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문득 서다>

원평재 2008. 8. 27. 08:13

 

"배성환이가 죽었습니다."

"삐꾸 삐꾸"하고 처절하게 부르짖는 손전화를 열어보니 기어코 문자 메시지에 통곡의 글이

떴다.

발신자는 작고한 배 화백과 중등학교 동기인 물리학과의 윤 교수였다.

오열처럼 여과없이 떠오른 문자가 그의 비통함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배 화백이 투병중이라는 비가(悲歌)는 작년이던가 들었지만 그 사이에 한번도 문병을 못한

일이 먼저 회한으로 와닿았다.

이제 내가 정년을 채우고 떠나려고 하는 대학에서 아직 한창 나이의 교수인 배 화백은 내

중등학교 16년 후배였다. "뺑뺑이" 동문으로는 마지막이라던가, 58회였다.

내가 대학 본부에서 일을 할 때 그는 미학 관련의 기발한 발전 계획을 갖고 올라와서 놀라움과

고민을 함께 던져주고는 결과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화실로 내려가곤 했지만 나는 별로 도움이

되지를 못하였다.

 

아, 우리는 서로 그런 사이로 대면하기 전 부터도 대학 내에 있는 중등학교 선후배 사이의

느슨한 모임이 있어서 가끔 술도 마시고 밥도 먹고 선후배간의 우의를 돈독히 한 적이

많았었다.

하지만 대학 사회도 무한 경쟁의 시대에 들어가면서 지연과 학연 보다는 공동 연구

프로젝트에 여러 전공의 교수들이 서로 필요에 따라 학제적(interdisciplinary)으로 매달리면서,

연구 중심으로 뭉치는 모임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하였고, 동문이라든지 지연이라든지

혹은 공동의 취향을 가진 교수로서의 만남은 급속히 시들어 버렸다.

바람직한 변화이면서도 아쉬운 물결이었다.

 

그런 물결이 몰아치기전에 경기도 광주 근처에 마련된 그의 화실겸 거처에 초대를 받아서

밤을 새우며 딜레탄트로서의 예술에 대한 대화를 두루 나누고, 또 헤어져서 돌아올 때에는

그가 작업한 판화를 덤으로 얻어서 보물처럼 간직해 온 추억은 행운이었다.

 

그의 화실 겸 거처인 황토방에서 반딧불이를 헤이며, 또 은하수를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보며

노래도 하고 와인도 마신 기억은 어쩌면 판화를 얻었던 일 보다도 더욱 다행한 사건에 다름이

아니었다.

황토방으로 만든 그의 화실에 가족의 체취가 아쉬웠어도 나의 관심사는 그의 천재성에만

더욱 탐닉했을 따름이었다.

 

그의 판화를 얻어오던 날, 은하수 까지 보여주며 멀쩡했던 하늘이 갑자기 뇌우를 퍼붓는

통에 소중하게 찍어 낸  "화조" 계통 판화의 극히 일부에 빗물이 새어 들어가서 번져버리자

내 상심은 컸었다.

훗날 내가 슬피 그 사실을 말하자 그는 새로 잘 만들어 찍은 <화조 연습>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표구까지 하여서 나에게 다시 전해 주는 세심함도 있었다.

나는 수년간 현관 쪽에 그 작품을 걸어놓고 즐기다가 얼마전에 무심코 바꾸어 다른 화가의

유화 추상화를 대면하며 지냈는데 그의 부음이 날라온 것이다.

그의 투병 사실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내 행동이 문득 미안하였고 무언가 들킨 기분이

자격지심으로 가슴에 뭉쳤다.

 

문자 메시지를 받고 다음날 문상을 갔다.

주말 행사가 많아서 저녁 시간을 골랐다.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가 있던 날의 저녁 시간이라 그런가 큰 병원의 장례 예식장은 다소

한산했고 '동거(고)동락'한 교수들도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젊은 문하생들만 야구도 개의치 않고 꾸준히 들어오고 있었다.

문득, 듬성 듬성 앉은 문상객들의 식사 자리에 영남대학교의 김호득 화백이 보였다.

내가 먼저 알은체를 하였다.

 

김 화백과 나는 여러해 전,  NYU에서 서로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맨해튼에서 만난

사이였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미국 동부 문인협회에서 가을 단풍맞이 문학 기행을 할

때에 함께 참여하면서 익히 알게된 사이였다.

<스페이스 월드> 이던가 큰 갤러리의 관장인 김옥기 여사가 김 화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마침 전수천 화백이 '앰 트랙'을 전세내어 흰 광목으로 객차의 외양을 두르고 행위예술을 

했을 때에 두분은 함께 하였던 인연이 있었다.

전화백의 행위예술을 지원한 문광부던가, 정부 부처에서는 아까운 돈을 이상한 행위에

썼다고 언론으로 부터 몰매를 맞고 있던 때였다.

