼로 내 말을 받았다.
"추석 연휴가 금년에는 공교롭게도 조금 긴 여가를 허락하네요, 선생님---."
나는 사외 이사로 있게 된 경위와 여행의 관계를 대충 설명해 드렸다.
"아이구, 그렇다면 축복이오. 그런데 인도가 처음이라고---? 그럼 누가 여행
안내를 하누?"
"그건 제 친구 회사에서 알아서 다 준비를 한답니다. 한국 담당으로 있는 인도
최고 가이드를 섭외해 두었다는군요. 한국말을 아주 잘하고, 한국에도 왔다갔고,
앞으로 제 친구 회사에서 일을 할지도 모른답니다."
"건방진 젊은 녀석들이 그곳에 좀 있지---."
그가 좀 의외성 발언을 하며 내 시선을 비꼈다.
"아는 사람이 있으신지요?"
"아, 아닐쎄. 잘 다녀오게."
내 인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다.
사업상의 문제는 내가 관여할 바가 못되었는데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아무래도
인도 사람들의 전반적인 구매력이 확보될 때 까지는 좀 기다려야하겠다는
쪽으로 투자 계획의 가닥이 잡혔나갔고 그건 어쨌든 여행길은 애초의 계획대로
부담없이 실천되었다.
큰 회사의 회장실이 움직이는 캐러번 여행과 같아서 기획은 철저했고 따라서
안내를 맡은 인도 청년도 예고된 데로 최고 수준같았다.
자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우리나라가 그나마 이 정도로 먹고 살게 된데에는
이런 기업의 조직들이 다 바탕이 되어서 가능하구나, 하는 감탄사도 저절로
나왔다.
안내를 맡은 인도 청년도 한국의 그런 강점에 대해서는 백퍼센트 동감을
표하였다.
"원자폭탄을 인도가 만들면 무얼합니까. 원자력 발전소도 없어서 맨날 전기가
왔다갔다 합니다."
이런 정도는 약과였다.
"한국 고속도로 타보고 부러워서 미치겠더라구요. 우리가 지금 달리는 이 도로도
공식 서류상으로는 4차선 포장 도로입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2차선도 포장이 제대로 안되었잖아요.
공무원들이 물자를 다 팔아먹은 결과입니다. 정치인들도 다 썩었어요. 한국이
부러워요."
맨날 이런 식이었다.
델리 근방에서는 외형적, 공식적인 부분에 대한 불만이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더니 우리가 바라나시라던가, 타즈마할과 같은 문화와 예술, 혹은
종교와 감성적 부분을 접하기 시작하자 그의 감정토로도 내면적인 부분으로
옮겨가기 시작하였다.
"인도에 카스트 제도가 있는 줄은 다 아시지요?"
그가 바라나시를 떠나면서 화두를 던졌다.
"그거 지난 세기의 유물이고 이제 점점 사라지는거 아닌가?"
회장이 재미있다는 듯이 반응을 보였다.
기업가의 투자 마인드는 현재 상황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
미래 가치에 더 큰 관심을 갖기 때문이리라.
"회장님, 죄송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인도에서 카스트가 사라지기에는
아직 멀었습니다. 원래 최하층 수트라 계급, 그러니까 언터처블은 15퍼센트
정도였는데 최근 인도 중부에서는 정책의 잘못으로 그 숫자가 60퍼센트 정도로
늘어나고 있거든요.
정부에서 무관심하다보니 먹고 사는 정도의 보조금만 받는 하층민들끼리
모여서 마구 인구 생산을 해대는 바람에 인구 폭발이 되고있지요.
결국 교육 받을 기회를 죽어도 얻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만 양산되고 이들은
지금 이 현세에서는 희망이나 기대도 갖지 않지요.
그냥 굶어죽지 않고 연명하면서 막연하게 내세의 복락만을 꿈꾼답니다.
어제 보신 갠지스 강변의 그 바라나시의 풍경이 대표적이지요.
사실은 갠지스 강변이라면 한국의 역전 앞과 같습니다. 갠지스가 강변이라는
뜻이거든요---. "
"야아, 이 친구. 우리말이 가히 완벽하네."
회장이 감탄하였다.
"힌두어는 제 모국어이고 영어도 자신있습니다"
이 친구가 회장 앞에서 자기 피알을 작심한듯 하였는데 인도에 대한 자가
비판은 조금 도가 지나친듯도 하였다.
"아, 미안하지만 영어 잘하는거야 특별한게 아니지. 이 곳에서는 영어가 모국어
같은 것이잖아---."
회장이 조금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닙니다. 수트라들은 영어를 전혀 못합니다. 그런데 그 계층이 엄청나게
늘어나서 인도에서 영어 못하는 사람 계속 늘어납니다."
그도 회장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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