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버팔로 빌 이야기

원평재 2008. 8. 12. 05:18

  버팔로 빌 코디는 서부 개척시대의 "변경개척자(frontiersman)"이자,

"척후(scout)"였으며, 나중에는 <와일드 웨스트 쇼>를 창단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인물이었다.

서부 개척사에서의 그의 행적은 과장과 뻥이 많아서 일부 전설의 세계로

변형이 된다.

<와일드 웨스트 쇼>라는 표현도 후대의 오류이고 그가 창단한 타이틀은

그냥 <와일드 웨스트>였다.

 

프런티어 시대에 Frontiersman이나 Scout이었다면 모험과 용기의 덕목이

전부인 것처럼 말하고 믿던 시절도 있었지만, 까놓고 말하여서 인디언들

(요즘 표현으로는 그나마 American Natives)에게 무자비하고도 교묘하게

사기를 치고 다닌 개인사를 의미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하긴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들이 명예로운 사람들의 그늘이었다는

사실을 까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회도 인류사에서 그나마 미국

사회가 굳이 순서로 따지면 금메달 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월가에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돈놓고 돈먹기를 하고 그들의 미디어

에서는 맨날 교언으로 반성문을 써대면서 반어적으로 미국적 가치

지키기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활용할 수 있기에 가장

유리한 나라가 이 나라가 아닐까 생각한다면 더위 먹은 자의 얼빠진

이야기일까---.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100년의 꿈을 이루었다는 중국의 환희에

가리워진 제국주의적 폭압의 현실, 그 올림픽 개막의 날에 전쟁을

시작하는 러시아 변경의 일들과 진짜 더위먹은 일인들의 독도에 대한

주장을 생각하며---. 

 버팔로 빌 코디라는 이 서부의 사나이는 개척시대가 곧 종언을

고하고 산업화로 들어선 미국과 유럽의 세상이 확 변할 것을 예측

하였다.

이제 터를 잡은 중산층들은 자신들이 말을 타고 움직이던 시대와

작별을하고 누가 찾아와서 그들을 즐겁게 해줄 대상을 기대하게

되었다.

영화가 나오기 전의 일이었다.

 

서부개척사는 과거의 추억이 되었고, 그 추억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자료가 되리라고 버팔로 빌은 재빨리 판단하여

과감하게 <와일드 웨스트>라는 대형 쇼단을 창단하였다.

허술한 유랑극단과 2-3인조의 보드빌이라고 하는 극단이 성공하는

데에서 착안하여 그는 대형화를 꿈꾼 것이었다.

어떤 내용에는 인디언 토벌대장 커스터 중령을 죽인 그 인디언을

버팔로 빌 자신이 찾아내어서 직접 죽였다는 뻥튀기 무용담도

재현하여서 자신이 직접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소위 까메오 출연도 할 만큼 그는 정열에 넘치는 사나이였던 것이다.

 

하여간 그의 이름에는 영욕이 교차하지만 서부식 스타일을 예술의

경지로 육화하고 구체화하였다는 점에서는 전설적 영웅의 칭호를

주어도 과하지는 않을듯 싶다.

 

 

 

 왜 네브라스카인가?

아이오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캔자스에서 성장하고 일을 했으며

나중에는 와이오밍, 유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고 마침내 콜로라도의

덴버에서 묻힌 그가 네브라스카의 노드 플래트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이곳에서 그가 <와일드 웨스트>를 창단하고 관리하고 유지했기

때문이다.

 

한때 와일드 웨스트 쇼단은 2000명의 단원에다가 소와 말과 코끼리 등

수많은 동물들을 포용하였다.

아래 보이는 스카우트 랜치에 겨울이면 그 동물들을 넣고 관리했다고

한다.

미국을 순회 공연한 것은 기본이고 유럽을 돌아다녔고 왕족과 대통령,

교황까지도 직접 대면하였다.

