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문화의 파편들

재혼 주례기

원평재 2005. 1. 6. 14:11

 

"선배님, 저 재혼하는데, 주례 좀 서주세요."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약국을 하는 여자 후배가 전화를 했다.
"상대는 어떤 놈인데?"라고 내가 감정을 묻혀서 묻지는 못하었다.

"무얼하는 사람이 미즈 최를 꼬셨나?"
아마도 이런 정도였었나 보다.
"그냥 평범한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회사원이에요."
 
평소 여장부로 여긴 미즈 최는 혼자 사는 여자였다.
아니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는 후배였다.
내막은 잘 몰랐다.
그렇다고 그녀와 고등학교 동기인 남자 후배들에게
사연을 물어볼 입장은 아니었다.


내 모교는 어느새 남녀 공학이 되어있었다. 하나의 추세였다.

높은 지위를 갖였던 동문회의 회장님이자 대선배가
여러해 전에 나에게 동문회 집행부에 참여하여 함께 일하자고
권유했을 때 거절치 못하고 찾아간 회의장의 내 옆자락에
당찬 여성이 하나 앉아 있어서 인사를 나누었고
그러다가 차츰 구면의 처지가 되면서
그녀가 "이 메일 주소"로 "바자 회"나 "일일 찻집"의 공적인 연락을
해오더니 차츰 음악이 담긴 안부 메일도 보내왔다.

 

"이런 메일은 이 세상에서 선배님을 포함하여 단 두 사람에게만
보내드린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자주 전제를 하면서
내가 답도 제대로 못하는 메일은 쌓여만 갔는데,

그 내용으로는 건강을 제일의 화두로 항상 챙겨서
어렴풋이 이 후배가 혼자된 사연에는
배우자의 건강이 유고의 사유가 된건 아닌가---


짐작은 자유롭게 하면서도 더 이상을 관리하지 못한 것은
나의 나태한 습성 탓이었지---.
아니 관리라니까 어감이 좀 이상하다.
오직 사회생활에서의 인간 관리의 측면을 말할 따름이다.
오해가 두렵다.

 

동문회 주소록에서 그녀가 약사인줄을 알았지만
정말 알고보니 그녀는 거대 규모의 의약품 도소매업을 운영하였는데
더 알고보니 고용한 약사가 다섯이나 되었다.
 
하지만 의약 분업 사태 때에는 이 기업도
크게 경영이 기울 수 밖에 없었는데
그후 다시 수도권의 어떤 종합병원 앞에서 재기하였다던가---.

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재혼 주례를 부탁한 것이었다.


"에드가 드가"가 그린 "여인의 초상"처럼
코가 좀 너무 크게 얹힌 그러나 참 예쁜 인상이었지.

전화로 주례 승락을 덜컥해버렸더니 내 마음이 변할까봐
걱정스러웠나, 아니 예의를 깍듯이 차리고자 했겠지,
당장 이튿날 예비 신랑과 함께 찾아온 그녀와 다시 직
접 대면한 것은 꽤 여러해 만이었는데
그 사이 짐작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상한 모습이었다.

 

그래 그녀 또래 나이의 얼굴이
잠깐 세월에도 얼마나 취약하던가

"신랑이 훨씬 젊어 보이네?"
어깨를 꾸부린 자세로 대범하게 묻는 내 태도에는
불필요한 의심이나 경계심을 미리 예방코자하는 면밀함이 있었다.

 

"아이구, 선배님, 5년 년하의 남성이예요."
내 팔을 툭치며 미즈 최는 깔깔 웃었다.

두 사람은 재혼을 주선하는 어떤 결혼 정보회사에서 만났단다.
주로 등산을 하며 상대를 탐색하였고 확신을 얻었다고 하였다.

"미즈 최는 술을 못하는 줄 내가 익히 알지만 신랑은?"
"죄송합니다, 저도."
다행히 그도 술은 체질적으로 받지않았다.
"참으로 다행이오."
나 혼자 맥주를 몇잔 하며 나는 진심으로 치하하였다.

