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팩션) 폐궁 시크리 잔해에서 찾은 DNA (세번째-끝)

원평재 2007. 11. 4. 06:39
 

 

 

시크리 성에서 우리 청년 가이드가 특히 강조한 것은 악바르 왕의 왕비에는 힌두, 이슬람, 

심지어 크리스찬 부인 까지 있었는데, 모두 따로 따로 궁을 주어서 개별적으로 쓰게

하였으되 그녀들의 침소에는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 통로가 따로 또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악바르의 힌두 왕비는 이 곳에서 이 비밀 통로를 이용하여 비정상적인 남녀 관계로

임신을하였다는 사실을 가이드는 심혈을 기우려 암시하였다.

내 친구 회장이 그런 설명에 잠시 즐거워하는 낌새를 눈치라도 챘는지 그는 이곳 시크리

성에 관한 일반적 설명 보다도 해설의 상당 부분을 그런 사실에 할애하여서 이래저래

시크리 성 관광은 전반적이 못되고 편향되어 버렸다.

 

 왕비들의 침소---. 각각의 방이 특색있게 달리 꾸며져 있었다.

 

 시크리 성은 사막지대에 있어서 항상 물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 궁전의 중앙에 있었다. 

요즈음은 동력을 이용하여 물을 항상 공급한다.

악바르 왕은 수도 이전 14년 만에 물부족 때문에 결국 아그라 성으로 돌아갔다.

 

 

마침내 기획실장이 한마디를 하였다.

"여보게, 왕자 탄생에 너무 편향적인 견해야.

다른 문헌에 보면 왕비가 임신과 출산을 한 것은 아그라 성에서였던것 같네.

다만 이 곳에 있는 수도승은 오로지 왕자 출산을 예측한 것이고 왕이 그것을 고마워하여

별 볼일 없던 이 곳 성채를 크게 세웠어.

그리고 나중에는 수도로 삼아서 무리하게 이전한 것 뿐이야."

"아닙니다.  왕자 탄생에 대해서 제가 하는 말은 모두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책들에 그런 내용이 많아요."

그가 지지않고 자기 이야기를 변호하였다.

 

"답답해 죽겠네. 내가 읽은 인도 역사책들은 다 그렇지 않은데 어디에서 갖고온 엉터리

설화, 야담 같은걸 같고---.

공연히 회장님이 재미있어 하시니까 어거지를 막 쓰네."

수행 비서도 이제는 힌두 청년의 본심에 의심을 품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를 갖고

물고 늘어졌다.

아무래도 투자 우선 순위가 후순위로 밀린데에 이 인도 청년의 입김이랄까, 말빨이 먹혀

들어간듯하여 투자 주창자로서의 미운 감정이 묻어난 것 같았다.

이런 다툼은 물론 회장님이 화장실에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화장실의 앞 뒤가 좀 헷갈린다---.

 

 

"제가 거짓말 한다는 것입니까? 저는 인도 청년인데도 한국에서 소고기 불고기를 먹었고

심지어 보신탕도 맛 보았다는 이야기를 솔직히 다 털어놓았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세례도 받았지요.

제 이름은 이제 '마가'라니까요. 영어로 '마크', 제 집에서도 이런걸 알고 저를 내 쫓다시피

했다는거 회장님께 다 말씀드렸어요.

저는 참말만 해요. 거짓말 못해요."

일이 이상하게 심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힌두 청년은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이 사람아, 자네 정직성에 쇠고기, 보신탕은 왜 들어가나. 내 말은 악바르 왕의 아들이

탄생한 이야기를 너무 빙빙 돌려서 재미 위주로 만들지 말라는 이야기 일쎄.

토론의 주제를 돌리지 말라구.

그리고 이제 그만하세."

 

 

 

회장님이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저는 제 진실성이 의심 받아서 참을 수 없습니다. 회장님께도 말씀드리고 판단을

부탁해야겠습니다."

그가 원군의 모습이 보이자 가만 있지 못하겠다고 씨근 대었다.

"아이구, 정 교수님. 무슨 말씀 좀 해주세요. 이거 제가 죽일놈 되네요---."

비서가 내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무슨 일들입니까?"

회장이 경직된 분위기를 파악한듯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아, 회장님. 별일은 아닙니다만 제가 설명드리지요."

