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소설) 활화산 아소(阿蘇) 풍경 (1회)

원평재 2008. 9. 21. 20:11

 

 그가 그 불편한 남녀를 의식하게 된 것은 아내 때문이었다.

"저 두 남녀 좀 보세요. 저렇게 다정할 수가 없는데 당신은 항상 이게 뭐죠?.

부끄러워요. 부부라는 관계가---."

평소 여러가지로 불만이 많은 그의 강퍅한 아내가 이번에는 어떤 부부 관광객이 너무나도

다정하게 다니는 것을 닷새 여행의 사흘이 지나고서야 발견해내고 그에게 새로운 불만꺼리를

찾았다는 듯이 강도 놓은 투정을 하기 시작하였다.

 

  

오이타-벳부-하우스텐보스-아소 활화산-구마모토 성-후쿠오카 등으로 연결된 단체 투어 여정이

올적 갈적을 빼면 사흘 동안에 너무나 촘촘하게 짜여져서 온천지대를 다니면서도 정작 온천물은

손바닥에 담아 손등에 끼얹기도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광복절 휴일을 낀 탓인지 인천 공항을 떠나며 일행이 된 여행 단체 인원은 마흔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결국 일행간에 인사도 못나누는 대규모 묻지마 여행단이 순식간에 형성된 셈이었다.

양력으로 8월 15일, 한국의 광복절은 일본에서는 추석 명절이었다.

이래 저래 관광지들은 난리가 난 꼴이었다.

팔월이라면 더위는 여기나 거기나 피치못할 팔자로 치더라도 비는 정상적인 상태라면 소나기

일진만 피하면 되련만 한국은 이제 시도 때도 없는 장마철이 새로 시작된 꼴이었고,

일본도 매화 꽃 지기 전후의 6월 말 우계(雨季), 바이우(梅雨)가 8월 한중간으로 옮겨 왔는지

닷새 여행은 내내 빗줄기만 바라보는 난장의 연속이 되었다.

 

 

 

"기후 변화가 장난이 아니네---."

그가 짜증을 그런 식으로 비워내었더니 아내가 또 성질을 부렸다.

"꼴난 해외여행을 인생 꼴찌로 하니 하늘이 우습게 여기는 거예요."

날씨가 그렇지 않아도 편협한 아내의 성질을 돋운 것은 그러니까 그에게는 불행중 불행이었다.

거기에 갑자기 나타나서 정상 수준을 넘어선 어떤 두 남녀의 사랑 무드와 포즈라니---,

여행은 최악의 경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급 공무원으로 정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해외 여행이란 짧은 한두번의 연수가

평생 전부였는데 오랜만에 광복절 휴일과 주말을 빌미로 만든 닷새간의 일본 여행은 처음부터

너무 촉박한 일정을 탓하는 아내의 투정으로 얼룩졌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 서서히 후반부로 접어들어서 그나마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그의 가슴에

새겨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정한 한쌍의 바퀴벌레가 등장하여서 바야흐로 마지막 초를 치고 있었다. 

"에이 바퀴벌레들!"

그가 거의 들릴지경으로 혀를 찼다.

마침 공항에서 면세로 디지틀 카메라를 하나 사서 재빨리 맨 앞자리를 지정좌석처럼 확보하여

하루 이틀은 어른 장난감 처럼 만지고 놀기 시작했는데 그다음날, 그러니까 여행 일자로는 사흘째

되던날 가이드가 느닷없이 첫번째 자리에 자기 보따리를 늘어놓고는 그에게는 그 다음 자리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가 무슨 항의를 하려는데 "거긴 원래 가이드 자리라니까요.", 라고 아내가 그에게 내쏘는

것이었다.

내우외환이라기 보다 외환내우였다.

분을 삭이고 있는 그의 앞 자리에 그 커플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 조차도 불분명한 한쌍의 그 다정한 커플이 나타나서 가이드의

정중한 안내를 받고 좌정을 하지 않는가.

가이드는 운전석 옆의 낮고 작은 의자를 펴서 천연덕스럽게 낮은 자리로 임하여 앉았다.

그가 무슨 항의를 할려는 찰라 앞의 남녀들은 뒷자리의 그들에게 깎듯이 목려를 보내고는

일본 명과 한케이스를 주는 것이 아닌가.

꽤 비싸게 보이는 명과도 명과려니와 그들의 싹싹한 태도가 이미 그의 전의를 상실케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그들의 눈빛에 무언가 신끼 같은 것이 서려있어서도 그는 섬�하여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선한 눈빛 속의 검은 눈동자는 사람을 찌르듯 기이한 총기를 발하다가 이내 먹물이 맹물에 풀리듯이

스물스물 풀어져 버리면서 사람을 그 속으로 빨아드리는듯, 신묘한 변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화난 얼굴에서 맥없이 웃는 낯으로 표정 변화를 다 하기도 전에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거의

입을 맞추는 정도로까지 얼굴을 맞대었다.

그의 아내가 노골적으로 더욱 심통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였는데 대상은 물론 다정한

그들이 아니라 그녀의 멋대가리 없는 남편이었다.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대략 이 때부터였다.

 

(계속)

 

 

 

 

 

  

 

 

 

 

 

My Love Is Like A Red, Red Rose - Oliver Schr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