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부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이다.
오갈랄라 친구의 집을 떠나기 전날이 일요일이어서 미사를 참례
하는 친구를 따라 동네에 있는 성당를 찾았다.
작은 동네의 가톨릭 교회가 꽤 컸고 신자들도 많았다.
대도시의 신구 교회가 모두 텅텅비고 한인교회만 신도들이 꽉 차는
현상과는 사뭇 달랐다.
이곳은 신도들도 모두 백인들이고 유색인종이란 우리 뿐이던가,
아, 베트남 계통의 노부부가 얼핏 눈에 뜨이는 정도였다.
가장 미국적인 곳이 중서부 대평원이라고 하더니 틀림이 없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여기 사는 내 친구가 우리를 주위에 소개하는데
공군 장교 출신의 필라델피아 필리가 오갈랄라 출신의 에이스 베테란과
조우했다.
이 백인 퇴역 공군도 장교였고 놀랍게도 두사람 모두 한국의 같은
부대에서 근무하였다.
부인도 물론 남편과 한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Small is the World!
친구 부부는 이 성당에서도 크게 활동하고 있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휴일을 즐길 준비를 한다.
나와 필라델피아 필리도 와이오밍 주의 샤이엔을 다녀오기로 했다.
샤이엔은 라라미 카운티에 있다.
라라미 시티는 그곳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가야한다.
고딩 때,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를 재개봉관에서 가 본 기억이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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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차(1939)... 백주의 결투(1946)... 황야의 결투(1946)... 붉은강(1948)... 달라스(1950)... 혁명아 사파타(1952)... 하이눈(1952)... 베라크루즈(1954).... 셰인(1953)... 쟈니기타(1953)... 악의 화원(1954).... 돌아오지 않는 강(1954)... 북소리(1954)... 아파치(1954).... 유성과 같은 사나이(1955)...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1956)... 최후의 총격(1956)... 우정있는 설복(1956)... 제시 제임스(1957)... OK목장의 결투(1957)... 서부의 사나이(1958)... 리오 브라보(1958)... 빅 칸츄리(1958)... 건힐의 결투(1959)... 교수목(1959)... 알라모(1960)... 황야의 7인(1960)... 서부개척사(1962)... 마상의 2인(1961)... 프로페셔날(1962)... 리버티바란스를 쏜 사나이(1962)... 황야의 무법자(1964)... 석양의 건맨(1965)... 석양의 무법자(1966)... 쟝고(1966)... 셰난도(1965)... 네바다 스미스(1966)... 엘도라도(1967)... 판쵸빌라(1968)... 맥켄나의 황금(1969)... 진정한 용기(1969)... 와일드 번치(1969).... 웨스턴(1969)... 내일을 향해 쏴라(1969)... 내 이름은 튜니티(1971)... 석양의 갱들(1972)... 용서받지 못할 자(1992)... 라스트 모히칸(1992)... |
와이오밍 주로 들어섰다.
샤이엔은 와이모밍 주의 주도이다.
왼쪽 금빛 탑이 주 의회이다.
샤이엔은 잘 알다시피 유명한 인디안 부족 중의 하나이다.
주도의 이름이 되었을 정도이니 인디언 유적이 많이있어서 큰 박물관만
열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
이 박물관도 매우 오래되었으나 최근에 개축되었다.
이 더위에 왠 사람들이 이렇게 걸어서 쏟아져나오는가---.
알고보니 로데오 경기 주간이었다.
캠핑카들이 부지기수였다.
로데오 경주마들의 관리도 보통의 일거리가 아닐터---.
노상 주차도 거의 빈틈이 없었다.
이제 돌아가는 길이다~~~.
네브라스카 주로 다시 들어왔다. 반가웠다.
멀리 토네이도가 몇 줄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들렀다.
갑자기 동양인 여자가 슬슬 따라오더니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하였다.
알고보니 조선족 동포였다.
남편이 카나다인인데 대형 트럭을 운전하여서 자주 함께 다닌다고
하였다.
멀리 서있는 트럭 쪽을 힐끗보니 백인이었다.
그러나 대도시의 다운타운으로 들어갈 기회는 별로 없어서 항상 사람이,
그것도 한국말 하는 동포가 그립다고 하였다.
짧은 시간에 파란만장을 이야기하는데 정말 시간이 아쉬웠다.
연길에는 전 남편과 아들이 있는데 아들을 카나다로 데려오는 것이
지상의 과제라고 하였다.
차마 사진을 찍겠다고는 하지 못하였다.
작별은 아쉬웠다.
고향에, 아니 친구의 집에 도착하니 며칠전에 특별 부탁해 놓은 포크의
어떤 부분으로 정말 맛있는 요리를 해놓고 친구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에는 내 친구의 요리 실력을 재미삼아서 농담으로 처리해 여기
올리고는 마음이 무거웠었다.
그의 정성과 실력을 모두 감안할 때 농담이 들어갈 틈이 없었는데---,
싶었던 것이다.
물론 내 친구 부인의 요리 솜씨를 감탄한 뜻이기는 했지만---.
와인도 특별했지만 와인 따게는 더욱 특별했다.
만찬 다음날 아침은 아쉬운 작별의 날이었다.
내 친구가 떠나는 우리를 카메라에 담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였다.
차가 달리고 한참만에 컴바인이 추수를 하는 모습만 하릴없이 담아보았다.
인디언 캠프를 굳이 <티피>라고 부르던 쑤우 족 후예의 생각도 났다.
필라델피아 필리, 내 친구의 집 주소에는 L자가 연달아있다다.
인디언 발음에 L을 목구멍 깊숙히 부르짖어야 되는 소리가 있는 모양같다.
여기 도로 표지는 그건 아니고 <아이리프>인것 같다.
<유마>로 가는 도로 표지가 나와서 또 흠칫했다.
서부극에 유마라는 지명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헐리우드 키드'였다는 오해를 살는지 몰라도 하여간 유마는 서부극에
많이 나오는 지명으로 기억된다.
유마는 아리조나에 있는 마을이지만 콜로라도 강으로 여기와 맥락이
닿고있다.
이번 기회에 가보고 싶었는데 놓친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지만,
사우스 다코타 주에서 네브라스카로 넘어오면서 간발의 차이로
<운디드 니(Wounded Knee>를 놓친 것도 통한(痛恨) 비슷한 감정이었다.
(계속)
운디드 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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