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지던 날에 삼척 대금굴과 환선굴에 다녀왔다.
빗속에 동굴로 들어간 꼴이었다.
워낙은 어버이날에 정해진 입굴(入窟) 여정이었는데,
하루 전날 그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여행사의 일방적 통보가 왔다.
관광객 모객에 실패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어버이날이면 여행지가 미어터질줄 알았는데---.
집집마다 자식들의 대접이 이렇게 소홀한가?!"
근거없는 근거로 역정을 내보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내 역정이 틀렸다.
어버이날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저녁 한끼라도 함께하는 날이 아니겠는가?
이 소중한 날에 무슨 강원도 동굴이란 말인가?
전에 뉴욕의 아들 집에 있다가 아마존 강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마중을 나와있는 나이든 한인 가이드에게 좀 뻐기려고 목에 힘을 주고 있는데
백전노장의 이 영감이 선수를 친다.
영감 가이드 왈, "주말을 맞아서 번거로우니까 영리한 며느리가 여행비를 투자하여
시부모님을 이 곳 오지로 유배 보냈구려?!"
그런게 아니라고 해도 그 영감쟁이는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본의 아니게 고려장 당한 노인네 꼴로 아마존 강을 오르락
내리락 한 적이 있다.
대금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이 사진은 이미지 컷으로 따온 사진이고 아래는 가는 길 버스안에서
보여주는 대금굴 안내 영화를 찍은 것이다.
종유석이 중력의 법칙을 어기고 옆으로 커가는 모양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대금굴 들어가기 직전에 찍은 것이다.
하여간 날씨 좋았던 어버이 날을 놓치고 여행사에서 순연한 날짜에 맞추어
나오니 전날부터 봄비가 주루룩, 주루룩 내리는 우중이었다.
비내리는 여정의 맛을 모르는 닫힌 마음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여행사의
횡포에 당한 느낌이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에 한번 "테마여행"이라는 번거로운 관광에 속다싶이 한 경험으로 이번에는
그런 곳에는 들리지 않는 "일반 여행"을 택하였는데 일방적으로 취소와
연기를 해버린 것이 아닌가---.
여기에 더하여 교활하게 보이는 백전 노장의 버스 기사는 안내양도 동반하지 않고
하루 일정에서 주요 부분들을 잘라먹기 하려는게 아닌가.
우선 출발시간부터 예정에 없던 몇사람이 더 온다고 기다리며 한시간을 늦잡치더니
겨우 달려가기 시작하여 얼마되지 않은 지점에서 환선굴을 가보지 못한사람
손을 들라는거다.
스무 네명 중에 서너명이 손을 드니, "그럼 환선굴은 다들 가보셨고 힘드는 코스니까
생략하면서 동해안의 명소 몇군데를 서비스로 더 보여주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원래 동해안의 추암 촛대바위 등은 서비스가 아니라, 광고에 이미 나와있는 코스이다.
"택도 없는 소리하는구나!"
내 마음이 고동쳤다.
내가 원래 고수동굴 탐사 이래 동굴 탐방을 좀 더 해서 자료를 모으려는데
지척간인 환선굴을 어물쩡 빼먹으려하다니.
내가 원칙대로 하라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데, 이 "사기성 관광 버스 기사"는
일정 내내 자기 고집을 관철하려고 관광객들을 분열시키는 작전을 폈다.
내가 광고 전단을 무심코라도 갖고 가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당할뻔 하였다.
자, 이런 심란한 심산으로 비오는 날의 여정을 달려가니 마음이 편할리 없다.
그렇다고 "황금같은 단비"를 원망할 수도 없다.
내 마음이 편치 않으니 다른 차들도 울적한지 속력을 차차 줄여서 서행을 한다.
과연!
먼 앞길에서 순찰차의 경방등이 정신없이 번쩍거리는 가운데에 큰 사고를
처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가까스로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서 얼마를 달려가니 또 차가 막힌다.
비슷한 사고로 차량이 서행하기를 다시 한차례 더하게 되었고 기사는 그런 지체시간을
즐기는듯도 하였다.
천재지변, 불가항력이 "대충 보는 관광"의 핑계와 도구로 이용 될 참이었다.
하지만 이후의 일정을 "사기성 기사"가 제 마음대로 하게 둘 내가 아니었다.
아, 중국에서는 "기사"를 "사기"라고 호칭한다는 생각도 났다.
하여간 아주머니 계꾼들 두 팀으로 주력을 이룬 이날 관광객들은
"우리 지금 어디가지?"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그저 "집나오니 존네"하는 분위기여서
사기, 아니 기사의 횡포에 조용히 맞서는 나의 전우나 후원자이기는 아예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점심을 먹고가는 밥집 근처를 지붕에 올라가서 찍었다.