 

아무튼 우리 모두는 의기 투합하였고 그해 가을은 행복했었다.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그의 거처와 화실에서 우리는 담소하였고 맨해튼의 낙서를 즐겼고

뉴저지의 한인 화랑들을 붉은 단풍이 드는 계절에 섭렵하였다.

그런데 브룩클린에서 김영길 화백을 만나고 연말의 전람회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에 나는

덜컥 누웠고 큰 수술을 감내하였다.

 

그 이후 헤어져서 귀국하고는 연락도 뜸하던 김호득 화백이 그 문상의 자리에 나와있지

않은가---.

작고한 배 화백 보다야 십년쯤 위인 그가 멀리 대구에서 올라와서 문상을 하고 있는 것은

그의 의리파적 기질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부분이었다.

두 사람은 예전에 한 십년 '동인 활동'을 했던 사이라고 한다.

오래전 이야기이고 세월은 흘렀으나 김 화백은 부음을 듣고 그냥 대구에 머물 숙가 없어서

당일치기로 올라왔다고 한다.

 

우리는 작고한 이에 대한 슬픈 추억을 나눈 다음에 서로에게 다가온 정년과 만년을 이야기

하였다.

내가 소장했던 4000권의 책을 작년에 모교 대학 도서관에 보내고 두어주쯤 전에는 나머지

800권 정도의 도서를 또 다시 보낸 다음에 손을 털었다고 하니 그는 찬사와 함께 다행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사실은 화가 교수들도 고민이 많다고 한다.

잘 나가는 화가들은 모르겠으나 심성이 수줍거나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중견들 까지도

이제 정년에 임하여 평생의 역작들을 안치시킬 공간을 찾지 못하여 고민이 크다는 것이다.

김 화백이야 물론 국립미술관을 위시하여 크고 작은 곳에서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많은 작가들이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고 한다.

 

또한 지금의 상태로는 별 볼일이 없는 작가들이라고 할지라도 세월이 지나면 또다른

'빈센트 반 고흐'가 되어서 불후의 역작을 이 세상에 남기는 사고를 치지말란 법이

있단말가~~~.

타히티의 '뽈 고갱'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소각이라는 만용을 부리기에는 화가들의

비전이 너무나 담대하여졌고 장기적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가족들의 짐과 덤만 무거워졌다---.

우리들도 무거운 대화의 짐에서 벗어날 궁리를 짜게 되었다.

 

그가 "아, 한권이 남았네요." 하면서 최근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었던 수묵 전시회의

팜플렛을 가방에서 꺼내어 내게 주었다.

소중하고 기쁜 마음으로 팜플렛을 들추니 문득, "문득 서다"라는 연작이 나왔다.

작품의 타이틀 뿐만 아니라 형상에서도 세속적 연상 작용을 불러오기도 하는 이 

수묵 작업을 보니 정말 문득 힘이 솟았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찾아 헤메는 것이 사실은 이 '문득 서다'와

연관한 모든 것들의 반복 작업 같은게 아닐까.

"서다"라는 우리 말의 뜻은 "발기"에서 부터 "정지"에까지 이르는 다층적 어의와

빛나는 스펙트럼을 품고서 시침 뚝따고 있는 언어의 외피가 아니던가---.

 

이번 작품전에서 그가 시도한 또하나의 이미지는 "급류"였다.

장마비가 내린 후에 인근 탄천 변에서 내가 잡아가둔 몇가지 사진들이 생각났다.

수묵화로 일필휘지한 급류의 형상이 내 못난 사진의 형상과 이중인화(superimposition)

되면서 내게는 무한한 공감과 위안의 순간을 맛보게 하였다.

예술의 근본 원리가 카타르시스 이론에 기초하든 억압가설에 가깝든 우리에게

주어진 이 감내하기 힘든 광대무변한 공간에서 공감과 위안의 순간을 형상화한

수묵화의 거장 김화백의 일필휘지에 드디어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던 저녁이었다. 

 

이날 우리 야구는 쿠바를 3:2로 울리고 금 메달을 땄다.

 

 

<문득 서다>

 

영남 대학교 교수 김호득 화백의 수묵화 

<서다>라는 말은 "발기"에서 "정지"까지를 나타내는 어의가 중첩된다.

 

  

 <급류>

 

급류의 주제를 김호득은 무아의 경지에서 일필휘지 하였다.

우계의 탄천 급류도 마음 속에서 병치되었다.

 

 

 

  

  

 

  

 

 

                                                                                <급류 연작>

 

  

 

  

                                                                <문득 누워>

 

 

   

 

    

  

 다음 세대에서 위안을 찾다---.

 

<오늘의 단상 끝입니다)

'기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금 똥통 기념식  (0) 2008.11.22
벤처 음악가, 금난새와 함께  (0) 2008.10.16
가장 길었던 날의 후기  (0) 2008.06.17
아침의 시청 앞 광장  (0) 2008.06.10
친구를 떠나보내고---.  (0) 2008.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