 

그는 당시에 돈많고 훌륭한 연예사업가로 행세했으나 인디언들을

이용한 배금업자이고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그를 다룬 영화들은

까발리고 있다.

 

 

 

 

Buffalo Bill And The Indians 

‘영원한 반골’ 로버트 알트먼이 19세기 말 전설적 서부개척자 버팔로 빌의

인생을 뒤집어 봤다.

버팔로 빌은 군 정찰병으로 이름을 날렸고 훗날 ‘와일드 웨스트 쇼’를 운영한

사업가.

하지만 인디언과 신천지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던 제국주의의 후안무치한

상징이자 협잡꾼으로 묘사한다.

폴 뉴먼, 조엘 그레이, 버트 랭커스터, 제럴딘 채플린, 케빈 맥카시, 

 

 

  

 

 

 

 

 

  

 

  

  로데오 게임이 벌어지는 경기장.

잘했으면 로데오 게임도 볼뻔했으나 일주일 전에 이미 끝이났다.

다행히 다음 행선지인 와이오밍의 라라미 카운티, 샤이엔에서 조우할 수

있었다.

   

  친구의 집으로 돌아와서 나인홀 퍼블릭 골프장을 돌았다.

더스크 아워이기도 했지만 대통령 골프를 쳤다.

  

 친구의 텃밭에서 산삼을 캤다는 "심봤다 뉴스"는 미리 알고 갔다.

중서부에서 카나다까지 우리의 인삼과 같은 종류의 식생이 존재하는

것은 교과서적 사실이다.

내 친구부부는 이 산삼뿌리를 하나씩 먹고 하루의 반을 잠에 빠졌었다고

하였다.

"역발산 기개세삼"의 효과는 불문가지였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한뿌리씩 차례가 왔지만 다음 방문객들에게 영광을 넘기고

사양하였다.

지금 방문객 명단을 제출하고 출발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이제 인터넷이 있어서 지구는 평평하다.

 

 

  

 이 댁에서 끼니를 맞이할 때마다 기막힌 요리에 혀가 살살 녹았다.

내 친구가 식재와 레시피를 모두 연구하여 장만하였다고 하지만

뻥(?)같기만 하다.

부인의 솜씨가 일품이었다.

 (계속)

 


Buffalo Bill's Wild West

A handbill for Buffalo Bill's Wild West and Congress of Rough Riders of the World'
A handbill for Buffalo Bill's Wild West and Congress of Rough Riders of the World'

After being a frontiersman, Buffalo Bill entered show business.

He formed a touring company called the Buffalo Bill Combination which put on plays

(such as "Scouts of the Prairie", "Scouts of the Plain") based loosely on his Western

adventures, initially with Texas Jack Omohundro, and for one season (1873) with

Wild Bill Hickok.

 

 

Annie Oakley, a performer in the Buffalo Bill show
Annie Oakley, a performer in the Buffalo Bill show

As the Wild West toured North America over the next twenty years,

it became a moving extravaganza, including as many as 1200 performers.

In 1893 the title was changed to "Buffalo Bill's Wild West and Congress of

Rough Riders of the World".

The show began with a parade on horseback, with participants from horse-culture groups that included US and other military, American Indians, and performers from all over the world in their best attire. There were Turks, Gauchos, Arabs, Mongols and Cossacks, among others, each showing their own distinctive horses and colorful costumes. Visitors to this spectacle could see main events, feats of skill, staged races, and sideshows. Many authentic western personalities were part of the show. For example Sitting Bull and a band of twenty braves appeared. Cody's headline performers were well known in their own right. People like Annie Oakley and her husband Frank Butler put on shooting exhibitions along with the likes of Gabriel Dumont. Buffalo Bill and his performers would re-enact the riding of the Pony Express, Indian attacks on wagon trains, and stagecoach robberies. The show typically ended with a melodramatic re-enactment of Custer's Last Stand in which Cody himself portrayed General Custer.

Sitting Bull and Buffalo Bill, 1885
Sitting Bull and Buffalo Bill, 1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