친구간이지만 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존대말을 썼다.

"여기 시크리 성에서 악바르 황제가 자식을 보았는데 그 자식의 DNA가 왕의 것이냐

여기 수도승의 것이냐에 의견이 나뉜 것입니다. 재미있으시죠?"

"하하하,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저 재미있게 상상해 보는 것이지---, 하하하."

회장이 유쾌하게 웃었다.

 

"제 말씀은---."

씽이 억울한 얼굴로 나서려고 하였다.

"어이, 씽. 그런 일로 다툴 필요 없어. 그건 아무도 모르니까. 당사자들 말고는---.

최근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생물사회학이라는 학문이 뜬다고 하지, 아마.

원앙이 금슬이 좋고 학이 고고하다지만 그것들이 품는 알을 조사해 보면

30 퍼센트 이상이 수컷 짝의 것이 아니라는거야.

동물이 복합 교미를 하는 원인을 캐보면 모두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는구만.

보호해주는 페이트론이 하나 더 생기면 자신의 DNA 생존 가능성도 두배로

늘어나잖아.

신라때 나온 화랑세기 같은 데에도 귀족 계급에서 귀부인들이 풍월주들과

관계하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요, 정교수님?"

 

"아, 네, 그건 우리 학자와 일본 학자들 사이에 이두문 해석에 차이가 있지요---.

화랑세기가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어떤 지방 도서관에서 발견된 이래 그것을

우리 학자가 약식으로 복사하여 발표한 과정에도 소홀한 부분이 있구요.

화랑세기는 원래 우리의 화랑과 원화의 기원, 삼국 통일 위업에 기여한 젊은이들의

조직과 그 유래 등을 적어 놓은 것인데 그게 일부 일본 학자들에 의하여 남녀간의 

프리 섹스 역사로 악의적 왜곡이 된 부분이 있지요.

물론 화랑제도는 고려와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변질된 측면이 있습니다.

화랑이란 말도 남자무당[巫夫]·창우(倡優)·유녀(遊女)·무동(巫童) 따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어 마침내 화랑도의 본질적인 성격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 되었지요.

심지어 우리나라의 현재 일부 화랑도 연구자들이 화랑을 신라시대의 남자무당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이처럼 조선시대에 변질된 화랑이란 용어를 마치 신라시대의 그것으로

잘못 판단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구요.
최근 우리나라 신진학자들에 의하면 오히려 화랑세기의 이두문이 당시 일본 왕실의

상용어였으며 의전 구문이었다는 연구도 나오고 있지요."

나는 회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씽의 이야기 흐름을 차단하려고 슬슬 말문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예전의 물 탱크를 같은 제조 공법으로 새로 조립하고 있었다.

 

 

 

"아, 그것 참 통쾌하군요. 내가 문외한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일인들이 주장하는걸

언젠가 한번 읽고는 분통이 터진 적이 있어요."

"네, 하여간 회장님의 독서 범위는 우리같은 학자들도 못따라갈 지경입니다.

제가 요즈음 경기도 일산에서 포교, 시무하시는 불교의 정덕 스님과 학문적 교류를 좀

하는데 참 재미있는 내용이 많더라구요.

석가무니께서 오랜 힌두 전통의 인도에서 새로운 종교, 불교를 갖고 나타나셨을 때에

많은 저항과 어려움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불교의 대경전은 한 백가지 이상되는 방대한 섹션으로 구성됩니다만 그 중의 약 절반

가량은 고전 설화의 내용이랍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불교계에서 아직까지 별로 연구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사실은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는 것이지요.

그 내용을 단적으로 요약해 보자면 먼저 힌두적인 가치랄까, 힘이랄까, 질서랄까,

그런 현실적인 여건이 먼저 이야기 속에 제시된 다음, 그러나 마침내 가장 힘이 세고

세상을 구제할 주체는 역시 부처님 공력이고 불교이다---라는 식으로 전통, 전래의

힌두 전설에 색채를 가미하고 덧씌우는 그런 콘텐츠랍니다.

인도는 본래 물이 부족한 나라라서 이 물과 관련이 있는 용왕, 그들 말로는

나가(Naga) 전설이 많은데 이 나가, 즉 용왕이 힌두 왕에게는 복종을 안해도

부처님에게는 복종을 한다는 내용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불교경전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용왕이 현실의 힌두 왕에게 불복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이 곳의 힌두 왕들도 무어라

왈가왈부 할 수가 없답니다.