세가지 형태의 집과 지붕이 세월의 추이를 받아들이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강원도 감자바위의 근본이 근처 밭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직 감자꽃이 나오지는 않았다.
밥집 근처 가게에 있는 저 거대한 계란 모양이 무엇일까?
땡벌의 집이라고 한다.
하여간 고난과 역경 속에 도달한 "대금굴"은 그 이름에 걸맞게 과연 "대금(大金)" 같은 존재였다.
5억만년 전에 생성된 굴에 몇십만년 전부터 종유석이 맺어지기 시작하여서 지금도 생성을
계속하는 "활굴"이어서 대체로 죽은 굴이 된 석회암 동굴 중에서는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가
선두를 달리는 우리의 보배였다.
그런 사정을 알고나니 사실 이런 굴에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죄스러울 지경이었다.
다만 사전 신청 제도로 관람객을 제한하고 동굴 안에서의 사진 촬영을 금하는등,
여러가지 예방 조치를 취하고 있는 모습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금굴로 들어가는 모노레일 역의 입구에는 이와같은 조형물과 야외 생활 박물관 같은
구조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수선화, 혹은 붗꽃이라고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들어가서 다시 걸어다니며 한시간여에 걸친 이날 대금굴 관람은
놀람과 경탄의 연속이었다.
그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백미는 종유석이 옆으로 발달해 나간 불가사의한 모양이었다.
또한 굴 속에 폭포와 계류가 형성되어있는 사실도 놀라운 일이었으며 넉넉한 물길을 헤쳐나가며
보는 아름다운 장관들도 감동 그 자체였다.
물길만 따지자면 뉴질랜드의 로토루아 지하동굴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고
동굴 속의 폭포라면 3년전에 다녀온 켄터키 주의 차타누가에 있는 "루비 폭포"의 장관을
빼놓을 수는 없겠는데, 대금굴은 이 두가지 특징을 모두 겸전하고 있다할 것이다.
차타누가의 루비폭포
감동의 대금굴 관람을 마치고 나와서 환선굴을 향하는 다섯명의 관광객들은 일이 우습게 되느라고
일단 무거운 발걸음이었지만 어쨌든 뒤에서 기다리는 눈초리를 의식하여 다시 걸음의 속도를
빨리하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선굴을 빼먹었다가는 정말 큰일날 뻔 하였다.
두고두고 후회하고 결국은 어려운 걸음을 다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선 동굴의 규모가 대금굴의 몇배에 달했다.
다만 일찍 개발된 탓인가, 큰 규모에 비해서 새로 종유석이나 석순이 자라는 기미는
보이지 않아서 안타까웠으나 규모의 방대함으로도 사람들을 경이 속에 빠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환선굴 가는 길은 가파른 등산길이었다.
중간 중간에 보이는 재미있고 기이한 광경들만 없었더라면 참으로 고행길이었다고도 할수 있었겠다.
흰 작약꽃이 산길가에 무성하였다.
환선굴은 사진 찍는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활굴"의 상태는 아닌듯, 크기만 하였지 종유석과 석순이 자라는 아기자기한 생명의 메아리는
안타깝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세상에 없다던가---.
종유석의 모양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도 하겠다.
아래 모양의 앞에서는 자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고도 하였다.
내려오는 도중에 본 배낭 여행족의 잠자리가 이채로웠다.
한 여학생이 짐을 챙겨나오고 있었다.
너와집과 꿀벌 통을 끝으로 이번 여행기 마칩니다.
참고사항
대금굴은 천연기념물 제 178호 대이리 동굴지대 내에 위치한 동굴로서, 인근에 있는 환선굴, 관음굴과
비슷한 시기, 약 5억 3천만년 전 캠부리아기에서 오르도비스기에 이르는 하부 고생대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당시 열대 심해의 바다속에 퇴적된 산호초 등의 지형이 지각변동으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다.
동굴은 오랜세월 침식이 되어 형성되었으며, 가물 때에도 물길이 끊이지 않는 점에 착안하여 인위적으로 발굴작업에 의하여
2003.2.25에 처음 발견하기에 이르렀으며, 2006년 6월 20일 명칭을'대금굴(大金窟)'로 결정하였고 ,
7여년의 긴 시간 동안 준비하여 2007.6.5 일반에 개방하였다.
* 동굴내부 형태 및 지역별 특성
- 140m의 수로형 인공통로 구성
- 모노레일 진출입로
- 높이 8m의 거대폭포 형성
- 모노레일 동굴내 승강장
- 휴석소, 막대형 종류석, 베이컨 시트, 동굴방패, 동굴진주, 기형 종류석, 곡석 등 다양한 종류의 동굴 생성물 분포
- 동방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종류석 발달
- 연장 60m와 30m 수심 8~9m의 동굴 호수 발달
- 연장을 알 수 없는 지역으로부터 동굴수 용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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