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연재) 해금 산조 (6회중 3회)

원평재 2008. 10. 6. 05:42

해금 교실에 나가기 전날 밤,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잠이 오지않는 이유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다음날, 아침을 먹고 우리 부부는 모래내 그 학교로 일찍

찾아갔다.

나는 남편과 거의 같은 작업장으로 나가니까 남편은 이날도 나를 평소처럼 차에 태워서

집을 나섰다.

다만 중간 목적지가 새로 생겨서 나를 대학 문 앞에다 내려놓고 인근에 있는 아파트 재건축

공사장으로 갔다.

나도 오전 해금 교실을 마치면 오후부터는 다시 공사장에 반나절 일을 하러 가기로 하였다.

 

  대학은 신선함을 넘어서 신성하게 느껴졌고 일찍부터 교문을 들어서는 젊은 학생들은

우리네 공사장 일꾼들 하고는 벌써 종자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아마도 내가 너무 흥분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교문 입구부터 평생 교육원을 안내하는

화살표는 친절하게도 발길을 이끌었고 종내에는 여러 가지 이름의 강좌로 화살표가

갈라졌는데, 그 중에서도 '해금 교실'이라는 글자는 내 눈에 더욱 아름답고 선명하게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 그 화살표대로 당장 들어갈 형편은 아니었다.

우선 교육원 입구에서 등록 확인을 할 절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 복남인데요---."

내 목소리가 작았는지 사무원 아가씨는 내 이름을 다시 한번 물어보았고 "김복남"이라는

촌스럽고 애매한 이름이 다시 한번 그곳 대리석 바닥과 천정을 송구하게 울렸다.

복이 많고 남자처럼 씩씩하라고 가난하며 병약했던 내 아버지가 40년 전에 소망을 담아

주신 이름이 지금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신규세요?"

"네에? 뭐라구요?"

"처음 오셨죠?"

"아, 네에---."

"301호실로 가세요. 인터넷으로 등록이 잘 되어있군요."

그렇게 해서 당도한 301호실에는 나 말고도 몇 사람이 벌써 와 있었다.

젊은 여자, 할머니, 중년---,

나도 중년이니 우선 중간은 되는구나 싶어서 안심이 되었다.

의자 위에는 다시 한번 "김 복남"이라는 명찰이 이미 빛나고 있었고 부드러운 재질의

악기 케이스도 얹혀 있었다.

"해금이야!"

내 눈치가 나에게 속삭였다.

"케이스가 깨끗하지 않은 걸 보면 우선 빌려주는 거야."

눈치가 또 알려주어서 나는 케이스를 열고 해금을 만져보았다.

그림이나 TV에서는 보았지만 만지는 건 처음이었다.

 

내 눈치 동작에 고무되어서 요란한 옷을 입은 아주머니를 필두로 하여 모두들 케이스를

열기 시작하였다.

케이스 속에는 두 줄을 생명의 탯줄처럼 달고 있는 작은 악기가 앙징스럽게 누워있었다.

가끔 TV에서 본 바이얼린 같은 것이리라고 짐작을 했는데 막상 보니 그 크기는 공사장에서

가끔 보는 허리가 잘룩하고 왜소한 베트남 근로자 모양이랄까, 하여간 가녀린 악기가

너그러운 주인의 손을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자기소개를 통하여서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썩 잘 차려입은 삼송리에서 온 노처녀 타입의

여자는 방금 케이스를 열고 꺼낸 악기를 끼고 앉아서 무얼 어떻게 하는지 낑낑대고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우리 해금 신규 교실의 총무가 되었다.

나도 덩달아서 케이스를 열고 유심히 들여다보니 아닌 게 아니라 우리가 받은 해금 악기는

몸체와 활이 한데 엉겨 붙어 있었다. 몸통과 활, 두 부분이 한 세트로 된 악기라서 이리저리

다른 사람의 것과 잘못 섞이는 걸 막으려고 평소 묶어둔 결과이겠지만, 수강생들에게

나누어 줄 때에도 분리하지 않고 그냥 붙여놓은 것은 담당자들이 좀 불친절하거나 게으른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즈음 중소 규모의 건축회사 수준만 되어도 이런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학교라는 데가 사회에 비해서 제일 늦다더니---,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어쨌든 시간을 내서 해금을 배우러 온 사람이라면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듯이

어느새 자리를 다 채운 수강생들이 활과 몸통을 분리하려고 이리저리 애를 쓰기 시작

하였다.

워낙 조심성 많은 나는 그들을 잘 관찰하면서 분리 작업을 눈여겨 보아두고만 있었다.

이윽고 머리를 위로 부풀려 올린 구파발에서 온 부인이 일착으로 그 작업에 성공하였다.

삼송리 여자는 구파발 부인이 먼저 핀을 뽑아내는 것을 곁눈질로 보고나서는 역시 금방

따라서 분리를 한 다음, 한발 늦은 것이 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방면에 일가견이

있다는 듯이 케이스 속에서 송진을 찾아내어 활에다 문지르고 있었다.

 

그래, 나도 저 활과 송진을 본적이 있었지.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던가---.

전에 우리는 진관외리에 살았었다.

거기 초등학교에서 재능 개발 교육을 시킨다고 그림과 체능과 악기 등등의

특별 활동 수업을 크게 시작하였는데 그 때 딸아이는 바이얼린을 하고 싶다고 얼른 신청을

해서 학교에서 외상으로 준 악기까지 집으로 갖고 온 적이 있었다.

아이는 배우기도 전부터 그 서양 깽깽이를 잘도 만졌고 활에다가는 송진인지 무언지로 풀

먹이는 시늉도 하면서 즐거워 한 적이 있었다.

 

아이의 꿈은 어쩌다 며칠 후에야 알게 된 아빠가 혼구녁을 내면서 박살이 났다.

계집애가 무슨 그런 무당 같은 짓을 하느냐며 딸을 혼내주는 아빠의 말은 막무가내 주장에

다름 아니었는데 그걸 듣고 보며 서럽고 억울하긴 엄마인 내가 딸 보다도 더하였었다.

물론 당시의 우리 주제에 그런 돈 쓸 여유가 어디 있으며 있다하여도 절약을 하자는 남편의

깊은 속마음을 알 듯도 싶어서 결국 나도 딸을 말리고 말았다.

하여간 그런 정도로 깽깽이를 싫어하던 남편이 세월은 좀 흘렀지만 이제 와서는 나에게 무슨

은혜 베풀 일도 아닌데 이렇게 나오니 정작 나도 얼떨떨 할 따름이었다.

 

    해금 연주;  비묻은 바람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