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간 형벌처럼 라면을 해치우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교통센터에서 하루 동안 통용되는 가족 패스를 샀다. 그리고 건물 내부에 있는 탑승구로 가서 후쿠오카 돔 행 버스를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탔다. 하카다 역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그곳은 도시 외곽의 또다른 성격의 공간이었다. 돔 건물의 입구에는 날개를 편 커다란 "매"의 조형물이 서 있어서 이곳이 후쿠오카의 야구단 "Hawkks"의 홈타운 임을 나타내었고 그 앞에는 이 구단을 빛낸 왕정치를 비롯하여 수많은 야구 선수들의 청동으로 뜬 손이 줄줄이 내 손목을 움켜잡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중에는 난데없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손도 있어서 아마도 이 가수가 이 돔 구장에서 언젠가 공연을 햇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엿다. 관광 가이드를 따라왓더라면 이런 부분에 대한 정보가 순식간에 쏟아져 들어오겟지만 조용히 시간을 내어서 상상력을 발휘해 보는 맛도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천정이 개폐되는 거대 구조물에는 시즌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으나 그 건물 앞쪽에 전개된 호크스 타운은 작은 쇼핑몰이
빽빽히 들어차 있는 하나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풍경과 사연들을 압도하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Hawks"라는 글자 앞에 붙어있는 수식어 "Softbank"라는
글자였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IT 산업의 귀재, "손정의" Softbank 사장이
바로 이 구단의 주인이 아니던가!
내 가슴은 공연히 애국심으로 뛰었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후쿠오카 타워도 대충 구경하고 하카다 역으로
되돌아왔다.
이미 저녁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식사는 하카다 역의 지하 2층에 있는 대규모의 식당가에서
먹기로 하였다.
쇼 윈도우에 음식 모양과 가격이 적혀 있어서 이것 저것기웃거리며
선택의 시간을 갖는 것도 그룹 투어가 아닌 개인적인 여행의
또다른 별미였다.
놀라운 것은 이 곳에서도 점심 때 보았던 광경처럼 홀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 현상이었다.
일본 사회가 가족의 해체를 이렇게 빨리, 광범위하게겪는 줄은
정말로 예전에는 미쳐 몰랐었다.
혹시 일행이 있는 경우에도 남남, 혹은 여여로 구성된 경우이지
남녀가 한 단위로 된 커플은 찾기가 힘들었다.
이들은 연인들도 없단 말인가---.
어느 식당 앞이던가, 키모노 입은 여자가 윈도우 쪽으로 앉아있고
어떤 중년의 남자는 간편한 차림으로 등을 보이고 있었다.
일본에 온지 한나절 밖에 되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키모노 입은
여자를 보기가 힘들었는데 모처럼 화려한 그들의 전통 의상을
만나게 된 셈이었다.
더우기 그녀는 혼자가 아니고 보기 드물게도 남편이나 연인같은
동반자가 있지않은가---.
전통미를 간직한 사람은 인간 관계의 해체도 겪지 않는구나.
감탄과 함께 우리 부부는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른 곳으로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곳은 음식도 일본식과 서양식의 퓨전 같았고 값도 적절했는데
키모노 여인을 가까이에서 보게 되는 프레미엄도 있지않은가.
마침 그들의 옆 좌석이 비어서 우리는 그리로 가서 앉다가약간 놀라게
되었다.
건너편에 등을 보였던 사람은 아침에 우리가 만났던 그보헤미안이
아닌가.
그도 멈칫하다가 반갑게 알은체를 하였다.
"세상이 좁은게 아니라 후쿠오카에서 하카다 역 말고여행객이 어딜
가겠습니까, 하하하."
그가 재담과 함께 큰 소리로 웃어서 우리는 안도하는 마음이었다.
우리 부부가 키모노 여인을 황홀하게 보자 보헤미안이 그녀를
우리들에게 소개했다.
"유키코라고 하는데 제 일본인 여자 친구입니다."
"아, 온나노 도모타치. 여자 친구라고요?"
내가 배우다 만 일본어를 바보처럼 중얼거렸다.
"니혼고노 잘 하시무니까?"
크게 예쁘지는 않았지만 정감이 가는 유키코가 미소지으며
서툰 우리말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와카리마셍, 하하하."
내가 또 쓸데없이 배우다만 일본어를 지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런 바보같은 말 때문에 분위기는 점점 더 화기애애하게 뜨고
있었다.
아니 "화기 애매"라는 전에 유행하던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여자 친구분이 계셔서 자주 오시게 되었군요. 어떻게? 말하자면
궁금한게 많은데요.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생활에 관한 이야기가 자칫 무례의 수준이 될 수도 있었으나 이런
극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다른 무슨 이야기를 꺼낼 수 있으랴.
"괜찮아요. 궁금한건 당연하고 들으시면 재미 있으시겠지요.
겨울 연가 때문에 인연이 생겼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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