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포토 팩션> 나무들의 상형 문자

원평재 2008. 1. 23. 01:14

 

 

 

    

"사장님, 부엌에 수도가 터졌어요, 그리고 또---."

신정휴 사장은 조금 일찍 자리에 누웠다가 로밍 전화가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하는 바람에 초저녁 잠이 깼다.

얼떨결에 켠 휴대 전화로는 조선족 가정부의 놀란 목소리가 다급하게 터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또---라는건 뭐요?"

신사장은 부엌일 까지 국제 전화로 보고하는 그녀를 힐난하듯 다그쳤다.

 

"말씀 드리기 곤란하지만 도, 도둑도 든것 같아요."

"도둑이요? 그게 뭐 말씀드리기 곤란한거요. 얼른 말했어야지."

"네, 도둑이 창문을 부시고 들어와서 물건을 훔쳐간것 같고 그래서 수도가 동파된 것 같아요.

지금 한국은 무지무지 추워요. 어제는 눈도 많이 왔어요."

"내가 인터넷으로 다 알고 있어요. 여기 한국 TV도 다 나오고---. 카드는 내가 다 갖고 왔고,

패물도 삼성동 사모님이 다 갖고 가버렸으니 별게 없을 거요.

아주머니 물건이나 잃어버린게 없는지 잘 챙겨보시오."

"저야 뭐---."

"그럼 되었소. 전에 대문이 고장났을 때 처럼 아래쪽 평창 만물상에 말해서 일단 수도와

창문이나 고쳐놓으시오. 내 곧 귀국 할 것이오."

 

미국 동부에 사는 가까운 선배이자 한때는 건설 업계에서 경쟁자이기도 했던 박일두 회장의

집에서 벌써 두달 이상 칩거하던 신정휴 사장에게 정초부터 골치 아픈 전화가 온 셈이었다.

물론 마지막 사업으로 생각하고 빌라 촌을 신도시 인근에 지었던 것이 분양이 되지 않고 목을

죄어서 미국으로 잠시 도피한 이래, 지금 보다 더 골치 아픈 전화들이 왔으나 그는 모두

무시하고 지냈었다.

그런데 집안 부엌의 수도가 터지고 좀도둑이 들었다는 소식은 사업상의 공갈 협박 전화 보다도

어쩌면 더 골치 아픈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하여간 이래저래 귀국할 때가 닥아 왔구나 하는 느낌이 금년의 운세처럼 막연하나마 강렬하게

그의 속마음을 뒤흔들었다.

하긴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부동산 경기도 조금 기지개를 켠다던가---,

희망은 절망한 자의 선행 지표가 되어 항상 앞서 나가고 있었다.

 

박 회장의 호의로 두달간 아무 하는 일 없이 필라델피아의 전원에서 생활을 하며 신 사장은

새로운 취미를 하나 계발하고, 개발해 나아갔다.

바로 디지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필라델피아의 한인 사회에 얼굴을 내밀 이유나 필요는 없었고 박회장과 바둑을 두는 일도

조금 지루해질 즈음, 그는 맨해튼으로 나가서 아마추어 용으로는 꽤 괜찮은 렌즈 착탈식

디지틀 카메라, 그러니까 DSLR을 하나 구입하였다.

니콘인지 나이콘인지 하여튼 그런 두가지 발음이 다 용서가 되는, 나온지 조금 지나서

값이 싸진 카메라에 원근 거리 조절이 자동으로 되는 시그마 렌즈통을 끼워서 백만원이

조금 넘는 비용을 지출하여 일단 취미 생활 무장을 한 것이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허드슨 강변 쪽으로 조금 내려가서 "B & H"라는 카메라 대형 몰의

할인 가격으로 부담없는 출발을 한 셈이었다.

 

모처럼 나간 맨해튼의 거리 사진이나, 유서깊은 도시 필라델피아의 도심과 주변을 찍으며

소일의 첫 발을 디딜 즈음만 해도 렌즈 앞에 나타난 사람들이나 건물같은 피사체는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한달 쯤 그런 식의 사진 찍기가 계속되자 이어서 박 사장 특유의 시름이 닦아왔다.

어쩌면 이런 사진들이 모두 형체만 그럴듯 할 뿐, 사진사의 혼이 들어있지 않다는 느낌 때문

이었다.

