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산행을 하고 내려오다가 불탄 폐선을 발견하였습니다.
*할 일이 밀려서 마음이 바쁜 중에도 팩션 하나를 생각해 내었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허구입니다.
"임프레숀 뜹시다, 라이트 좀 올려 주시고요."
치과의사가 말했다.
"네, 알지네이트 묽게 할까요?"
간호사가 곱게 말하였다.
이제는 의사도 간호사에게 경어를 쓰고 간호사들은 또 스튜어디스 만큼이나
사근사근해졌구나---.
마취 주사를 잇몸과 입천정에 각각 한대씩 맞은 청년은 멍하니 간호사를
올려다 보며 그들의 대화를 귓전에 담았다.
화장하지 않은 간호사의 얼굴이 강렬하고 예쁘다 싶었는데 눈섶 문신을 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근무중에는 화장을 못하게 되어있다더니 그걸 문신으로 대신한 모양인가.
환자가 무슨 관객도 아닌데---, 무얼 그리 예쁘게 보여야하나,
청년은 웃음이 나와서 입에 고인 침과 오물을 꿀꺽 삼켜버렸다.
"석션!"
치과의사가 급히 말했고 보조 간호사가 흡입봉을 청년의 입안으로 들이밀었다.
치과의사는 핑크 빛 알지네이트를 어느새 간호사로 부터 받아서 청년의 치아에
바르기시작하였다.
"본을 떠야하거든요. 치아를 만들어 씌우려면 기공소에서 일주일 쯤 걸리죠.
그 동안은 지금 여기에서 간단히 가치를 만들어 끼워 놓으니까 걱정마세요."
치아가 좋지않은 청년이 이 곳을 주로 이용하는 것은 사무실에서 가까운 탓이
컸지만 중년의 치과의사가 아주 친절한 때문이기도 하였다.
하긴 이제 병원도 무한 경쟁 시대가 되어서 실내를 호텔처럼 꾸미고 의사와
간호사도 스튜어디스 학교를 수료한다던가---.
알지네이트는 차가웠으나 본을 뜨기 위하여 꾹 누르고 있는 치과의사의 손가락은
따뜻하였다.
30초쯤 후에 그는 거푸집이 된 치아의 본을 역방향으로 정확히 빼내었다.
"매우 기술이 좋은 의사이구나---." 청년은 생각하였다.
연극을 하며 분장사도 겸한 청년은 알지네이트의 특성을 잘 알았다.
간호사가 얼른 입술에서 분홍빛 찌꺼기를 제거해주고 양치질을 하라고 말했다.
종이 컵의 물로 입 안을 헹구는데 간호사의 핑크 빛 건강한 손가락과 그 아래로
보이는 탱탱한 스펀텍스 베이지색 바지가 화려하게 눈에 들어왔다.
반 시간쯤이나 드릴 세례를 받아서 송곳니는 반으로 줄어들었고 마취주사까지
맞아서 녹초가 된 청년에게 손가락과 바지는 갈망의 피안이었다.
"선생님, 인상재를 잘 뜨고, 잘 뽑으시는군요?"
청년이 멍한 소리를 냈다.
"알지네이트를 어떻게 알아요? 혹시 치과 대학생?"
"아뇨, 제가 연극을 하거든요. 작은 극단이라 배우도 하고 분장사 노릇도 하고---.
데드 마스크를 뜨기도 하고 페이스오프도 합니다. 그래서 인상재를 사러
치재상에도 들락거려요. 요즈음은 분장 재료상에서 다 취급하지만요."
"재미있군요. 지금 가치를 만들고 있으니까 그냥 조금만 더 누워있어요. 잘 맞는지
끼워봐야 하니까."
"가치는 뭘로 만드시나요?"
"레이진이라고---, 그러니까 수지 계통."
"합성 수지군요."
"분장사라서 잘 아시네요."
"아뇨, 배우라니까요."
"치아는 참 튼튼하게 받고 태어난 분인데, 관리가 엉망입니다. 술, 담배 그런거
삼가하셔야겠어요. 자 한번 끼워봅시다."
가치가 잘 맞지를 않아서 치과의사는 다시 플레인으로 정성껏 자기 작품을 깍고
쓸어대며 크기와 모양을 만졌다.
"선생님은 술 안드세요? 힘드실텐데, 끝나고."
"왜요. 와인을 반병 정도나 마실 때가 많아요. 저기 옆에 돛단배가 있을 때는
좋았는데---."
"아, 그 배 모양의 레스토랑이 며칠전 밤중에 불타버렸잖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영업중이었는데 매일 밤, 바이얼린 키던 여자가 행방불명
이래요."
"네? 그 여자가요?"
청년이 펄쩍 뛰었다.
도시 변두리에 위치한 치과 병원의 옆에는 큰 돛을 단 배가 있어서 저녁이면
국적 불명의 양식을 팔면서 와인도 비싸지 않게 내 놓았다.
왕년의 흘러간 가수도 가끔 와서 노래를 불렀고 특히 전자 바이얼린을 켜는
여자가 인기였다.
그녀는 등이 다 파이고 가슴도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서, 바네사 메이 흉내를
내며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는 걸로 한 몫을 하였다.
어느날 저녁, 청년은 연극패들 몇명과 저녁을 먹으며 그녀를 테이블로 불러서
와인을 샀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나이가 많고 피부는 검게 매말라있었다.
청년이 그녀를 구태어 불러서 만나본건 단순 호기심도 있었겠지만,
마침 준비중인 카슨 맥컬러즈의 연극,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기획하며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해 줄 피아니스트나 바이얼리니스트를 섭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작에는 모찰트와 베토벤의 음악이 배경으로 깔렸는데 조금 각색을 하여 실제
연주자를 무대에 세워볼까 하는 이야기들이 기획단계에서 오갔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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