 

"오늘 하루 저녁만 자유롭게 물어보겠소. 미즈 최는 사별인가?"
"네, 11년 되었지요. 오늘 선배님 뵈러 오기전에 이 사람과
신태인에 있는 선산으로 가서 망부에게 고하고 왔어요."
"그럼 신랑은?"
"전 이혼입니다. 3년 되었지요."
좋은 답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쩌랴---.

 

신랑은 대학 다니는 아들이 둘이었고 신부는 빼어난 미모의 딸이
연극영화과를 나와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따로 나가 살 궁리들을 모두 해 두었고
두사람의 재혼에 적극적으로 동의를 했단다.

두집의 아이들은 결혼식장에서 축하 점촉도 웃으며 함께 해주었다.
보기가 참 아름다웠다.

 

결혼식장은 압구정동에 있는 어느 깔끔한 호텔 6층이었는데,
위에서 언급한 장관을 지냈던 선배 회장님은 물론이고
쟁쟁한 선후배들이 만당하여서 미즈 최의 활동 범위가 돋보였다.

 

처음 얼떨떨했던 내 주례사는 말문이 터지면서
자칭 빛과 윤기가 더하여지는 느낌이었다.

주례사를 여기 밑에 띄웠으나
읽기가 급한 분은 이 부분(푸른색 글)일랑 뛰어넘고
다시 끝부분만 읽어주시기를---.

 

(재혼)주례사;

주말과 연휴가 함께 한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어서 여기 서있는
이 * *, 최 * * 커플의 새 출발을 축하해 주시기 위하여
경향 각지에서 오신 하객들에게 주례자로서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이 두 사람은 조금전 성혼 서약 및 성혼 선언문 낭독과 함께
이제 백년의 가약을 맺었고 한 가정을 이루어서 함께 일생을 같이할
축복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전통가례에서는 성혼 선언문을 "고천문"이라고 하여서 인간의
맺음을 하늘에다가 엄숙하게 고하는 글을 지어서 여쭈어 올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서있는 두사람에 대해서 저는 학교의 선후배로서,
또한 사회적인 인연으로서 간혹 지켜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동안 두 사람이 적절한 탐색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혼약의 예를
갖추겠다고 하면서 주례를 부탁하자 흔쾌히 승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례를 약속하고 나니 약간의 고민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 구조가 급격히 변하면서, 또한 건강 장수에 관한 개인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재혼이라고 하는 사회 현상은 오늘날 거의
보편화의 수준에 들어서고 있는데 이에 관한 의전 절차나 수용의
문제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미결이라는  현 주소를 주례자도 이번에
처음으로 체험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이 두사람의 청첩장을 보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미 보셨겠지만 두 사람은 청첩장에서 아이들의
이름과 함께, 그들이 살아온 길과 또 앞으로 살아갈 길을 밝히면서
새 가정의 탄생에 축복 해 주시기를 간곡하게 청하였습니다.

 

이 아름답고 간곡한 청첩의 글을 읽으면서 주례는 이 두 사람에게
더도 덜도 말고 보통의  주례 때와 같은 당부의 말씀과 축하의
메시지를 한아름 안겨 드리면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는 보통 주례사에서 "가정의 화목"이라는 덕목 제일 먼저
내세웁니다.


물론 사랑이라는 화두를 내세우는 것이 주례사의 관례처럼 되어
있기도 합니다만 처음부터 무조건 사랑을 강조하면 당위성을 찾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란 그렇게 강요나 권면에 의해서 시작되고 지속되는 것도
아닙니다.


7년 열애를 한 커플이 결혼하고 나서 3년도 안되어 헤어지더라는
이야기도 주위에는 이제 흔합니다.
부모간의 사랑이나 종교적인 사랑도 영속하기에는 시련이 많은데
하물며 남남끼리 만난 남녀간의 사랑이 어찌 무조건 영속해야한다고
강권할 수가 있겠습니까.

 

인간은 때가 되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녀간에 결합을 해야
합니다.
사실 남녀가 한 지체에 양성을 모두 지녔다면 결합이라고 하는
번거로운 절차나 실패의 위기가 없어서 참 다행스러웠을는지도
모릅니다.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은 원래 인간은 양성이었다고 그가 쓴
심퍼지엄이라는 책,
우리말로는 향연으로 번역되는 책에서 갈파합니다.


