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고다닌 투어

퀸즈로드를 아시능교?

원평재 2009. 4. 12. 11:24

 

 KTX로 달려간 고향, "대구"의 봄빛이 화사하다.

 

 "고향"이란 모름지기 두고 떠나왔을 때에 생기는 곳이련가.

그런 관점에서 누가 내 고향을 물으면 조금 혼란스럽다.

 

초등학교를 나올 때까지 살다가 떠났던 경북 "구미"가 최초의 고향이라면

그 다음으로는

중등학교에 이어 고등교육까지를 마친 "대구"가 대를 금방 잇는다.

 

서울과 신도시는 지금도 발을 붙여 살고 있으니

그렇다면 제2, 제3의 고향같으면서도 아직 고향

이라고는 부를 수 없단 말인가.

 

한편 ROTC 장교로 2년간 정을 붙인 춘천이나 짧게 지낸 미시간의 이스트 랜싱,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의 허드슨 강변은 또 무어라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그렇지, 그곳들은 모두 객지이구나 싶다.

 

한 학기 동안 객원교수로 지냈던 두만강 건너 "옌지(延吉)"도

깊은 정이 아직도 가슴 저리게 느껴지지만 역시 객지에 다름아니구나.

 

결국 고향을 하나만 대라고 누가 말한다면

내 인식의 체계가 옹골차게 형성되던 기간에

살고 부대꼈던 달구벌, "대구"라고 답변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곳은 또한 평생을 통하여서 숙명적으로 함께 지내는 가장 많은 친구들을

현존케 해준 모태이기도 하다.

 

그런 대구 땅이지만 사실 오래토록 자주 찾지는 못하였다.

일년에 한두번 공사간에 들릴 때에도 후다닥 하루 일정으로 몰아서 허겁지겁 일을 보고

오느라고 고향 땅이 그동안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전체적인 모습은 요량도 하지 못하고 다녔다.

 

바쁜척 핑계를 대며 고향을 푸근하게 찾지 못한 내 모양새에는 고향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젊은날의 서운함이 내재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야 그게 잘된 일이었던지 어떻게 되었든 말이다.

가끔 서울에 올라왔다 내게 들리는 고향 친구들이 이 살인적인 서울 생활을

지탱하는 모습이 놀랍다고 덕담을 주고도 가지만

나는 사실 고향에서 거뜬히 버티며 생애를 유지해온 친구들이

오히려 외경스럽다.

 

문학작품에서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어떤 도시에 대한 근거없는,

혹은 근거있는 편견들을 읽을 수 있다.

"윌렴 서머셋 모옴"은 폴랜드의 수도 "바르샤바"가 온통 황색으로 되어있으리라는

근거없는 편견이 있었다고 자전적 산문 "서밍 업"에서 술회하였다.

또 "조셉 콘래드"는 벨지엄의 수도 "브럿셀"의 색갈이 온통 검은 색으로 보였다고

자신의 소설 "어둠의 속"에서 이번에는 근거있게 묘사하였다.

그 도시의 밑바탕이라는 것이 모두 아프리카 식민지를 수탈하여 형성된 자산으로

이룩된 전말을 예리한 작가의 눈은 통찰하였기 때문이었다.

 

나의 인식 속에서 고향 대구는 어떤 색갈일까.

대구는 나에게  우선 잿빛으로 인각이 된다.

아마도 어려웠던 청춘시절에 느꼈던 가슴 답답한 나의, 그리고 내 이웃의

전도(前途)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때로 고향 대구는 백열을 발하는 하얀 색갈로 자신을 조명시키며

나에게 닥아온다.

아마도 엄부(嚴父)께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대구 고향에서 병환으로 보내실 때에

내 인색한 문병이 저 대구의 뜨거운 여름날에 집중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 기억은 깊은 슬픔, 그리고 아픔일 수 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대구는 항상 내게 힘들고 넉넉지 못한 추억의 장소이다.

그런 고향을 갑자기 찾을 일이 생겼다.  

외우가 모친상을 당하여 상문을 할 계제가 생긴 것이다.

미수를 넘기신 어른이 훌륭한 자제들을 두고 떠나가시니 상제들의 마음이야 어떠하였건

세상적 평가로는 호상이 아닐수 없다,

맏아들인 내 친구의 바로 아래 계씨가 대구 의료원의 원장을 하며 마지막 기간 동안에는

자당을 그곳 노인 병동에서 모신 끝이었으니 왠만한 집안에서는 생각도 못할 호상이기만 하다.

 

 

많은 동기들이 서울과 신도시에서 상문을 하러 이런 저런 교통편으로 내려가는 중에

나는 내 시간에 맞게 KTX를 이용하였다.

