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단편 연재) 해금 산조 (6회중 끝)

원평재 2008. 10. 9.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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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주하는 모양이 어째 우습네. 양 다리를 쩍 벌려서 양반 다리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연주할 때도 그렇소?"

남편이 내 양반 다리 사이를 힐끗 보며 웃었다.

"에이, 주책이셔. 하긴 오른쪽 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서 좀 우습죠?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무슨 가부좌 모양이라던가요. 하여간 여자들이 그러고 있으니

쩍이 아니고 짝이라고 하세요, 호호호. 하여간 그게 기본 몸 사위랍니다.

하지만 연주할 때는 의자에 앉아서 하는 경우도 꽤 되나 봐요.“

"여보, 지금 우리 어떻게 안 될까?"

"안되죠. 아이가 곧 올 텐데. 저는 다리 사이를 손수건이나 타월로 덮고 연주 하는데

용기가 있는 건지 다른 여자들은 정말 짝 벌리고 그냥 연주해요. 호호호."

"그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말 오래 참았던 이야기를 물어 봅시다. 당신은 그런데 왜

우리가 사랑을 할 때면 꿈쩍도 않고 그냥 누워만 있으면서 또 쥐죽은 듯 아무 소리도

내지를 않소?

친구들이나 일터의 남자들 이야기를 들으면 여자가 우는 소리도 내고해야 기분이

오르고 더욱 사랑하는 생각이 난다는데 말이오?"

"에이, 끔찍해요."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산다면 그게 정상이야. 난 물론 집이 작고 형편없어서

당신이 참는 줄로 알고,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뿐이지만 말이오.

그런데 요즘은 우리 사정도 좀 나아졌고 하니 말 타면 종마 잡히고 싶다고 말이오,

하하하.

하긴 이런 게딱지같이 작고 헐어빠진 연립 지하를 괜찮아졌다고 하는 내 마음도 염치가

없구려. 당신이 항상 가여워."

"미안해요. 사실은 우리가 사랑을 할 때 마다 제가 감정을 억지로 참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  엄마가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지요.

그 후 새 엄마가 들어왔는데 밤만 되면 무서웠어요. 밤일을 나누는데 어떻게나 비명을

지르던지, 새엄마가 말이에요.

무얼 찢는 듯한 골이 깊은 비명과 이어서 흐느낌 소리, 그게 꼭 무어랄까, 아, 그래요---,

그 때 제가 살던 시골 오일장 때마다 장터에서 해금, 그때는 앵금, 또는 아쟁이라고

했어요.

그 악기를 연주하고 잡화를 팔던 어떤 나이든 아저씨의 깽깽이 소리 같았어요.

특히 그 흐느낌 소리가 말예요.

저는 그래서 당신과 사랑을 나눌 때면 꼭 소리를 죽이고 입을 닫았지요.

그때 들은 그 소리가 생각도 하기 싫었어요.

물론 제가 감정을 억누르는 더 큰 이유는 우리 집이 허술해서 항상 우리 하나 밖에 없는

딸아이에게 신경이 쓰인 탓이 컸지만요---."

"미안하구려. 내가 그런 당신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물론 우리 아그 새끼 때문

이라는 건 짐작했지만. 큰 집이 아니라 제대로만 되었어도 사실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오.

자 우리 즐거운 이야기로 말을 바꿉시다. 아까 무슨 정간보라고 했던가, 그 악보에서

황황태태 하니깐 나는 시원한 황태국물 생각만 나데, 하하하."

"호호호, 내일 아침에 끓여 드릴게요."

남편이 웃자 나도 따라서 시원하게 웃었다.

"여보, 그런데 참, 그런 과거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이제는 그 아쟁 소리를 들어도

괜찮아졌소? 진저리치지 않고?"

 

"네, 그럼요. 황이라는 음정에 맞추면 좀 쳐지기는 해도 그렇게 비명 소리도 아니고,

또 이제 하나 높여서 중이라는 음정에 맞추어 높여 봐도 아주 소리가 아름답고 천연덕

스러워요.

