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후쿠오카의 "후유노 소나타" (겨울 연가) (마치는 회)

원평재 2005. 2. 8. 16:52

"하이, 후유노 소나타, 겨우루 엥카 인연이무니다. 호호호.

소나타는 엥카라는 뜻이지요."
그녀는 식탁에 연가(戀歌)를 간편체로 쓰더니 얼른 말을 다시

이엇다.
"작년에 춘천과 남이 서무에 갔다가 이 분 만났스무니다."

 

보헤미안은 어떤 기획사의 중견 간부인데 남이 섬에
"겨울 연가"와 관련한 공연 기획을 세우고 사전에 확인하러
갔다가 일본인 아주머니 부대를 만났고 사진을 찍어주다가
이 키모노 여인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보지는 마십시오. 저는 아내와 몇년 전 사별했고
유키코는 독신 주의자였는데 겨울 연가와 나를 알고 부터는
결혼이니 가정이니 하는 컨셉을 의미롭게 생각케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 말도 열심히 배우고 있지요. 그러나 아직은 서로
모르는 일 투성이고 보니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놀토, 그러니까 노는 토요일 주간에 월차를
내서 여기 오면 3일을 지낼 수 있고 그런 식으로 유키코가 또
서울 와서 한달에 3일을 지내는 것이지요."

 

"독신 주의가 마침내 흔들렸군요?"
내가 유키코의 화려한 키모노의 "오비이"를 흘낏보면서
손으로 흔들리는 표현을 하였다.

 

 


 

"아, 겨우루 엔카를 보고나서 또 우연히 이 분을 만나고
보니 갑자기 혼자서 저녁 먹으러 나오는 일에 질려
버리겠더라구요. 여기는 모두 이렇게 혼자서 저녁 먹으러
나오는 사람이 대부붕, 아니 대부분이지요.
전에능 그게 자유인주르 알았는데 질리겠더라구요---."
"한류의 기세가 무섭긴 무섭군요, 하하하."
내가 또 웃으며 화답하였다.
"아, 항류? 강류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항류 때문에

깨달음이 많응거 같아요."
"아이구, 우리 말 예쁘게도 배웠네요."
아내의 맞장구였다.

 

유키코는 왜소한 일본인에 비하면 육덕이 있는 편이었다.

"잠자리가 좋겠네---"라는 점잖지 못한 생각을 잠시하다가
화려한 키모노에 눈길이 다시 가면서 갑자기 어떤 단절감,

착잡한 벽채 의식, 국가적 혹은 민족적 벼랑 같은 존재를

느닷없이 느끼게 되었다.

내가 왜 이러나---.
내 기질이 코스모폴리탄한 편이었음에도 이 일본 옷에서는
왜 이런 간격, 간극을 느끼는가.


일제 강점기에 대한 내 심리적 컴플렉스가 갑자기 도졌나.

 

복잡한 생각에 혼자 부담을 느끼며 눈을 아래로 내려까는데,
오비이 아래로 우리의 버선 겪인 "다비이"가 약간 보이고
이어서 전통 신발인 "게타이"도 조금 나와보였다.
재질은 전통 자연산이 아니고 인조 라텍스 같았다.
내 시선을 발끝에 느꼈는지 유키코가 얼른 말했다.


"아, 요즈음은 신바루를 라바로 만들지요."
"신발이 인조 고무 제품이라는 말이군요."
아내가 유키코의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확인해 주었다.

"아니 여보, 고무 제품이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마시게. 그게 또

묘한 뉴앙스가 있어요."
내가 무심을 가장하여 예의를 차리는 듯한 발언을 했으나
사실은 의도적이었다.
말 속에 은밀한 즐거움을 감춘 것이다.


"아, 어떻습니까 뭐---. 일본에는 독신자들이 많아서 여자들
핸드백 속에는 라텍스 바이브레이터가 장난감처럼 들어
있답니다. 하하하."
역시 보헤미안이었다.

 

하지만 "라바"라고 일본 사람들이 다데마에(外樣)로 말할 때의

혼네(本心)는 "컨덤"을 뜻하고 바이브레이터는 좀더 교묘하게

부르는 줄을 아직 보헤미안은 모르고 있었다.

나도 갑자기 생각은 나지않았다.

하긴 눈처럼 정결한 겨울 연가에 웬 바이브레이터인가---.

 

우리가 식당에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보헤미안 커플은 식사가

먼저 끝나서 심심한 양해를 구하며 먼저 자리를 떴다.
우리는 명함도 교환하고 서울에서의 재회를 약속하였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그제서야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키모노가 절벽처럼 느껴졌네."
내가 좀 뜻 모를 소리를 했다.
"왜요. 가슴이 풍만하던데---."
아내가 내 의도와는 핀트가 다른 생뚱맞은 응대를 했으나

그건 당연한 반응이었다.
내 복합심리를 어찌 알랴---.

 

우리도 곧 지하 식당을 나와서 1층으로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또 정말 드물게도 검은색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은

단정한 모습의 젊은 여자가 재빨리 우리 옆을 지나갔다.
"조선족이다."
내가 얼떨결에 탄성을 발했더니 아내가 "조총련이지요"
라고 가볍게 수정하였다.
아 참, 그렇지!
조총련계의 재일 동포 처녀가 단정하게 우리 한복 치마,

저고리를 입고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키모노를 아까 겨우 하나 보았듯이 치마 저고리 입은 사람도

오늘 처음이었다.

 

낮에 "후쿠오카 돔"에 들어갈 때에 입구 근처에서 기와를 이고있는
한국 총영사관 건물은 보았으나 이 곳에 우리 동포가 얼마나 살고
있는지, 조총련계는 또 얼마나 되는지 알수 없는 가운데에서
정다운 치마 저고리를 여기 하카다 역에서 조우 하다니!

평소 유니폼이나 획일적 주장과 이념 같은 데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내 사유의 저변에 치마 저고리 향수가 깔려있었다니---.

얼핏 본 인상으로도 그녀는 꼭 다문 입술에 단정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몸매도 가녀리게 호리호리하여서 육덕이 있던 유키코와 비교

되면서 공연히 가슴이 아렸다.

 

 

**후쿠오카 한국 영사관**

 


그래 맞다,
특히 저고리 위에 털실로 짠 재킷을 곱게 걸쳐 입어서
제복이라는 느낌 보다는 겨울날의 추위를 느끼고 있는
그녀의 따뜻한 인간적 면모를 내게 전달해 보여주었구나.

그 아무렇게나 걸친 털실 재킷으로 인하여 나는 치마

저고리가 단순한 제복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나아가서는 오래 전에 망각했었던 배달겨례 의식같은 것이
내 오감 속으로 현현해 들어옴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치마 저고리 처녀는 흘낏 스쳐 지나 갔지만 화려한

키모노에서 느꼈던 잠깐 동안의 느끼했던 컴플렉스는

김치를 먹고난 다음처럼 내 오감에서 깨끗이 청소가 되어

나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