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날"이라던가,
11월 11일에 붙인 이름이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닥아온다.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이날은 내게, 그리고 내 주위의 "문학 교도" 혹은 "문학 교인"들에게
바그너의 교향곡 만큼이나 무거운 주제였다.
아주 오래 전 이날,
11월 11일에 문우이자 화가이던 내 친구 하나가 젊디젊은 나이로 세코날
21정을 털어넣고 어떤 산 비탈의 낙엽 속으로 뒹굴어 사라졌다.
황순원 작가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가 오래 월간지에서 연재가 되며
당시 젊은이들의 감성과 지성의 영역 모두를 사로잡던 시절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내 친구가 메모지에 쓰다가 가물가물하게 그친 유서의 내용은 지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은 가물거려도 그 글이 천근의 무게로 무거웠다는 사실은 아직 새록새록하다.
그가 떠난 후, 그해 겨울 우리는 그의 작품을 모아서 유작전을 열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해였다.
그 다음에도 뜻 맞는 친구들은 늦가을 그 날짜가 되면 모여서 그를 애도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무엇인지, 이제는 기일이 되어도 그 문학 교도들이 연락들을
않고 지낸지도 오래되었다.
그래도, 그렇게 모이지 않아도, 흩어져서 사는 모두의 가슴에 그날은 무겁게
닥아온다.
다들 그렇게 느끼며 살아왔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빼빼로 날"이라는 말이 생겨서 그 때가 가까워오면 조금
맹랑하게 되었다.
하긴 젊은 남녀들이 빼빼한 과자를 서로의 입에 물려주고 또 입맞춤하면서
끊어먹기 하는 몸짓들이 그 나이에는 가장 진지하고 무거운 행사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생각을 우리가 고쳐먹어야지---.
오래 전에 자살을 한 친구 이야기, 그 사건 자체로 여기에서 거창을 떨자는 것은
아니다.
자살을 하지 않아도 살아있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사실을 모두들 잘 아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친구의 적멸을 회억하는 것은 사랑하는 문학 동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
닥아왔다는 소박한 감상에서이며 그 어려웠던 시절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으로 남기고
가슴을 적셔 공감의 끈을 잇고 싶기 때문이다.
내게 그런 거창한 재능은 없기에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끌어들여서라도---.
그때 그 시절, 우리 젊은이들은 모두 비탈에 선 나무들이었고 그 어느 즈음에
황순원은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당시 거의 유일한 지성지, "사상계"에
연재하기 시작하여서 수많은 청년들의 가슴을 울리고 두드렸던 것이다.
양키 시장에서 산 사지 군복을 검게 물들여 입고 군화의 목을 잘라서 발에 꿰어
끌며 카바이트로 숙성이 빨리된 시커먼 막걸리를 마시던 청년들은 비판과 거부의
몸짓으로 절규하였다.
이 가난한 청년들은 그들보다 더 처참하게 살았던 전후 세대, 선배들의 모습을
그 연재 소설에서 읽고 보며 함께 비탈에 선 나무로 군락이 되어 위로 받았다.
<나무들 비탈에 서다>의 줄거리와 감상은 저 아래 쪽에 정리하여 보았다.
그 힘들었던 시절, 군대는 당장 가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연기원을 내야하나,
논산 훈련소로 떠나가는 친구와 석별하며 처음으로 작부가 있는 술집에서 술을
마셔본 공체험의 동지들,
떠나가는 야간 군용열차의 차창에 비친 헬쓱한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남은 자들은 아르바이트로, 때로 장학금으로---,
누구는 창부에게서 몹쓸 병이 올랐다는 신화를 만들었고 그걸 걱정해주며 그의
만용을 부러워하며, 우리 젊은 나무들은 비탈에 서서 여름 소나기와 겨울 삭풍을
인종하였다.
세월이 흐르며 만물은 정말 유전하는 모양이다.
힘든 시절을 그려냈던 황순원 작가가 작고하신 후, 이 나라도 많이 넉넉하여져서
이제는 작가를 기리는 마을도 꾸며낼수 있는 경제 수준이 되고야 말았다.
내 그럴줄 알았던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럴줄 몰랐다.
며칠전 어떤 출판 기념회에서 국문학을 하는 K 교수를 만났다.
이야기가 최근에 있었던 "황순원 문학 예술제"와 "소나기 마을"로 흘러갔다.
알고보니 K 교수가 그 행사들을 주관하고 있었다.
양평군과 문광부의 후원, 그리고 황순원 작가가 생전에 봉직했던 K 대학이 힘을
모아서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K교수는 바로 그 K 대학의 교수이다.
세상 모든 일이 돈과 관계되어서 일이 계획대로 아주 잘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일이었다.
개도 옷을 입는 세월이 되었다.
아니 애완견이라고 해야한다.
"양평군 서종면 수능1리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한번쯤 구경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그 근처 가을 경치가 절경입니다."
K 교수의 권유였다.
그렇게해서 양평의 "소나기 마을" 인근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소나기 마을은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보다도 근처의 가을 단풍 절경이
속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더니 풀어놓을 줄을 몰랐다.
어떻게 겨우 빠져나왔는지 지금도 정신이 몽롱하다.
시인 마을을 표방한 선언문이 미안하지만 좀 교만하게 보이기도 했다.
무슨 감정이나 근거가 있어서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글쎄, 너무 아름다워 시셈이 좀 났다고나 할까---.
몇가지 참고 자료---.