그런데 양성을 지닌 인간은 너무나 완벽하여서 신의 세계를 넘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께서 인간을 반으로 쪼개어 놓았고
그 때부터 인간은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기 전까지는 온전한
지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자신의 반려자를 better half, 즉 자기보다 나은 반쪽이라고
하고 우리 동양에서도 반려자의 반자가 사람 인 변에 절반 반을
붙여서, 짝반(伴)으로 쓰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만난 반쪽짜리들은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화목을 덕목으로 삼고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목은 인륜의 근본이자 숙명이라는 조건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화목을 떠받치는 근본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 이 사랑이라는 관념적 실체는 무조건 그렇게
오래가는 속성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최근에 발달한 "생물 사회학"적인 관점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자신의 자식을 대체로 3년간 수유, 양육하면 한 개체로
독립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 기간이 지나면 이제 구성원들은 각각의 개체로 분리
독립하게 되는데 인간에게도 이런 원시 본능이 내재해 있어서 대체로
3년이라는 기간이 그 고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학설의 진위 여부는 둘째로 치더라도, 현상에 대한 예리한 분석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또한 현실이 그렇다면 반쪽의 개체 를 하나로 결합하게 해주는,
이 인륜의 바탕이 되는 사랑이라고 하는 절대 명제는 어떻게 유지
발전되어 나아가야겠는가를 한번 상고해 봅니다.

 

(후략)

 

주례사가 끝나자 사회자가 조금 느닷없이 "커플 링"을 교환하는
차례가 왔다고 선포하였다.
미리 부탁받았으면 주례가 보관하고 있었을텐데 나는 내심 조금
당황하였다.

 

그러나 역시 미즈 최였다.
얼른 도우미를 부르더니 나직히 링이 들어있는 곳을 알려주어서
얼른 링 케이스가 주례인 나의 손으로 전달되게 하였다.

이제 정작 힘들어한건 나였다.
의식용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링 케이스를 열다보니 링 하나가
비스듬한 연단을 떼그르르 굴러서 밑으로 떨어졌다.


다행히 링은 주례의 발과 연단 사이에 떨어져서 멀리가지는 않았다.

왕년에 가슴이 큰 배우, 수잔 스트라스버그는 식장에서 링을
떨어뜨리자 "처음이라 그랬노라"고,
"다음에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했다던가---.

연단의 뒤쪽이라서 하객들은 별로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고
다만 면전의 신랑과 신부는 느낌이 어땠을까,
아니 이런 일이 어떤 전조는 아닐까?
위기를 예시하는건가,

 

아니, 아니야,
이건 아무런 전조도 아니고 혹시 어떤 상징성이 내재해 있다
할지라도 별 것이 아닐 것이다.
혹시 초혼이 아닌 재혼이니까 그렇게 한번 궁글러야 되는 것
아닌가하는 정도로---.
액막이로서, "양밥한다"는 말도 있지,
"고시네~~"하고 밥 한 숫갈 먼저 공양하는 의식 같은것---.

 

식이 끝난 다음 나는 헤드 테이블을 버리고 회장님과 선후배들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찾아갔다.

안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건가.
역할 때문에 다소 긴장했던 내 마음이 확풀렸다.

스테이크를 썰고 있는데 신부가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눈에
들어왔다.


재혼 식장에서 부케 받을 여자들이 있을까?

그러나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중년의 여성 여럿이 던지는 꽃다발을 받을 준비로 워밍업을 하고
있지않은가---!

하나, 둘, 셋,
마침내 부케는 날라갔고 잘차려입은 어떤 여성이 결사적으로
다이빙하듯 꽃송이를 움켜잡았다.

 

"재혼 할려나?"
선배 회장님이 말하고 나서 좀 어색하게 웃었다.

"아뇨, 가정이 있는데요."
어느 후배가 알은체를 하였다.

"그렇다면 계획이 있나? 황혼 계획같은거---"
내가 좀 좌중을 웃기려고 말을 꺼냈으나 아무도 웃지않았다.
생각보다 주제가 심각한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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