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내외와 손자 둘이 일주일 간의 고향 방문을 마치고 돌아갔다. 돌이켜보니 한주간의 전쟁을 치룬끝에, "오니 반갑고 가니 더 반갑다"는 항간의 말이 그른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증한 날들이었다.
큰 손자는 다섯해 전에 살고있는 허드슨 강변의 어떤 레스토랑에서 돌잔치를 했었는데, 이제 둘째는 서울에서 돌잔치를 했으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좋지!"하고 무심결에 승락을 하고부터 마음은 급하게 되었다. 물론 승락한 일을 후회했다는 뜻은 전혀 아니지만, 늙은이들이 주최측이 되려니 순발력은 떨어지고 생각도 잘 나지 않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공연히 마음만 분주하였다. 다행히 세상이 분화되고 발전한 결과라고할까 이리저리 찾아보니 전문으로 하는데가 많아서 외양은 버젓하면서도 경비가 크게 드는 것도 아니고 특히 잔 신경을 쓰지 않아서 좋았다.
그동안 딸네에서 세번씩이나 돌잔치를 할 때에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자격(?)으로 손님처럼 갔었구나 싶고, 허드슨 강변의 맏손자 돌잔치에 갔을 때에도 객지에 초대받은 구경꾼처럼 편안히 지냈던 일이 지나놓고 보니 참 너무 무심했었구나 자책이 들 지경이었다. 아무튼 큰 비용이 들지 않으면서도 호텔의 프라이빗 룸을 차지하여 치루는 잔치라서 그런가, 순서는 매우 약식으로 형식만 갖추고 일사천리였다. 그래도 남는건 사진이라고, 사진빨이 받고도 남을 외양과 형식은 흡족하였다.
문제는 돌을 맞은 아기 보다 잔치에 참여한 아들네와 딸네의 아이들! 고만고만하게 미운 다섯살, 미운 여섯살의 내외종간 아이들이 모두 귀여운 테러리스트들이 되어서 난리법석을 떠는 통에 사진도 행사 전에 미리 찍어놓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하였다.
우리가 클 때에는 "엄부자모"라고 하여서 엄하게 훈육하는 애비가 그 역할을 다하였는데 어떻게 된건지 요즈음은 모두 자기 새끼 귀한줄만 알아서 통제 불능상태가 되니 조부인 내가 나서서 아이들을 엄히 다스리고, 내친김에 엄부 노릇을 못하는 아들과 사위를 힘주어 꾸짖고나니 모든 참여자들의 얼굴에 나를 경원하는 모습이 역력히 나타났다. 나이 들면 그저 "뒷방 늘그니(!)" 행세가 제격인데 주제 파악을 못한 늙은이가 설쳐댔으니 뒷맛이 게운치 않음은 당연한 귀결이렷다.
다음날은 잔치 때의 오명을 씻으려교 "미운 테러리스트"들을 데리고 거창한 파도 풀장을 찾아갔다.
외손들을 데리고 할머니는 이미 여러차례 딸네와 함께 찾아간 곳이지만 나는 그때마다 사양을 했었는데 친손들이 왔다고 카메라를 메고 나섰으니 모양이 좀 그렇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것저것 다 따질수는 없고 외손들도 초대하여 함께 갔으니 크게 뒷말 들을일은 아닐성 싶었다.
하여간 어제의 엄한 할아버지께서는 수영복만 입었을 뿐, 일절 물질은 하지 않았는데도 그 무슨 파도 풀장의 너무나 거대한 쓰나미가 이는 바람에 물벼락을 맞고 그 와중에도 다행히 카메라는 건졌으나 휴대폰은 아무래도 시방 탈이 난 것만 같다.
맞벌이 부부인 자식 내외는 휴가 날짜를 맞추어 귀국을 하였는데 오기전부터 사돈댁, 그러니까 며느리의 친정에서 지낼 일정을 뚝떼어 잡아놓고 시댁의 양해를 구하여서 시어머님의 심기를 다소 불편하게 하였었는데, 웬걸 막상 손자들이 난리를 치는 서슬에 몸살이 날 지경이 된 할머니께서는 아예 예정보다 하루 이틀 더 며느리의 친정행을 허락, 아니 권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락 혹은 권유의 명분은 안사돈이 최근에 큰 수술을 하고 후유증까지 있으니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함께 지내고 가는게 도리겠다는 배려였다. 이 법석통에 외손 하나는 힘이 빠져서 잠시 병원 신세까지졌다. 에미 애비가 모두 의사라도 이 난리통에는 예방의학이 통용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겹기까지 했던 한주간이 정말 쏜살처럼 지나가고 이제 말썽의 중심에 있던 큰 손자를 위시하여 모두들 국내외로 떠났다. 이제 무사히 도착하였다는 전화까지 뉴욕에서 왔다. 그 사이 부러지고 깨진 소품들은 모두 쓰레기장으로 갔다. 아직은 정신이 얼떨떨하지만 곧 쓰나미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때가 쓰나미처럼 닥쳐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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