현이라는 게 원래 좀 처량한 데가 있지만 그것도 곡에 따라 다르고 또 연주자의

마음에 따라서도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요. 더욱이 이제 연말이면 어찌되었건 연주회도

하자고 몇 사람이 성화를 대니까 분위기가 아주 떴어요.

저는 이제 해금이 주는 스트레스로 부터 해방이 된듯해요.

그 어둠의 과거로부터 빠져나온 것 같아요. 그게 모두 당신 덕분이지요.

그런데 여보, 당신은 왜 그렇게 우리 딸아이에게 바이얼린도 못하게 하더니 제겐

먼저 해금을 배우라고 했어요?"

 

"나에게도 말 못할 과거지사가 있다오. 말하기 부끄러운---, 아니 이제 당신에게는

말해 볼게.

내 고향이 원래 저 소백산과 노령산맥 골짜기, 무진장이라는 데 아니오.

무주, 진양, 장수 마을이 지금은 아름다운 곳으로 탈바꿈했지만 내가 어릴 때만해도

가난하기 그지없었지.

그 세 동네의 5일장터를 돌아다니며 앵금을 켜고 동냥을 얻은 당달봉사, 장님이 내

아버지였다오.

어머니는 언제 어디에서 헤어졌는지 내 기억에 없고 아버지도 자기 새끼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실 리 없었지요.

이 양반은 5일장터의 몫 좋은 곳에 슬그머니 다가가서는 아쟁을 꺼내놓고 "앵금아~"

이렇게 당신의 목소리로 먼저 불러 재치지요.

그리고는 활로 앵금 줄을 쓱 그으면 '으응~'하고 대답이 나온단 말이오.

사람들이 와아 웃으며 '앵금이 새끼도 노래한곡 해라' 이랬다오.

나는 죽어도 노래를 하지 않았고 그러면 아비는 어림짐작으로 활대를 들어 자기

새끼를 후려쳤어요. 새끼는 피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맞아주며 앙~!하고 울었고 그게

또 앵금 소리 같다고 사람들이 다시 와아, 웃고---.

그렇게 해서 손님이 꾀면 몫 좋은 곳에 좌판을 깔아놓았던 장사치들이 그제야 울 아비,

장님을 내 쫓아요.

나는 눈이 먼 그 양반을 끌고 또 시장 바닥 다른 데로 쫓겨 가서 다시 앵금 판을

벌이고---.

나이가 조금 들자 나는 서울로 도망을 왔다오. 그리고 별별 고생을 다해가며 야간

공고까지 다니고---.

앵금 소리만 나오면 나는 치를 떨며 살았다오.

우리 딸아그 새끼가 바이얼린 배운다고 했을 때 내가 돌아버린 것도 그런 때문

이었고---.

그런데 우리가 그나마 조금 먹고 살게 되니까 내가 버리고 도망 온 당달봉사 장님,

울 아비 생각이 나서 미칠 것만 같더란 말이오.

더구나 얼마 전에 라디오에서 들으니까 그 깽깽이, 앵금, 아쟁이라고 하는 게

해금이라는 어엿한 이름이 있고 궁중 음악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무슨 정악인가

뭔가, 하여간 결코 무시할 위치가 아니고 그 연주가들이 참으로 위대한 기술자라던가

뭐라더라---.

그런 소리를 듣자 눈물이 팍 쏟아집디다.

중산층 부인들이 그걸 배우러 다니는 열풍이 불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오자 나는

당신이 꼭 그걸 해주기 바랐다오. 이제는 당신의 그 연습하는 모습과 소리를 들으면서

아버지에게 한없는 그리움을 갖고 속죄하는 느낌도 들고---."

 

"여보, 난 아직 형편없어요. 하지만 정말 잘 할게요. 자신 있어요."

"그럼, 당신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잖아."

"그런데 당신은 왜 나를 사랑할 때면 꼭 밖에다가 사정을 해요? 처음에는 우리가 큰 아이

하나만으로도 살기가 벅차서 그런 줄 이해를 했는데 그 후 조금 생활이 나아져서 하나쯤

더 갖자고 해도 당신은 들은 척도 않았어요.

