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참신한 시도와는 달리 섭외는 부진하였다.
그날 만난 전자 바이얼리니스트도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 막상 물건은 불량품
이었다.
연극계 바닥의 표현으로 그녀의 값이 그러하였던 것이다.
좌석에서 볼 때보다 가까이에서 보니 우선 나이가 너무 많았고 대사라도 읊으면
금방 나이 든 표가 날 조짐이 보였다.
피부가 거칠고 주름이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나이와 피부야 메이크업으로 가릴 수도 있고 다른 장점으로 보상 될 수도
있었다.
결정적 흠으로는 매니저라고 하는 기둥서방 같은 남자 녀석이 하나 따라다녔다.
순수 예술 쪽이든 상업성이든 간에 그런 녀석은 바이러스 같은 존재였다.
꿈꾸는 여자들이 결국 망가지는 가장 큰 원인은 그런 거머리같은 존재 때문이었다.
연주가 끝난 그녀를 테이블로 불러서 함깨 와인을 비우고 있는 옆을 매니저라는
녀석은 어슬렁 거리더니, "결혼식장이나 행사장에 출장 연주도 가능하다"라는
식으로 한참 피알을 하더니 주차장에 먼저가서 그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사라졌다.
그들은 연극에서의 음향 효과, 특히 생음악을 도입해 볼 방법론에 매우 목말라
하던 참이어서 그녀가 어떻게 혼자 북치고 장구치듯 멜러디와 화음을 다
해내느냐고 물었다.
"Elf505 컴퓨터 반주기를 이용하지요. 이렇게 노트북처럼 갖고 다니는 음향기에
가나다 순으로 노래 타이틀과 코드, 심지어 악보까지 다 들어있죠.
그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니까 레파토리도 무궁무진해요.
예전에는 피아니스트하고 둘이서 했는데 이제는 전자 기술의 발전으로
이렇게 혼자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아까 그 매니저가 사람 쓰기를 싫어해요.
나누는 몫이 줄잖아요, 호호호."
나이가 좀 든 여인이 이렇게 순진하게도 보일 수가 있구나 싶게 그녀는 거친
피부지만 곱게 웃었다.
이야기가 조금더 진행될 수도 있었는데 그때 "알알알" 하며 휴대폰이 계속 울리고
그녀는 무어라고 욕을 하며 응답하더니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조금 응접실에서 쉬고 계실까요. 손을 좀 더 보고 끼워야겠네요."
치과의사가 청년에게 양해를 구했다.
"아- 네, 그런데 그 여자가 사라졌다구요?"
예사롭지 않은 과거지사 같은게 있어서 청년은 큰 소리로 물어보았다.
"그녀를 아시나요? 하긴 거기 가 본 사람들이야 다 알겠지요. 그런데 그
바이얼리니스트가 연주를 하는 중에 불이 났는데 그 와중에 그녀가 행방불명
이랍니다. 설마 잘못 되지는 않았겠지요만---."
"세상에! 그녀가 죽다니."
"누가 죽었다고 했나요. 행방불명이라고---."
치과의사가 말을 하다가 입을 닫았다.
대기실에는 어린아이 하나, 어떤 아주머니, 그리고 어깨가 딱 벌어진 중년 신사
두사람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청년은 마취로 어질어질한 상태에서 푹신한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늘어졌다.
그러자 갑자기 소파에 앉아있던 그 건장한 신사 두사람이 그의 양옆으로 와서
어깨를 딱 붙들었다.
"바이얼리니스트를 잘 아시나 보네요?"
두사람 중 하나가 말을 붙였다. 심문조의 언사였다.
"네?"
"그 여자가 죽었다는걸 어떻게 알았소? 아무도 말하지 않았는데?"
"느낌이 그랬다는 것이지요."
"이 젊은이가 점점 더 수상하네. 느낌이라니? 당신 뭐하는 사람이오?"
"아니, 선량한 사람을---. 난 배우요."
"당신 경찰서로 좀 갑시다. 임의동행이오. 그리고 의사 선생님. 이 의치 좀 검사해
주세요. 여기서 만든건가---."
두 사람 중의 하나가 비닐 백에서 시커멓게 그을린 의치 반쪽짜리를 꺼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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