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의 파편들

열와당 견문록

원평재 2004. 12. 18. 05:23
한학을 하는 분이 공학을 하는 분에게 아호를 헌사하는 자리에 우연히 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여와(與蛙)”와 “열와당(悅蛙堂)”이라는 아호였는데 한학자가 내게 어느 쪽이 좋은가라고 의견을 물었지만, 사실은 이미 둘 다 함께 헌사하기로 마음을 정한 듯하였다. 나도 둘 다 읽기가 좋다고 맞장구를 쳤다. 처음 의문을 가졌던 개구리 와(蛙)자의 유래가 납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아호를 받는 사람이 굉장한 개구리 수집가라는 것이다.한 500마리---. 맙소사, 이걸 내가 여태 몰랐네! 물론 개구리 모조품이었다.우리는 말이 난 김에 점심을 먹고 서둘러 그 분의 오피스로 가봤다. 유리문이 달린 서가가 한 쪽 벽면을 다 차지하였는데 그 속에는 과연 개구리 500마리가 또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아, 나도 스푼이니 찻잔이니 딸랑딸랑 종에다 바이올린과 첼로 미니어처 등의 수집에 열을 올리다가 이제는 모두 시들하던 참인데 개구리라니---.하긴 생각해 보니 어느 관광지나 쇼핑 숍이나 장난감 가게엘 가 봐도 개구리가 없는 곳이 없었지, 그런데도 조직적으로 수집을 할 생각은 전혀 못했네---.왜 장난감 개구리는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개골개골 대는가?수집가 당사자에게 물어보니 어릴 적에 많이 보았던 개구리가 이제는 모형이지만 자신의 주변에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우선 마음을 편하게 하였고, 또 하나의 직접적 동기로는 종로에 있는 어떤 음식점의 벽면이 개구리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안주인의 말, “개구리에는 표정이 있잖아요”라는 설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동화에 나오는 왕자님의 변신은 물론 개구리보다 두꺼비 쪽이 압도적이지만 그런 설화도 간접 영향은 주었다고 한다.볼펜 위에서 몸에 불을 켜는 개구리, 소가죽으로 만들었으나  개구리 보다 더 개구리 같은 개구리, 상아로 만든 개구리 삼 형제, 전화를 걸어주면 개골개골하는 개구리, 근시인 사람은 안경을 벗고 보아야 겨우 보이는 작은 놈, 청개구리는 기본이었고---. 금으로 만든  개구리, 봉제 인형 개구리, 나무를 깎아서 만든 놈, 수많은 도자기 개구리, 큰 항아리 위에 올라앉은 작은 개구리, 연꽃이나 나뭇잎 새에 앉은  수많은 개구리, 연적 위에 있는 놈, 아예 연적 그 자체인 놈, 해와 달 전설의 주인공인 개구리 남매---. 수집된 개구리의 원산지는 세계화되어서 5대주 6대양을 누비고 있었다.아호인 “여와(與蛙)”는 “개구리와 더불어”란 뜻이자 수집가의 종교가 천주교인 점에 맞추어 “여호와”와 훈독이 비슷하게 하였고 “열와당(悅蛙堂)은 ”기쁜 개구리들이 있는 집“, 혹은 그 수집가의 집이라는 뜻이렷다.구경의 말미에 문득 십여 년 전에 실종되었다가 얼마 전에 유골이 발견된  “개구리 소년들”의 슬픈 전설이 생각났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개구리에게도 기쁘고 슬픈 순간이 있겠지만,즐거운 개구리의 집이라는 뜻의 “열와당”에서 굳이 그런 화두를 꺼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쇼팽/마주르카와 전주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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