저는 그게 당신의 사랑이 부족한 건가 섭섭할 때도 참 많았답니다."

"내가 오늘 다 고백하리다. 내 아버지가 당달봉사, 눈 뜬 장님이라고 했잖소. 그게 내

마음에 항상 걸렸다오.

혹시라도 내 새끼에게서 장님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그게 얼마나 불안한지 당신은 모를

거야. 오죽하면 당신이 공사장에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 놈, 경리과장 놈이 그

작업장에 나타나서 당신과 시비를 붙었잖아.

당신이 울면서 그 유부남을 때리고 맞고 그리고 곧 까무라쳤지. 그럴 때 내가 당신 앞을

가로 막고서 그 녀석을 흠씬 쥐어 패 쫓아 보냈지.

내가 자취를 하던 방으로 당신을 데려와 눕히고 동네 약사 아주머니를 불러서 영양제

주사를 놓고---. 그리고 며칠 후에 우린 곧 몸을 섞었잖소.

우리 큰 딸 아그새끼가 당신 몸에 들어선 것도 바로 그때였고---.

죄 받을 소리 같지만 난 차라리 그때 우리 딸아그가 그 경리과장의 씨앗이라면 싶었다오.

그러면 혹시라도 장님이 나올 걱정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뭐라구요? 이런 바보 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여기고 내가 지금껏 살아왔다니, 우리 당장

갈라섭시다.

내 처녀를 당신께 받쳐서 첫날 밤 피까지 보고서도 이제껏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내가 몸을 던져 그를 때리며 엉엉 울었다.

 

"에이, 울 아버지 바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갑자기 연립주택 반 지하 방의 낡은 문을 부수듯 우당탕하며 딸아이가 울면서

뛰어들었다.

"해금 연주와 엄마 아빠 대화가 좋아서 밖에서 듣고만 있었는데, 아빠 너무하세요.

제가 간호 대학을 갈려고 하잖아요.

생물과목이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구요.

우리나라가 못 살던 시절과, 또 아프리카 흑인 나라에서는 지금도 트라코마, 눈병이

유행이래요.

모두 방역과 위생이 불량한 탓이었지요.

그 눈병은 시기를 놓치면 장님을 만드는 후진국 병이고 그러다 보니 자식에게도

눈병이 옮겨서 2대, 3대 장님, 당달봉사라는게 생길 수도 있대요.

그게 무슨 유전병이라고 그래요, 엉엉엉."

아이가 몸부림을 쳤다.

 

"그래, 미안하다. 넌 내 새끼가 틀림없어. 내가 얼마나 널 사랑하니. 그래도 내 어린

시절의 그 악몽이 내 생각을 그렇게 만들어 왔단다. 무식한 아비를 용서 하거라."

그날 저녁 그 허름하고 낡은 반지하 방에서 우리 세 가족은 목을 놓아 울었다.

얼마가 지나서 복 받힌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무렵, 내가 해금을 껴안고 활대를

손으로 잡았다.

"우리 노래 하나 불러요. 이제는 황으로 시작하는 낮은 음이 아니라 진짜 해금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중'으로 시작할게.

내가 먼저 정간보에 적힌 음정으로 불러 볼 테니 천천히 따라서 가사로 불러 봐요."

 

나는 정간보를 펴놓고 먼저 조용히 음계로 노래를 부르며 해금의 활대를 움직였다.

황태태ㅁ

태태황ㅁ

태ㅁ중ㅁ

태ㅁ황ㅁ

태ㅁ중ㅁ

태ㅁ황ㅁ

황태태ㅁ

태태황ㅁ

태태황황

황태황ㅁ

태태중ㅁ

태태황황

황태태ㅁ

태태황ㅁ

태ㅁ중ㅁ

태ㅁ황ㅁ

태ㅁ중ㅁ

태태황ㅁ

 

내 계명을 듣던 가족들은 얼른 무슨 곡인지를 알아차리고 가사를 붙여서

조용히 노래를 합창하였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노래를 불렀다.

눈물은 그렇게 두는 게 훨씬 마음에 편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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