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는 손목시계가 고장났는데도 멎은줄 모르고 큰 실수를 할뻔하였다.다행히 사태를 파악하여서 별일은 없었지만 새로 시계를 장만하려니 사정은 의외로 간단치가 않았다.우선 첫째로는 집안에 굴러다니는 고물 시계들이 문제였다.이래저래 새로 생긴 시계들에 밀려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옛 손목시계들,이젠 밧데리도 수명을 다하여 꼼짝도 않고 누워있는 형해들---. 주인인 내가 버리기에는 아까워 오래된 문갑 위에 주섬주섬 이리저리 늘어놓은 옛 시간의 표피이자 증인들은 이제 짐짓 널부러져서 박제된 몸짓으로 주인의 지난날 허탄했던 시간들을 비웃고 있었는데,주인은 그것도 모르고 아쉬운 김에 하나를 골라 집어서 시계포로 갖고 갔다."밧데리 하나 넣어주시오."나는 잘난체 돈을 꺼내며 헌 시계에 새 생명을 불어넣으라고 주문했다.그러나 시계포의 알바 여점원은 냉소하였다.이런 철지난 시계들은 밧데리 바꿀 줄도 모르겠고 멋대로 가다가 멈춘 시간도 맞출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돈주고 새 밧데리를 넣어서 지나간 시절과의 간단한 재회와 재결합을 꿈꾼 주인의 의도는 한심하게 빗나갔고,한때 나의 손때가 묻었던 고풍스런 시계는 이런 사태 속에서시류에 맞추어 앵돌아지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내 손목에서 놀아났던 흘러간 이 아낙들의 고장난 마음 달래는 비용을 물어보니 새각시 아니 새물건 하나 작만하는 값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하지만 새 시계 사는 일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은 사정이 또하나 있다.집사람이 지금 외국에 나갔다. 시계가 먹통이 되었다는 소릴 듣고"잘되었네요. 무슨 선물 사가나 고민했는데 시계네!"그러니 나는 이제 며칠 동안을 새 시계도 장만치 못하고시간의 변방에서 눈치밥이나 얻어먹게 생겼구나---.휴대폰에 나오는 숫자로 내 일상의 틀을 근근히 이어갈 수밖에 없겠구나.그런데 어제 무슨 행사의 뒷풀이로 기능성 손목시계가 하나 상품으로 내 손에 들어왔다.전혀 생각지도 않앗던 전리품 같은 것으로,이전 같았으면 이 기능성 물건의 용처를 두고 좀 난감해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는데,나는 내심 뛸듯이 기뻤다."이 난국에 시계 하나 새로 생기고 마침내 나도 남들처럼 시간의 조종간을 잡게 되었네!" 그때 마침 국제전화가 걸려와서 나는 회복된 시간의 질서를 자랑하였다."잘 되었어요. 마땅한 시계 고르기도 힘들어요."뉴욕 북쪽 "우드베리"에서 며느리 데리고 옷을 고르면서 집사람이 보내는 음성이었다.우드베리라면 한국 사람 우굴거리겠네---.여러해 전, 골빈 동양인 쇼핑 메니아들을 겨냥해서 그곳이 생긴지 얼마 안되었을 때에 가서는, 우리나라 말도 그곳 공용어 중의 하나임에 놀랐었지---.이제 마지막 에피소드를 올릴 순서가 되었다.한 이틀간 시간이 정지된 이후에,다시 어쩌다가 새 시계가 생긴지 하룻만인 어제 신새벽에 나는 난리를 피웠다.이상한 충동에 잠이 깨어서 탁상 시계를 보니 새벽 7시 15분이 아닌가.맙소사, 샤워하고 밥 먹고 넥타이 매고 이걸 어쩌나---, 늦었네.오랫만에 아침 샤워를 과감하게 걸르고 나는 머리만 감기로 하였다.그래도 조간 신문 헤드라인은 훑어봐야지.문을 열어보니 신문은 누가 집어갔는지 배달 사고가 났는지 종적이 감감하였다.그래 바쁜 시간에 조간신문이라니---.문닫고 얼른 뛰어들어와서 "옛날 식"으로 머리부터 먼저 꾸부리고 감았다.서둘러 헤어 드라이어로 머리까지 말린다음 언더웨어를 입고 새로 생긴 새 시계를 팔목에 차면서 햇반을 마이크로 오븐에 넣고 시간 탐색을 하려고 손목시계를 다시살피니 시계바늘은 이제 겨우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지않은가---.시간과 시계가 함께 모반을 하였나,전날 오후에 슬그머니 멈춘 것이 분명한 탁상 시계는 7시 15분 위치에서 양팔을 피곤하게 내던지고 꼼작도 하지않으면서 주인을 배신하고도 자기 소임을 다 마친양 널부러져있었다.어제 이른 저녁에 그 놈은 시간 속의 항해를 마치고 윌리엄 포크너의 "소음과 분노" 속에 나오는 표현처럼"저 시간의 대영묘(큰 무덤) 속에" 자신을 내 던져버린 모양이었다.이제 내 앞에는 두시간이 넘는 여분의 시간이 처분만 바라고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다시 누워 잠을 청하긴 글렀다.아무 때에나 눕지 못하는 나의 잠버릇 탓도 있었지만 옛날 식으로 힘들여 머리 다듬은 일이 억울해서도 못 눕겠다.내 젊은 시절, 건강한 잠이 펑평 쏟아지던 때에도 때로 새벽잠이 깨었을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시집(詩集)도 뒤적여 보고,아차, 얄미운 내 앞자리 녀석을 생각하곤 영어 단어장도 뒤적이다가 시퍼런 마음의 연애편지도 끄적였던가.새벽에 화들짝 홀로 깨어나서 서리서리 꿈틀대는 두어시간을 내 품에 안고서 나는 이 생경한 두어시간이 참으로 내 인생에서 새로 덤으로 얻은 시간인가 아닌가---, 그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까 엉거주춤 반추하며 서성이다가 벌써 그 절반을 놓치고 있었다.그리하여 이내 마이크로 오븐에 "햇반"을 넣어야할 시간이 일출 때의 불덩어리처럼 빠르게 달려들고 있었다---. 휘파람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