또 이런 식의 경치랄까, 대상물들은 수많은 포스트 카드, 사진 첩, 그리고 인터넷 포토 사이트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

내 영혼, 아니 너무 거창하게 표현이 내질러졌지만, 하여간 내 느낌, 내 정신, 그래 내 혼이

들어간 대상물은 그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그의 취미 생활에 첫번째 발목 잡이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의 인생 살이에도 이런 계제가 많았다.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한국 건축업계에 불세출의 영웅이 나타났다는 칭송을 받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3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잘 나가던 영웅은 한동안 이상한 미망에 사로잡혀서 도무지 제대로 된 건축물을

지어내지 못했고, 오랜 공백 끝에 내 놓은 빌라 작품들은 너무나 기이한 형태와 구조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거기에 빌라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환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냉담해졌다.

이어서 오피스 텔의 반짝 경기, 주상 복합 아파트라는 새로운 아파트 개념의 도입 등으로 그는

다시 건설 업계의 선두에도 섰으나 공연히 "예술가의 혼이 담긴 빌라"를 최근에 다시 짓느라고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윽고 건설 업계에 불황이 오고 그는 잠시 몸을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일찌기 업계에서는 선의의 경쟁자였던 박일두 회장과 선후배간 우정을 여태껏 지속해 온 것은

자기 인생에서 몇 안되는 성공 사례라고 그는 생각하였는데, 이번에도 그의 믿음에는 틀림이

없어서 당분간의 피신 겸 휴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박 회장은 한국 주둔의 미공병단, 그러니까 Corps of Engieneering, COE와의 합작 사업에

눈을 떠서 그 어려운 미군부대 공사를 해내다가 마침내 거대한 원청업자인 벡텔 회사와도 인연을

맺고 협력 하청 업체를 유지하다가 미국에 정착을 한 입지전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타이틀은 항상 회장님이었다.

 

50대 후반에 이미 은퇴를 하고 필라델피아의 전원 마을에 정착을 한 그는 아직도 숨이 턱에

닿아서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도피하고 목소리를 죽이고 그러다가 또 가끔 대박을 터뜨리곤 하는

신 사장에게 한심하다는 충고를 많이 하였다.

"여보시게, 신 사장. last address라는 말을 아시는가?"

이번에도 그가 물었다.

"그게 뭡니까? 형님."

"생애의 마지막 주소지 말이지. 나는 여기 이 마을이 벌써 그 주소지라오."

"형님은 너무 일찍 은퇴하셨다는게 평소 제 생각이었는데 last address로 이 정착지를 정하셨다니

그것도 좀 입바른 말씀 같아요. 더 노년이 되면 플로리다나 바하마 같은 곳도 있고 어쨌든 라스트니

마지막이니 하는 말은 좀 거부감이 옵니다요---."

"사람 사는데에는 사계절 정도의 자극은 있어야 한다는게 내 지론이지요. 그런 속에서 자연, 특히

숲 속의 나무와 접하는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생 설계를 정신이 온전할 때,

다시 말하자면 심신이 잘 나갈 때 해놓지 않으면 크게 후회할 것 같소.

내 자랑같지만 예전에 미공병단과 벡텔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연금 조금 받고 예금 조금 있고---,

아, 마지막 돌아갈 때의 의식 절차를 위하여서 매달 20불 정도를 그런 회사에 넣고 있고, 그래요."

"세상에! 미국에는 그런 회사도 다 있구려?"

"그렇지요. 매달 넣은 돈이 마침내 남으면 자식이나 구호 기관에 넘길 Will도 다 작성해 둔다오.

나는 키우는 고양이에게 주기로 했소."

"형수님은 한국에 계시는데---?"

"그래요. 여기 '너싱 홈' 같은 것을 봉사 활동 차원으로 한번 만들어 볼까하고 내 만류도 뿌리치고

들어가 봤는데 남은건 실망뿐이고, 이번 설 전에 돌아온답디다.

반년 동안 한국 들어가 있으면서 끝내는 돈 벌러 남편 대신 들어왔다는 주위의 비아냥만 들었으니

등록금 잘 내고 많이 배웠답니다. 그래 사진은 잘 됩니까?"

"잘 되고 못 될게 뭐 있겠습니까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뜨는 광경을 보며 희망을 잃지않고,

또 저녁에는 술 한잔 생각 대신에 해지는 시간과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인생의 황혼을 사유하고,

하하하, 문자를 써서 죄송합니다.

장똘뱅이에다가 나이도 아직 아래인 사람이 갑자기 인생의 황혼을 생각하느니 어쩌느니 해서요.

하여간 저도 형님 은혜로 공부 많이 합니다."

"오늘 저녁에는 나가서 여기 한인회 분들과 인사나 할까요? 사실은 나도 여기 한인들과의 교류가

극히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피는 물 보다 진하달까요. 요즈음 한인회 내부 분위기가 조금 델리키트한

측면도 있고 하니 너무 무심하기도 그렇고, 그냥 인사나 하시지요.

