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주말에 길일이 몰려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시피 내가 잠시 들어와 있는 이
초가을 토요일에도 그 길일은 어김없이 중첩되어 있었다.
해밀튼 호텔의 예식장에 온 것도 이런 길일에 잡힌 내 축마고우의 딸 결혼식을 동기회
사무실에서 보고 알았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얼마만인가.
이 친구는 그저 중등학교 동창생 명부에서만 관계를 맺은 그런 친구가 아니었다.
지방 중소도시의 명문 중등학교를 다닌 나와 이 친구는 모두 가난한 집안 출신
이었다.
사는 집이 가난한 동네 안에서도 서로 가까워 우리는 부모 형제 자매들을 마치 한
집안 식구들인양 공유하며 자랐다.
대학으로 진학하면서 우리의 걷는 길은 많이 달라졌다.
그는 서울 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을 마치더니
수학 교사를 조금 하다가 컴퓨터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무슨 큰 회사의 연구
개발부로 갔다고 하였다.
나는 해양대학에 들어가서 졸업과 동시에 원양 어선을 탔다.
모두 돈없는 집안 아이들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배를 타고 돌아다닌 나는 바람이 들어 적당한 때에 배에서 내려 본사 근무를
좀 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한 것이다.
"아니, 살아있었구나. 이게 얼마만이야?"
친구들의 성화에 술잔을 기우리고 있는데 그 사이 식은 끝이나고 혼주인 내
죽마고우 김정식이 내 등뒤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얼마나 반가웠으면 혼주의 체면이고 뭐고 그는 막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옆에 함께한 부인이 조금 어색하고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물끄럼히 쳐다보았다.
우리 둘은 얼싸안았다.
동기회 사무실이 아니더라면 우리는 연락도 힘들었을 것이다.
"언제 왔다 언제가니?"
"나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나."
나는 짧게 대답하였다.
"나하고 따로 시간도 못내겠네. 왜 그렇게 했어?"
"여기도 못 올뻔했어. 이제 자주 나올께. 그런데 제수씨는 늙지도 않고 마냥
예쁘기만 하군요."
내가 옆에 서있는 친구의 부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덕담을 던졌다.
친구 부인은 아직도 아름다웠으나 얼굴에 주름이 많이가고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옆에서 내 옆구리를 찔렀다.
"모르는구나. 마누라는 지난 봄에 죽었어. 이 분은 내 형수님이셔."
"동서 대신에 내가 따라다녀요. 조금만 더 견뎠어도 좋은 날 보고 갔을텐데---.
오랜만이네요. 내가 시집와서 새댁일 때 이 시동생한테 자주 놀러왔지요?"
그랬구나---.
우리 모두가 형수님이라고 부르며 애도 많이 먹인 그 새댁이 이렇게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어쩐지 낯이 익다 싶어서 나이가 좀 많아보여도 친구의 부인이겠거니 인사를
건넸는데, 사연이 그러하였다.
"아이구, 큰 실례를 했습니다. 이제 뵈니 정말 형수님이시군요. 낯이 익어서 무조건
지레짐작하고 제수씨인줄로---. 어쨌든 그런 변이 있었네요.
이 친구야, 왜 그럴때 연락하지 않았어.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심하게 살았네---."
"무슨 좋은 일이라고---. 하여간 이제 자주 연락하자."
신랑 신부와 양가의 혼주들이 떠나간 자리에 자그마한 중년 여인이 서있었다.
"오빠!"
그녀가 나를 불렀다.
"순옥이구나!"
방금 그 친구의 여동생, 순옥이었다.
그의 여러 형제자매 중에서도 순옥이가 우리 또래와는 제일 친했다.
우리는 한 수돗가의 물을 먹고 자랐다.
그 때는 동네에 수도가 하나만 있었다.
"와아, 순옥이구나. 우리도 여기있다. 미국 촌사람만 너무 찾지 말아."
주위에 있던 내 친구 두엇이 그녀의 손을 잡고 탄성을 올렸다.
"내가 제일 친했지, 누이야!"
육사를 갔다가 일찍 제대하여 무슨 사업인가를 한다는 박 중령이 특히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야, 나하고 더 친했어."
은행에 있다가 명퇴로 짤렸다는 친구가 또 나섰다.
'오빠들이 모두 다 잘 해 주었지요, 뭐."
그녀가 시선은 내게 고정한채 조용히 소란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렇게 친했다면서 왜 결혼은 다른 사람하고 했어? 나는 배를 타는 바람에
바깥으로 돌았지만."
내 목소리가 그들의 말 문을 힘주어 막았다.
그들이 대꾸에 궁색하자 그녀가 조용히 또 설명을 했다.
"제가 오빠들하고 나이가 대략 네살 차이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오빠들은 항상
저에게 학교 등급이 하나 이상 높은 어른들로만 보였지요.
그리고 제가 교대 나와 초등학교 교사 할 때에는 모두 군대에 가 계셨거나
사회 초년병으로 고생이 많아서 결혼은 꿈도 못 꾸실 때였고요. 호호호."
"아니 무슨 선생님을 그렇게 일찍했을까?"
박 중령이 꼬치꼬치 관심을 보였다.
"그때는 교대가 2년제였잖아요."
"그랬군---. 그래 신랑은 뭘 하시고?"
"신랑이라니요. 구랑이죠. 오빠들 나이 또래인데. 저 처럼 교대 나와서 선생
하다가 지금은 교감을 하는데 퇴직 날도 받아놓았어요."
그녀가 크지 않은 눈을 더욱 작게하여 미소지으며 지난 일을 이야기하였다.
"어머님은?"
"친정 어머니요?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다 조금
일찍 돌아가셨어요. 큰 오빠도 돌아가셨고. 큰 오빠는 교통 사고였어요."
"저런! 좋은 분이었는데---. 그리고 머리도 좋으셨고---. 사실 말이지 순옥이
머리는 또 얼마나 좋았어. 아깝다 아까워. 한국의 마담 큐리가 될줄 알았는데."
"왜요, 학교 선생님이 어때서? 난 하도 어렵게 커서 학교 선생님 하면서 겨우
행복을 찾았어요."
"아이들은? 이제 대학을 다 졸업한 나이이겠지?"
계속 박중령이었다.
"어이, 무슨 호구조사 나왔어? 술이나 먹자."
누가 소리를 지르고 술잔이 돌고 낮 행사가 저녁으로 연결 되려는 즈음, 사람들은
겨우 일어났다.
누가 미국 촌사람 데리고 2차가자고 하는 것을 내가 슬쩍 빠져나왔다.
초가을 오후 날씨가 아직은 후덥했다.
나는 지하철 쪽으로 빠지는 동기들을 피하여 오랜만에 이태원 길을 걸어보기로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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