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리야, 옛땅! 연변과 만주 벌판

국민 작가-등단 작가 (연변에서 전하는 등단 소식)

원평재 2005. 3. 4. 17:16
21세기 초입에 신통치 않은 산문으로 사실과 허구를 얽어맨
"팩션(fact+fiction) 단편 소설집"을 두권 냈었는데
어쩌다가 4대 일간지 등의 눈에 띄어서 긍휼히 여기는 기사로
꽤 괜찮은 대접을 받았다.
경제 신문 하나에서는 가볍게 박스 기사로 올려주기도 하였다.
저널리즘의 위력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매스컴을 탔더니 
은퇴하여 벽지에서 농사짓는 친구로부터 미국, 유럽에 산재한 
동기들까지 여러 통로, 
예컨데 전화는 물론이고 정식 편지, 엽서와 이메일 등으로까지 
반가움을 표시해 왔다.
왕년에 고등학교 문예반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문학의 밤"과 
"문예지"를 만들던 문청(文靑)이 그동안 어리버리 지내다가 
늦게나마 예전의 변경을 넘보고 있으니 기특했던 모양이다.
이런 가운데에서 잘나가는 친구들은 축전과 화환(!)까지 
보내와서 나중에는 조금 아슬아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소설 문단에서는 일찌기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대작을 위시하여 
수많은 작품들이 인구에 회자되는 고등학교 후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배님, 축하합니다."
"아이구, 내가 한발 늦었네. 책을 먼저 보냈어야 하는데---. 이제야
작업중이오."
"네, 조금 섭섭했습니다. 하여간 고등학교 때 글 공부 열심이던 분이 
이제야 본가로 귀향한듯 합니다. 신문에 난 평으로 보니
좋은 작품들을 발표한 것 같더군요. 글쟁이라서 서평을 보면 벌써
대충 압니다."
"너무 띄우지 마시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사실은 없어요."
"선배님, 그런데 말이지요---."
과찬 수준이 고도를 너무 높인다 싶더니 과연 본론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문학 작품을 발표하여 작가로 인정을 받으려면 
신춘 문예에 당선이 되거나 문학지의 추천 혹은 신인상을 받아야 
소위 "등단 작가"가 된다는 것이다.
나같은 경우는 일간지에서 인정(?)을 했으니 작가의 반열에는 
올랐겠지만 어쨌든 "국민 작가"라는 타이틀에만 머문다는 
것이었다.
"하하하, 그래요? 내 느낌으로는 국민 작가라는 소리가 더 좋아
보이네. 어감이 벌써 거대 서사구조이구려---."
"어거지 언동은 삼가시고,ㅎㅎㅎ 작품 몇점 보내 주세요. 제가 
좋은 문예지에서 한번 심사토록 하지요. 요즈음 이상한 데가 
많아서 잘못하면 체면도 구기시고---. 문협 쪽도---."
그러다가 우리는 서로 소식이 끊어졌다.
내가 워낙 다른 일로 바빴기 때문이었고 그 후배도 행동반경이
넓었다.
이제는 내 업무가 좀 한가롭게 되어서 이 후배를 찾으니 그 사이에 
리서치 펀드를 받아 프랑스로 가버렸다.
오기와 체면 사이에 오락가락하던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예전에 서성거렸던 변경에 홀로 서게 된 것이다.
이제 그동안 좀 괜찮다고 눈여겨 보았던 문예지를 찾아서 보니
이크, 
발행인 혹은 편집인에 내 아는 분들이 있지않은가.
점잖은척 아무 문제없이 지내던 사이에 졸작을 꺼내다가 괜스리 
망신이나 당할까봐서 그런 곳도 피하고, 
또 어떤 곳은 전에는 이름 값을 하더니 그 사이에 퇴락한 행색을 
보여서 그런데도 외면하고 
마침내 손에 잡히는 곳으로 부끄러운 작품 몇점을 보냈더니 
평소 마음에 들어 존경했던 분들이 신인상으로 추천을 해 주셨다.  
젊은 날의 소망 때문에 언젠가는 획득코자 하였던 "작가" 혹은
"소설가"라는 명칭을 내가 잔망스레 참칭하여서 거룩한 어휘에
욕이나 쳐바르는 것은 아닌지.
변변치는 않지만 내 이름으로 된 전공 서적과 번역서도 손가락을
꼽을 처지에 이게 무슨 자승자박의 치기나 아닌지 모르겠지만,
성취 동기가 순수하고 순전(純全)했다는 사연만은 
맑은 연못, 청담(淸潭)의 속내임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 드리고 
싶다.
나와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에게, 
특히 이 공간의 문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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