그만큼 물을 다스리는 용왕의 존재는 이 곳에서 절대적이니까요---.

그러한 용왕도 부처님에게는 머리를 조아린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화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 악바르 왕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지요.

지금 악바르 왕에 관한 전설이나 역사적 이야기도 여러가지가 전래되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바뀌고 지배 계층이 달라지면서 여러가지 가치와 형식이 윤색되고

전도되기 때문이지요.

그런걸 어느 한가지만 맞다고 주장한다면 그게 좀 편협한 넌센스가 아닐까요.

악바르 왕이 두루두루 모든 종교를 다 수용했듯이 우리도 야담 차원의 어느 한 설화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이것 저것 다 수용하면서 그 의미를 알아 볼 필요가 있겠지요---."

 

 

 

 

 

 

"내 친구라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시 정 교수께서는 대단한 연구 안목을 갖고 계시는군요.

학문하는 자세가 아주 존경스러워요.

결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평형 감각을 유지하시는 접근 방식이 놀라워요."

대 기업의 회장은 역시 회장이었다.

이제껏 한쪽으로만 관심이 있는듯하더니 문제가 생길듯 하니까 얼른 양쪽을 아우르고 있었다.

 

"아, 이 분은 교수님이세요?"

씽 청년이 펄쩍 뛸듯 놀랐다.

"아니 이때껏 그런 눈치도 없었나?"

기획실장이 핀잔을 주었다.

"저는 그저 이사님인줄로만 알았지요. 내내 정 이사, 정 이사 하고 회장님이 부르셔서---.

어느 대학에 계시는데요?"

"자네가 어디라면 알겠나?"

또 기획실장이었다.

"그럼요, 제가 한국에 자주 나가고 한 일년 가량 사업도 했는데요---."

"무슨 사업을?"

"아, 네---. 밥장사를 했지요. 강남에서요."

"카레 장사?"

"아뇨. 그건 벌써 자리 잡은 식당과 체인도 많아서 완전히 인도 전통 음식을 했지요."

"그런데?"

"망했지요. 반년 만에 몇십만불 꿀어넣고 문 닫았어요."

"왜?"

"손님이 없었어요. 너무 인도 전통식이어서---."

"그래도 한국에서 사기 당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네."

나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망한 일은 가슴 아팠지만 내 동포가 사기를 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런 사실을

또 그대로 핑계대지 않고 말하는 씽의 자세가 진정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사기 당하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서 그렇지요. 어리석기도 하겠지만---.

그런데 교수님은 무슨 전공이세요?"

"나---, 민속학이라면 알려나. 포크로어라고 하지---. 앤쓰로폴로지, 인류학

하고는 사촌간인데---."

"민속학이라는 말 너무나 잘 알아요. 그런데 어느 대학 교수님이신가요?"

"어디라면 자네가 알려나. 한밭 대학교라고---."

"네에?"

그가 입을 활짝 열고 화들짝 놀라며 다시 한번 펄쩍 뛰었다.

하지만 그런 다음에는 이내 입을 다물고 그 이상 말이 없었다.

"왜 놀라나? 우리 학교를 아는가?"

"아니오."

그는 짧게 대답하고는 일행에게 사진 찍는 시간을 준다며 자신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자리를 떴다.

 

이윽고 시간은 황혼을 예보하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걸어서 성채를 빠져 나와야만 했다.

아까 들어올 때 시비가 있었기에 타고온 차는 아래로 일찍 내려가 있도록 씽이

조치하였기 때문이었다.

걷는 거리가 만만치는 않았지만 회장 이하 모두 걸어내려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더웠던 날씨도 석양이 되면서 견딜만 하였고 내려 오면서 살피니 이제껏 보았던

복구된 유적지 못지않게 허물어진 폐허도 만감을 주면서 우리를 배웅하였다.

 

"교수님, 박문식 교수님을 아시겠군요?"

씽이 혼자 걷는 내 옆에 붙었다.

"아, 리타이어 하신 박문식 명예 교수님? 그분을 어떻게 아는가?"

"네, 그분이 인도에 계실 때 저희 집에 와 계셨답니다."

