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쨍쨍 쬐는 삼복 더위에 도심으로 나가면 신기루를 만나기가 십상이다.
더위먹은 심신이 사막과 같은 도심으로 나간 탓이다.
그렇게 만난 신기루 중의 일부를 여기 올려본다.
사진 설명이 무슨 필요하랴.
그저 저 여름의 열기 속에서 신기루를 함께 만난 공감의식만
정중히 바랄 따름이다.
그러니까 그때 거기에서 더위를 같이 먹은 "반 정신"의 동인이자
데자뷰를 함께 체험한 동행이라는 전제 속에서---.
"여기 지금" 김승옥이 젊은날 그러했던 여름을 훔쳐서 담아보았다.
김 승옥, ''내가 훔친 여름'' 중에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찬사를 받은 김승옥의 장편소설 '내가 훔친 여름'과 '60년대식' 실려 있는 소설집.
국내 여행을 통해 각 지역의 역사적, 사회적, 도덕적 문제점을 찾는 소설로 1967년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내가 훔친 여름'과 '60년대식'은 주로 자기 존재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김승옥의 작가가 인간 내부를 섬세하게 파고드는 문체로 적어내려간 소설이다.
여름의 열기 속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들---.
단성사와 피카딜리 근방도 세월과 함께 많이 변했다.
여름이 이 공간도 달구고 있다.
종로의 뒷골목은 음식점의 길거리 주방이다---. 비웃 굽는 냄새가 아직 옛날을 불러온다.
고개 숙인 여심, 마음의 행로는?
한류도 졸고있다. 일본과 특히 중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지금 인사동으로 갔다.
Guess what?
여름 거리에서 나른하게 딩구는 포스터---.
종로 3가 역에서 담은 사진이다.
이 아름다운 얼굴의 주인공들은 여름뿐만 아니라 사계절을 다 극복한 분들이다.
김승옥, <내가 훔친 여름>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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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가씨의 어깨의 한 손으로 감싸안고 걷기 시작했다.
어깨에 손을 얹는 순간부터 떨리기 시작한 아가씨의 몸은 근처의 여인숙 문턱을 넘어서 시큼한 땀내로 가득 찬 작은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길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 방의 어두운 밑바닥에서 여자와 난 걷기 시작했다.
나의 여름이 내 팔을 베개 삼아 베고 쿨쩍쿨쩍 울기 시작했다.
얇은 칸막이로 나누어진 방들이었기 때문에 여인숙 안은 온통 과즙처럼 끈적끈적하고 촌충처럼 마디지면서 긴 소리로 낮게
소란스러웠다.
내 못생긴 여름이 숨죽여 우는 것을 나는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시원하게 먹고 싶을 뿐이다. 예를 들면 배나 오이나 사과나, 아니 냉수라도..... 한 팔은 내 여름의 땀내나는 머리가 차지하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자유로운 다른 팔은 물주전자에 손이 닿지 않았다.
아가씨의 울음이 끝나기를 나는 마른 목구멍에 물대신 바람을 보내주며 조용히 기다렸다.
이것이 여름일까? 그래 이것이 여름이다. 비치파라솔, 눈부신 백사장. 검푸르고 부드러운 파도, 빨간 수영복, 풍만한 아가씨의 웃는 얼굴,
하얗고 가지런한 이빨, 짧기 때문에 유쾌한 자유, 그것들은 나의 여름이 아니다. 나의 여름은, 차표 없어 불안한 기차여행, 신분을 속여
맡은 일거리, 담내음에 찌든 아가씨, 겁탈 같은 유혹, 비린내 나는 여인숙에서의 정사, 그러가 나면 기다리고 있는 괴로운 휴식과의
만남일 뿐이다.
"이제 그만 울어."
아가씨의 빰을 가볍게 토닥이며 내가 말했다.
"울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럴 땐 대개 울지 않거든요..."
.
.
.
.
여자가 무언가 말하는 것을 머뭇거렸다. 물은 찝질하고 미적지근했다.
------
나는 문득, 소리밖에 가지지 않은 이 밤바다가 영일이가 토해내는 오물과 선배님과 그의 작부가 부르는 유행가 소리에 더렵혀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 토했는지, 네 사람은 다시 이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선배님과 그의 작부는 노래를 계속 하고 있었고 영일이는 잠잠했다.
나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돌아섰다. 그들이 내 등뒤를 지나기를 나는 기다렸다.
이 시간에, 나의 여름이 여인숙의 비린내 나는 방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고, 태양도 형태도 빛깔도 다 잃어버리고 오직 소리만,
저 괴로운 신음 같은 소리만 가지고 버둥거리고 있는 바다야말로 비로소
내 몫의 바다인 듯이 생각되어 놓쳐버리고 싶지 않은 이시간에 나는 영일이와 선배님을 그냥 보내고 싶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한 날이 밝으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사람들이엇다.
그들이 내 연인이 잠들어 있는 여인숙의 대문을 두드리고, 그리고 빈방이 없다는 사환의 졸린 음성을 듣고 그리고 거리의
저쪽으로 멀어져 갈 대 내가 영일이를 잠깐 붙들고 싶었던 것은 '강동우씨가 화가 나있지는 않더냐?
내일 실내장식 하겠다고 찾아가면 받아주지 않을 눈치는 아니더냐?'고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어둠 속에 오래 묻혀 있고 싶었다
나는 내영혼을 모든 경우에 갖다 놓고 시달림을
받아보게 하고 싶어. 그러면 결국 나의 영혼 속에
무언가 찌꺼기가 남을 거야.
난 그걸 양심이라고 하고 싶어.
난 우리 모두가 그래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뭔가 우리 시대가 정리됐을 땐, 우리시대의 양심이 남겨질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양심이라면 그 때,
그걸 지키기 위해 정말 강력한 투쟁도 우린 피하지 않을 거야.
김 승옥, ''내가 훔친 여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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