이제 귀국하신다니 여기 사는 분들과 얼굴이나 한번 익혀 두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듯 합니다."

 

두사람은 필라델피아 시내에 있는 한인 회관으로 별다른 계획없이 달려갔다.

"그저 한번 인사나 하고 떠나는 기분으로 들어갑시다."

박 회장이 회관의 문을 열며 다시한번 다짐하듯 말하였다.

저녁 시간은 되었으나 젊은이들은 없었고 이층에서 백발의 노인들 몇분이 내려오다가 두사람과

마주쳤다.

"박 회장이 왠일이시오?"

노인 한 분이 카랑카랑하게 말을 걸었다.

"너무 적조해서 죄송합니다."

"그래요. 사람의 취향도 구구 각각인데 억지로 나와라 말라 할게 아니지요."

다른 노인이 응대하였다.

"차나 한잔 합시다."

카랑카랑한 노인이 일층 응접실로 그들을 이끌었다.

"이 분은? 또 은퇴 이민이신가?"

그가 또 말을 이끌었다.

"아닙니다. 잠시 다니러 온 제 친구입니다. 내일이면 귀국할 분이라서 여기 어른들 좀 만나

뵙고 인사나 올리라고---."

 

수인사가 오고갔다.

"박 회장 부인께서는 고국 사업이 잘 되시나요?"

역시 카랑카랑한 음성의 질문이 나왔다.

"말씀 마십시오. 곧 돌어옵니다." 

"아드님이 맨해튼의 골드만 삭스에서 잘나가시니까---."

다른 노인이 덕담삼아 거들었다.

 

"그래 잘 생각하셨소. 봉사라는 것도 다 부질없고 오해만 사고 그래요. 이제 우리가

라스트 어드레스에서 살고 있는데 멀리 가시면 어떡허실려고. 박 회장 사시는 그 좋은 동네,

그 좋은 집, 그 숲---, 다 부러워요.

내 마지막 주소지는 너싱 홈이고 옆의 이 노인은 무시하는게 아니라 양로원이라오.

다행히 운이 좋으셔서 아주 좋은 조건의 양로원이지만---."

 

"아이구, 정정하신 분들이 진도가 너무 나가시는 말씀들이군요. 그런 말씀들으러 온건

아니고 한국에서 오신 제 친구가 인사나 하자고 해서 안내한 것입니다. 저녁이나 하실까요?"

"말씀은 고맙지만 노인들이 저녁에 한국처럼 마실 다닐 형편이 아니잖아요---.

일찍 들어가야지요. 하긴 가봤자이지만 저녁 길이 힘들어서요.

나는 혼자 사는데 이 잘난 노인들의 라스트 어드레스 같은 말씀을 들으면 너무 호사스럽고

사치스럽게 들려요.

마지막 주소가 좋으면 뭘합니까. 혼자인데---.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품속이 내 마지막 주소지가 되었으면 한이 없겠소."

그때까지 아무 말이 없던 얌전하게 생긴 노인이 한숨을 쉬며 낮게 말하였다.

"하하하, 돌아가신 분께는 죄송스럽지만 그 호랑이 같던 마나님 생각이 나슈?"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아니오, 아니오. 내가 진실로 사랑했고 또 나를 사랑한 여인의 품 속 말이오. 지금은 멀리

솔트 레이크 시티에서 다른 늙은이 병 수발을 한다고 들었지, 아마. 

운명이란 참 묘해서---, 아니 내 팔자가 그 수준인가 봐---."

"아이구, 또 그 타령. 이제 그만 갑시다. 어쨌든 고맙고 또 편안히 귀국하시오.

아까 주신 명함은 여기 방문자 게시판에 붙여두겠소."

 

어느새 밖은 황혼녘이었다.

그들은 인사를하고 헤어졌다.

"에이, 오늘은 너무 심각한 일진인가 보네. 우리 중국집에서 테이크 아웃 음식이나 좀 사서

집에 가서 먹읍시다. 리커 하우스에서 와인도 한두병 사고---."

그들은 와인 한잔을 겻들여 집에서 저녁을 먹기로하고 부지런히 귀가 길에 올랐다.

 

"부인께서는 그래 다시 합칠 생각이 없으신가요? 사생활을 물어서 미안하지만."

박일두 회장이 신 사장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하다니요. 제 사정은 선배님이 다 아시면서요. 하여간 이제는 서로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요.

그때 아무리 부도 위기에 몰렸어도 그까짓 재산을 보존한다고 합의 이혼 같은건 말았어야

하는데---. 서류상의 이혼이니 안심하라고 설득한건 나였는데 지금은 마누라가 꿈쩍도

않네요. 돌아올 생각이 없나봐요. 아이러니입니다."

