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 FACTION

폐선에서 (3회중 끝)

원평재 2008. 4. 4. 05:20

 

"아, 그거 맞네요. 그 세라믹 재질이 우리가 즐겨쓰는 것이구요. 그 여자분이

얼마 전에 와서 시술해 넣은 것이 틀림없어요. 기억이 납니다."

"그 나이에도 벌써 의치를 해요?"

형사가 의아해했다.

"당뇨가 심했어요. 당연히 치아가 녹죠. 아, 우리 세라믹이 틀림없구나. 

시술 기록 복사와 감정 증명서는 조금 시간을 주셔야하는데---. 하여간

그 여자가 죽은 건 맞군요. 끔찍하네요. 과실사인가요? 설마 타살?"

치과의사가 일 손을 놓다시피하고 물어보았다.

"모르죠. 수사를 해봐야지요. 하여간 이게 저 불타버린 폐선의 바닥에서 불탄

시체와 함께 나왔어요."

"아, 그럼 죽었구나---."

치과의사가 안면을 찌푸렸다.

"그런데 여자가 아니고 남자 시체란 말입니다."

"엄마야!"

소리를 지른 것은 간호사들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입을 벌리고 다물 줄을

몰랐다.

"내가 그 남자를 알것 같은데요?"

마취 주사로 머리가 약간 얼떨떨해진 청년이 얼떨결에 또 입을 열었다.

"하여간 당신은 우리와 경찰서로 좀 가서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내가 오늘 바쁜데요. 오후에 연극이 있어요."

"연극 배우인가요?"

"아, 네. 그런데 오늘은 분장을 해주어야 되니까요."

청년이 또 얼떨결에 고백을 했다.

"저 분은 분장사라니까요. 메이크업 담당."

간호사가 냉큼 말했다.

"연극이 몇시요?"

형사가 물었다.

"일곱 시에 공연이 시작되는데 그 전에 메이크업을 다 해주어야지요.

한시간은 걸리죠. 또 소도구와 음료수도 챙겨야하고."

"이 젊은이가 배우라더니 이거 순 시다바리구만. 심부름꾼, 초년병이야.

경찰서로 갑시다."

"잠깐. 지금 레이진으로 가치를 해 넣고 있어요. 치아의 본을 또 떠서

세라믹 기공소에 보내야하니까 30분만 더 있으면되요."

치과의사의 말에 갑자기 병원 안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부산해졌다.

그가 솜씨 좋게 부지런을 떨어서 치과병원에서의 청년의 일은 곧 끝이났다.

하지만 청년은 근방에 있는 아트 센터의 연극 공연장으로 당장에 갈 수는

없었다.

그가 형사 두사람과 밖으로 나오자 건너편으로 불에 탄 폐선이 하오의 눈부신

햇볕 가운데 더욱 흉물스레 서 있었다.

"여자의 집을 알아요?"

형사가 물었다.

"아, 네. 집이라기 보다 원룸인데---, 미아리 쪽에."

"잤오?"

"네. 첫날 극단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만났다가 나왔는데 그 기둥서방같은

녀석과 그녀가 주차장에서 싸우더라구요.

여자가 핸드백으로 그 남자를 맞추니까 코피가 터졌고 내가 그 와중에 택시를

불러서 우리 둘이 같이 탔지요. 여자가 미아리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남자가 거긴 못온대요.

그녀가 밤무대에 서던 초기에 성폭행을 해 놓고는 매니저란 이름으로 돈을

뜯는데 이제는 눈치를 챈 자기 본 마누라 등쌀에 더 이상 몸을 건드리지는

못할 형편이랍디다.

그래서 자기집 근처에는 얼씬도 못한데요. 하지만 그 마누라도 돈은 좋아해서 

계약서에는 몸에 손을 대지 않는 대신에 돈을 더 뜯어가게 해두었대요.

밤 무대에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답니다.

결국 계약서가 노비 문서처럼 되어있어서 수입금은 매니저가 갖고 논대요."

"말씀 고맙소. 하지만 당신도 이제부터는 용의 선상에 올라갑니다. 하룻밤

사랑으로 동정심이 생겼건 어쨌건 여자와 짜고서---. 그런 시나리오, 그런

혐의가 돌아갈 수도 있단 말이오. 결국 여자도 불타죽은 것 같긴하지만---."

 

형사들이 가까이 세워둔 출동차 쪽으로 가는데, 청년은 보았다.

그 얼굴이 거칠게 주름진 바이얼리니스트가 저 멀리서 색안경을 끼고 자기와

형사들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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