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11월 11일, "빼빼로 날"이라고도 불리는 날에는 주변에 여러 행사가 겹쳐서 원래
이날에 얽힌 개인적 감상을 다 말하지 못한 아쉬움이 좀 있었다.
글쎄, 절제해 두는 것도 미덕일 수 있겠지만 새로 올릴 남겨 둔 글도 빠듯하여서 남은 사진과 함께
<소나기 마을>을 여기 다시 소개해 올리고 싶다---.
"황순원 문학" 하면 "소나기"와 "개울물"이 연상되는지 이 개울이 좋은 곳에 <소나기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문학적 위업이 수집, 망라되고 집대성되는 모양이다.
소나기는 이제 교과서에도 실렸고, 내 개인적으로도 문학 청년 시절에 그와 비슷한 꽁트를
써서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었다.
표절은 물론 아니었지만 내 무의식 속에 그 이야기가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열흘 전 쯤, "빼빼로 날"에 올린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황순원 문학에 심취한 것은 사실
<소나기>가 아니고 장편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사상계>라는 잡지에 연재 되고 부터였다.
문학청년 시절 그 연재물은 종교의 경전에 다름아닐 정도로 나와 내 주위의 문청들에게
영향이 컸다.
6-25 동란이 배경이어서 민족사적인 큰 비극을 당시만 해도 작가들이 아직 다루지 못하던
시절에 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영향도 있었겠으나,
우리 젊은이들이 이 작품에 심취한 것은 자신들의 당면 문제가 바로 절박하게 중첩되어
인간 드라머를 연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장 절실한 문제, "군대 문제", "인생 문제", 그리고 살인과 자살이라는 명제---.
우리들 중의 하나, 앞에서 말한 그 젊은 화가는 정말 군복을 입은채로 빼빼로 날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가지 추측들이 많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대리 죽음을 택하지 않았겠나하는 짐작과 공감이 우리 사이를 배회하였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는 흔히 실존적 자아와 타자의 관계,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인간의 문제, 그런 문제들을 젊은 나무들이 위태하게 비탈에 서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하여 우리의 의식을 휘어잡았던 것이다.
이제 막상 <소나기 마을>이 만들어지고 있는 산골 마을로 들어가보니 나무들은 비탈에 서서
여름 소나기도 이럭저럭 다 지나놓았고, 지금은 가을 단풍으로 치장을 하고서 빼어난 용모를
자랑하기도 하고 닥아올 겨울을 인고할 의연한 자세를 보이고도 있었다.
황순원은 "비탈에 선 나무들"을 근심하였지만 어떻게 보면 나무들은 그렇게 산 비탈에
서 있어야만 제격이고 제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산세가 험하고 평야가 좁은 우리나라에서는---.
모처럼 여가를 내어서 다녀온 두물머리, 양평과 그 안쪽 계속의 비탈에 선 나무들은 찬란한
색갈로 다가오는 겨울을 의연하게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색즉시공(색卽是空)---.
공(空)은 없음이 아니고 채울 공간이라고 하였던가---.
소나기 마을 공사 현장---. 주변 땅값이 애드벌룬 만큼 올랐을 것이다.
지역 발전이라고 한다.
떴다방이라던가, 부동산 회사가 즐비하였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옹기 보다 장 맛이 궁금하였다---.
한음의 자손들이 그분을 기리는 긴 문장을 돌에 새겨놓았다. 한음의 묘역도 있고 정몽주 선생 산소도 있고,
대단한 명당들이 이곳에 많은 모양이다.
한바퀴 돌고나서 돌아갈 길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였다.
소나기 줄거리 :
소년은 서울서 왔다는 윤초시의 손녀딸을 처음 만난다. 소녀는 모든 점이 낯설어 소년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하지만,
매우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소년은 자기와 동떨어진 상대라 생각한 나머지 소녀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어느 날 소녀가 징검다리 한가운데서 물장난을 하고 있었다. 수줍은 소년은 둑에 앉아서 소녀가 비켜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때 소녀는 하얀 조약돌 집어 '이 바보'하며 소년 쪽으로 던지고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막 달려간다.
소년은 그 조약돌을 간직하면서 소녀에게 관심을 갖고 소녀를 그리워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개울가에서 소년과 소녀는 다시 만나다 '너 저 산 너머에 가 본 일이 있니?'하며
벌 끝을 가리키는 소녀와 함께 소년은 시간을 보내게된다.
그들은 무도 뽑아 먹고 허수아비를 흔들어 보기도 하면서 논길을 달려 여러 가지 꽃들이 어울러진
산에 닿았다.
소년은 꽃묶음을 만들어 소녀에게 건넨다. 마냥 즐거워하던 소녀가 비탈진 곳에 핀 꽃을 꺾다가 무릎을
다치자 소년은 부끄러움도 잊은 채 생채기를 빨고 송진을 발라 주었다.
소년은 소녀가 흉내 내지 못할 자기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인 양 소녀 앞에서 송아지를 타기도 하였다.
그때 소나기가 내렸다. 비안개 속에 보이는 원두막으로 소년과 소녀는 들어갔으나 비를 피할 수 없었다.
밖을 내다보던 소년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는 소녀를 위하여 수수밭 쪽으로 달려가 수숫단을 날라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좁디좁은 수숫단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위해 주려는 마음이 생기고 서먹했던
거리감도 모두 해소된다. 돌아오는 길에 도랑의 물이 엄청나게 불어있어 소년이 등을 돌려 대자
소녀는 순순히 업히어 소년의 목을 끌어안고 건널 수 있었다.
그 후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소녀를 그리워하며 조약돌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개울가에서
소년과 소녀는 다시 만난다.
그 소나기에 감기를 앓았다는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보면서 '그 날 도랑 건널 때 내가
업힌 일 있지? 그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하는 말에 소년은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날 헤어지면서 소년은, 이사가게 되었다고 말하는 소녀의 눈동자에서 쓸쓸한 빛을 보았다.
소녀에게 줄 호도알을 만지락거리면,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하다가 잠이 들락말락하던 소년은 마을 갔다 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소녀의 죽음을 알게 되며,
소녀가 죽을 때 "자기가 입던 옷을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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