"아주 옛날 이야기인데---?"

"네, 오래 전이지요. 30년 전에 한 2년간 계셨답니다."

"아, 그럼 두 가정이 잘 알겠군? 특히 아버님하고."

"네, 아버지는 10년쯤 전에 돌아가셨지요. 어머니는 살아계시고."

"그럼 형제는?"

"저 혼자입니다---."

"한국에 와서 식당까지 했다니까 박 교수님하고는 연락이 잘 되었겠네."

"네, 많이 도와주셨지요."

"그럼 왜 우리한테 PR도 하고 그러시지 아무런 말씀이 없었을까. 손님이

없어서 망할 형편이었다면서---."

"폭삭 망했지요. 그런데 아버님, 아니 박교수님은 돈은 좀 보태주셨어도 일절

모른체 하셨어요."

"아버님이라고?"

"아, 아뇨. 돌아가신 아버지 친구 되시는 분이라서 그렇게 부른답니다.

인도의 어머니께서도 그렇게 부르라고 하셨고."

"그럼 박교수님 부인에게는 어머님이라고 하는가?"

"그 분은 만나뵙지 못했지요. 워낙 몸이 안좋으셔서 누워계신다고 하고 또 신경이

예민한 분이라서 복잡한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뇌졸중, 그러니까 중풍으로 오래 누워계시지. 퍼랠러시스 말이야. 하트 어택도

왔고.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한번 물어보세. 박교수님이 경제적 손실이 컸겠네---?

인도에 인연을 잘 못 맺은 덕분에---."

"죄송하지요. 폐를 많이 끼쳤어요."

'자네 몇살이라고 했나?"

"스물 아홉입니다."

"박 교수님이 인도에 오래 계실 때 태어났구만---. 그분 별명이 방문식이야.

앉아있지를 못하셔. 반드시 방문하여 현장 답사, 필드 워크를 해야한다는 그분 주장

때문에 나온 말이지만 그분 성함이 또 방문식으로 발음 되잖아. 내 말 뜻을 알겠는가?"

"네, 저도 그 말 들었습니다."

'보통 가까운 사이가 아니구만---."

"지금은 가깝지 않습니다. 멉니다. 제가 손해를 많이 끼쳤습니다. 안만나실려고

합니다."

"정말 큰 손해를 끼쳤나 보네---."

"가시면 저를 만났다는 말을 꼭 전해주십시오. 가서 찾아뵙겠다는 제 뜻도---.

박 교수님은 아들이 없습니다. 딸만 한분인데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나도 알고있네."

 

"아니 두사람이 뭘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해요?"

내 친구 회장이 임원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내려오다가 우리 쪽으로 닥아왔다.

"아, 아니올시다. 이 사람이 한국을 좋아해서---."

"참 신기한 녀석이지요? 한국 말도 기가 막히고, 우리 본사로 발령을 낼까?"

회장의 말이었다.

"네, 그러고 싶습니다."

인도 청년의 눈이 등잔만해져서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었다.

 

"회장님, 우리말 잘하는 이런 일꾼은 인도에 있어야 빛이 더 납니다.

본사에서도 할 일이 있겠지만 이 곳에서 더 값어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씀이오. 정 교수께서는 항상 날카로운 판단을 하신단

말씀이야, 하하하. 자네는 여기 인도에서 나를 도와 일하게."

회장은 다시 느린걸음으로 뒤쳐졌다.

"교수님, 너무 하십니다."

씽이 울먹이며 나에게 말했다.

'아니야, 난 이번에 돌아가서도 박 교수님께 자네 만났다는 말 하지 않겠네.

나를 끼워 넣을 생각은 말게.

최근에 박문식 선생님이 왜 그렇게 피폐해지셨나 그 이유를 알것 같애.

모든 것은 박 교수님의 판단에 따르게.

그리고 내가 이 회사의 사외 이사로 있는 한, 자네는 본사로 들어올 생각을 말게."

그가 눈에 눈물을 비쳤으나 박 교수를 생각하는 내 마음에도 이 곳 사람들이

오매불망하는 비가 내렸다.

갑자기 폐허의 수풀 속에서 힌두 소년 하나가 내 눈에 신기루 처럼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사라진 소년의 잔영이 마치 30년 전, 씽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