제 4회 황순원문학제 시상식이 20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문화체육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황순원 소설 새로 쓰기’ 부문에 전고운(안양예고 2년)양이, ‘황순원 소설 그림 그리기(사진)’
부문에는 김지연(영파여고 2년)양이 각각 대상을 받았다.
소설가 황순원(1915~2000) 선생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황순원문학제는 중앙일보·양평군·경희대가 주최하고
‘황순원문학촌-양평소나기마을건립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양평군 서종면 일대 1만1000여 평엔 황순원의 대표작 ‘소나기’를 테마로 한 문학체험 공간 ‘소나기마을’이 조성될 계획이다.
그림은 올해 ‘황순원 소설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의 대상작.
황순원 소나기 마을 건립 개황
경기도 양평에 조성되는 고 황순원씨의 1950년대 단편소설 ’소나기’의 배경마을이 윤곽을 드러냈다.
양평군은 15일 경희대학교와 함께 서종면 수능1리 1만1천평에 조성하기로 한 ’양평 소나기마을 조성사업’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을 최근 마무리하였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인접 수능1리는 반달형 지형에 야산 구릉으로 들러싸여 소설 속의 전형적인 농촌 풍경을 간직한 곳이다.
양평군은 이 마을에 황순원 문학기념관과 함께 개울과 징검다리, 외나무다리, 섶다리, 허수아비, 참외 과수원과 원두막 등을 만들고 미타리꽃, 도라지꽃, 들국화, 쑥부쟁이 등이 피는 야생화 동산을 조성하는 등 소설 속 배경을 재현한다.
소나기마을은 소설 속 전개과정을 도입해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단계로 구성되고 단계별로 휴대폰 GPS 서비스를 이용한 해설 서비스도 이뤄진다. 가장 먼저 마을에 들어서면 볼 수 있는 황순원 문학관에는 그의 생애, 생전의 집필실, 유품, 주변 인물들 등을 만날 수 있는 공간과 작품실 그리고 문학교실 등이 만들어지고 옛 교실을 첨단디지털 미디어기술을 활용해 재현한 공간도 마련된다.
또 소년이 소녀를 업고 건너던 ’업고 건너는 길’에는 인공 소나기가 뿌려지는 등 당시 분위기를 살리도록 공간이 배치된다. 야외 문학제와 음악회를 할 수 있는 ’소나기무대’에는 억새와 갈대를 심고 작은 개울을 만들어 분위기를 살렸고 방문객들을 위한 낙서벽도 설치된다.
이밖에 황순원의 다른 소설을 주제로 한 목넘이 고개(목넘이 마을의 개), 학의 숲(학), 해와 달의 숲(일월), 고향의 숲(카인의 후예), 별빛마당(별) 등이 조성돼 산책을 하며 소설 속 분위기를 맛볼 수 있도록 꾸며진다.
양평군은 소나기마을 조성 이외에도 소나기 모바일 콘텐츠 다운로드 체험, 소설후기 쓰기 체험, 문학도서전, 기념품 개발 및 디자인 공모사업도 추진한다. 양평군은 사업비 100억원(국비 50억원 포함)을 들여 2007년말 완공해 공개할 예정이다.
양평군과 경희대는 소설 ’소나기’에 ’소녀가 양평읍으로 이사한다’는 지명이 등장하고, 황씨가 23년간 교수로 재직했던 대학이라는 인연으로 2003년부터 공동으로 소나기마을 조성을 추진해왔다 |
나무들 비탈에 서다;
[제1부 ]
동호, 현태, 윤구는 전쟁터에서 살아 남은 전우들이다. 동호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상실케 한
후유증으로 방황하다가 현태, 윤구의 충동질로 작부인 옥주에게 동정을 바친다.
강박성과 결벽성, 그리고 옥주에 대한 동료 의식으로 그녀에게 몰입하던 동호는 옥주가 단지
육체의 쾌학만을 위해 매음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와 정부를 살해하고 자신도 동맥을 끊어 자살한다.
[제2부 ]
부친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던 현태는 어느날 우연히 자신이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죽인 여인과
비슷한 행색의 모녀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죄의식에 시달려온 현태는 드나들던 술집 작부가 자살하는 것을 고의로 방조한 죄로 무기 징역을
언도받는다.
한편 현실주의자 윤구는 전쟁에서 체득한 비정함으로 현실생활을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가정 교사로 있던 주인집 딸을 임신시켰으나 무리한 중절을 하다 그녀가 죽게 되고 윤구는 혼자만의
살 길을 모색한다.
동호의 순결한 옛 애인 '숙이'는 동호의 죽음을 추적하다 현태에게 겁탈 당하고 아이를 가진다.
현태가 구속되자 아기를 낳을 때까지만이라도 윤구에게 의지하려 하나 윤구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이 작품은 6·25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작중의 모든 액션의 일차적인 계기는 그 전쟁에서 연유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이란, 외적 계기에 지나지 않으며, 근원적 계기는 그 전쟁을 감당해야 했던 작중인물
개개인의 자의식의 갈등관계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든 개인들의 상호간의 부딪침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자의식의 상처'의 양상이야말로 이 작품의 비극의 결정적 계기인 것이다.
이 작품에 있어서 작중인물 상호간의 관계는 가해, 피해의 관계로서 전개된다.
말하자면 모든 타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의 자의식에 대한 가해자일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각자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주체적으로는 피해자이지만, 객체적으로는 가해자일 수밖에 없다.
이리하여 모든 관계는 가해, 피해의 상승관계로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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