 

동대구 역 안내소에서 대구 의료원을 물으니 아가씨가 컴퓨터를 쳐보고

시내버스를 타고가다가 "퀸즈로드"에서 내리면 되리라고 한다.

감수성 강하게 보이는 아가씨가 "쿠윈즈 로우드"로 풀어쓸 수 있는

발음을 재빨리 모아서 표현해 내는 것이 본토 발음에 다름 아니었다.

 

고향 땅에서 매우 정확한 발음으로 "퀸즈로드"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어느 외국에 내팽개쳐저서

미아가 된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강제로 지정받은 것 같은 421번 버스를 타고 불안하게 밖을 내다보는데

그래도 금방 "칠성 마당"이라는 거리 이름이 나오니 위안이 된다.

"이 뻐스가 쿠인즈 로우드로 가능교?"

나도 본토 발음과 사투리를 섞어서 기사에게 써보았다.

 

그 어법에는 격변한 현실을 오랜만에 써보는 고향 사투리로 눅여보자는

간곡한 희망과 얕은 교활이 섞여있었다.

"아직 멀었심다, 가마이 앉아있으이소."

그가 무슨 터무니 없는 질문을 진도에 맞지않게 성급하게 하느냐는 식으로

퉁명스레 답하였다.

 

"그래 걱정을 말자"

신천동, 신암동 물길 비슷한 것도 조금 전 눈에 띄었으니

무슨 걱정이랴, 내 고향인데---.

마음은 타임 머신을 타고 옛날의 아스라한 기억과

벌써 굳은 포옹을 한다.

이래서 고향이 좋은 모양이다.

"고향이 좋아, 타향은 싫어"라고 하던 직설적 가사의 가요가

한때 우리의 가슴을 훑어내었던 기반이

모두 다 이런 감성을 깔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평리동"이니 "다방"이니 하는 추억어린 어휘들이 등장하자

이제는 긴장도 풀려서 졸음까지 오려는 행복한 순간에 버스 기사가 다시

퉁명하게 질문을 한다.

 

"어데 가니껴?"

아니 이양반이 안동 끈끈이 출신인가. 안동 말을 하는구나---.

"대구 의료원입니다."

내가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아, 그라모 퀸즈로드까지 가지 마이소.

내가 알려줄낀게 그 앞서 내려서 402번으로 갈아타이소.

두 정거장 더가모 병원인기라요."

이 양반이 무뚝뚝한 사투리는 다 구사하였으나

고향 특유의 퉁명한 친절에는 감격이 왔다.

 

 

 

 서대구로 통칭되는 달서구의 일반적 모습은 예로부터 이렇게 가파르고 좁은 길이

거미줄 처럼 산재한 형식이었다.

하지만 새로 도시가 커나가면서 넓고 곧은 길이 뻗어나가고 땅부자 신화도 태어났다.

형제간에 의리가 상한 내 친구들의 전설도 이 동네에서 흔히 나왔다.

 

"달고 나왔심더"

"째고 나왔어예"

그런 우스게의 본산이기도 하다.

달서구 국회의원은 마침 내 친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난 총선 때는 고생도 많이 하였다.

 

 

평리동은 신개발지라서 이렇게 넓은 길을 확보할 수 있었나 보다.

이 큰길을 한참 지나고 나서 기사님의 친절로 퀸즈 로드 까지 가지는 않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는 등, 마침내 대구 의료원에 도달하였다.

 

 

 

대구 의료원은 온통 조화로 뒤덥혀서 고인의 자손들이 번창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상 더 이상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상문만 서두른 다음,

미리 와있던 대구 동기들과 동대구 쪽에 있는 동기회 사무실로 가서

고향 친구들을 여럿 만났다.

대구 동기회장과는 몇가지 현안들도 논의를 하였다.

 

 

 

  

 

 막걸리 주전자와 사발을 놓고 앉으니 반세기 전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안동 대학에서 정년 퇴임한 대구 회장과는 "경연 포럼" 시절 부터 교유가 밀접하였다.

 

 

 이제 돌아가야할 시간이었다.

외우의 전송을 동대구 역까지 받으며 KTX 앞에서 한 컷 자화상을 찍었다.

 

 

 기차는 금방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그리운 고향이 따로없었다.

 

  

 

  

 

  

 

 

 

 

 

퀸즈로드를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처럼 거리의 이름으로 생각한 건 착각이었던 것같다.

혹시 안동을 방문했던 영국 여왕께서 왕복 길에 들렀던 길일지도 모른다는

선입견이 식자우환으로 작용했던가 싶다. 

 

나중에 조회를 해보니 퀸즈로드는 여왕폐하가 밟은 역사적 거리가 아니라

매우 큰 규모의 아울렛 이름인 모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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