"그래도 재산은 지킨 셈이라고 자위하십시오. 그땐 워낙 사정이 다급했잖소---."

"사주팔자가 그런건지 헤어져 살다보니 재산은 많이 보존되네요. 오늘 아침에도 평창동 집에

도둑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패물 같은건 마누라가 다 갖고 가버려서 집안에는 쓰레기 밖에 없지요---, 하하하."

"아니?! 조선족 가정부가 훔쳐서 달아났나요?"

"아뇨, 그 사람들이 보통 주말이면 일박이일로 나가서 사적인 일을 보고 들어오는 조건인데

그 사이에 도둑이 들었다나 봅니다. 좀도둑이니 걱정 마십시오. 걱정을 끼칠까봐 말을 않고

귀국하려고 했는데---."

"에이참, 와인을 잘 샀나 보네. 들어가서 한잔 합시다."

 

차가 박일두 회장의 집이 있는 동네의 언덕을 막 들어서는데 입구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

한 분이 자기집 우편함을 열고 있었다.

박 회장이 차를 멈추고 인사를 나눈 다음, 할머니에게 신 사장을 한국에서 온 친구라고

소개하였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미세스 박은 코리아에서 언제 돌아오세요?"

그녀가 박 회장에게 물었다.

"네, 곧 돌아옵니다."

"오, 빨리 오셔서 두분이 열심히 정원 가꾸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너무 다정하고 부지런해서

내가 두분에게 깊이 빠졌어요. 이 친구 되시는 신사 분도 이 숲속으로 라스트 어드레스 준비하러

오셨습니까? 이 동네 살기 좋으니 어서 오십시오."

"아니오, 이 분은 코리아가 더 좋답니다."

"아, 그래요. 그곳에서도 나무가 많은 곳에 자리 잡으세요. 호호호. 그럼 안녕히~~~."

 

 

  

"박 회장님, 오늘은 어째 하루 종일 라스트 어드레스입니다. 처음에는 그 어휘가 떨떠름 하더니 자꾸 듣고

쓰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집니다. 하하하."

"신형, 오늘 일진이 그런가 보네요. 저분이 내 서제에 걸린 판화를 선사한 분이지요."

"아, 오세영 화백의---?"

"그래요. 전에도 잠깐 말했지만 저 할머니가 이 근처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했는데 그때 한국에서

교환 교수로 온 화가의 아들을 정성껏 가르쳤답니다.

그 때 판화 두점을 감사의 선물로 받았다는 것이지요.

할머니가 그동안 오래 보관해 오다가 새로 이사 온 내가 하도 열심히 정원 가꾸는걸 보고는 이제 이 화가의

고향 사람인 코리언에게 그림을 돌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나무와 노인들의 모습을 담은 판화가 너무 좋아요---.

마누라가 한국에 '너싱 홈' 만들겠다고 훌쩍 떠난 다음에는 그 빈 자리가 아주 컸는데, 그 그림이 왠지 아주

큰 위안이 되었어요.

저 올곧게 선 나무와 또 보셨듯이 그렇게 누워 와룡선생 같은 모습을 한 노인네들을 오버랩해보며

나는 결국 나무로, 숲으로 돌아가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저도 그동안 회장님의 호의로 편히 지내면서 여기 펜실바니아의 겨울 나무를 많이

메모리 칩에 간직하였습니다.

지금은 칩에 담은 그 나무들을 찍은 지역별로 범주화하여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품속이 종내 없으면 저도 그렇게 모은 사이버 숲 속에서나마 만년의 위안을

삼을까 합니다, 하하하."

"그래요, 정말 나무와 숲은 몸짓으로 말없이 말을 합디다. 오늘 저녁에는 신 형이 찍은 

나무들을 감상하며 건배합시다."

황혼의 숲 속에 서서 초로의 두 신사는 의기투합하였으나 뒤로 끌리는 석양 그림자는 아직

고독의 상형문자였다.

 

(끝)

 

 

 리들리 크리크 공원의 수목 ;

 

 

 

 

  

  

 

  

  

  

 

 

 

  

  

  

  

 

 

  

 

 

 

  

 

 

 

 

 

 

 

 

 

 

 

 

 롱우드 식물원에서:

 

 

 

 

  

 

  

 

 

 

 

 

 

 

 

 

 

 

 

 

 

 

 

 

 

 

 

 

 

 

 

 

 

 

 

 

 

 

 

  

  

 

 

  

 

 

 

 

 

 

 

   

* 또다른 범주의 "나무와 숲"은 다음에 소개의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