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시절부터 "바이칼 호수"로 가보고 싶은 염원같은게 있었다.
왜 바이칼인가?
윌렴 서머셋 모옴이 쓴 "달과 육펜스"에 나오는 주인공 스트릭랜드 처럼
무슨 격세유전의 DNA가 나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어서 고향으로부터의
끝없는 부름에 나도 모르게 감응되어 있었단 말인가.
젊을 때는 가끔 내 몸속에 신내림 같은게 자리하려고 해서 한순간 부르르 떨며 떨쳐버린
기억도 있다.
바이칼의 바람 소리가 가장 세차게 영향을 주기로는 매일 매일의 일기예보마다
"바이칼의 한냉 기단"이 어쩌구 하는 기상 통보관의 말씀에서 비롯된다.
한반도에 바이칼 호수가 끼치는 영향이 이보다 더 할 수 있으랴.
참으로 "바이칼 기단"---,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특히 겨울철에.
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는 그곳에 사는 원주민인 브랴트 민족과 우리가 같은 몽골리언 계통의
피붙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매개하고 연결해준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간 평소에도 시배리아라고 하면 공연히 마음이 들뜨던 습관 탓인가,
대한항공에서 여름 한철 바이칼 쪽으로 전세기를 띄운다는 광고에 앞뒤 잴 것 없이 비행기를 탔다.
전세기는 저녁 늦게 떠나서 자정 가까이 이르쿠츠크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입국 수속이 자그마치
두시간 반이나 걸렸다.
그래도 구 소련이 해체되던 당시 모스크바 공항에서 네시간 이상을 꼬박 서서 기다렸던 것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셈이었다.
전세기는 정기노선과 달리 나쁜 시간대에 비행시간이 배정된다고 한다,
일행 중의 누가 아는체 하는 소리를 귀담아 들은 셈인데 사실 여부는 모르겠다.
바이칼까지의 거리는 의식 거리상으로 우리에게 아주 먼 곳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비행기로 네시간 이내이고 시차 적용도 받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밤중에 도착한 이르쿠츠크 공항은 우리 지방 공항보다도 시설이나 규모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동 시베리아의 관문으로서 발전의 여지가 많아 보였다.
또한 한밤중에 나온 공항 입국 수속을 맡은 직원들도 열심히 일을 처리하려고 애를 썼는데
다만 컴퓨터 등의 조건이 열악하여 수기로 처리를 하는등, 피차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밤중이라 러시아의 공식 문자, "기릴 문자"로 된 공항 표지는 플레이크가 많이 났고 영어 표지만
제대로 나왔다.
이르쿠츠크 도시의 인구는 60만이라고 한다.
3일간 묵은 호텔 이름은 앙가라 호텔로서 이곳에서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한다.
앙가라는 이 도시를 감돌아 흐르는 큰 강, 앙가라 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앙가라 강은 바로 바이칼 호로 흘러들어가는 336개의 강과 달리 유일하게
바이칼을 발원지로 하여 흘러 나오는 강이다.
이 강은 우랄 쪽에서 예니세이 강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흑해로 들어간다고 한다.
어릴때 인상 깊게 듣고 외운 고유명사라서 공연히 또 가슴이 뛴다.
아니 그뿐이 아니라 최근 러시아가 쏘아올릴 우주선의 이름도 "앙가라"라고 하던가.
호텔에서 내려단 본 주변 건물들은 많이 퇴락한 모습이다.
물론 새롭게 건축되고 있는 건물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체로는 제국의 몰락을 보는듯 싶었다.
물론 이곳은 일년에 수많은 지진이 일어나는 관계상 대략 저층 목조 건물이 많고 그나마 모두
역사적 보존 건물로 지정이 되는 바람에 헐거나 고치지도 못하고 그냥 퇴락하는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신흥 구역은 우리돈으로 십억이 넘는 주택도 많고, 사실은 인구가 모여드는 추세라서
도시 전체의 부동산 가격이나 전세 가격은 거의 살인적인 모양이다,
아르바이트 삼아서 우리를 안내한 이르쿠츠크 국립대학의 한인 유학생 및 고려인 재학생들은
모두 대학 기숙사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학비와 기숙사비는 매우 싸다고 한다.
호텔 앞에는 아침마다 바이칼 호수로 관광을 떠나는 러시아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모여서
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슬라브 인종과 몽골리안 계통의 혼혈 얼굴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런 얼굴을 가급적 많이 담아 보려고 노력하였다.
사실 바이칼 호수는 몽골 공화국의 바로 윗쪽에 자리하고 있었고 얼만 전만 하여도
몽골리안 계통의 "브리야트 자치 공화국이 있었으나 2년전 국민 투표에 의하여서
사라졌다고 한다.
원래 징기스칸의 어머니도 이 곳 출신, 혹은 바이칼 호수 가운데에 있는 큰 섬, "알혼"섬
출신이라고 한다.
이제 그 흔적들은 급속하게 역사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여기 서 있는 지적인 모습의 부인은 딸과 함께 바이칼 근방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하였다.
이곳 이르쿠츠크에 살며 컴퓨터 엔지니어라고 하였다.
옆의 남자는 소형 관광차를 갖고 영업을 하는 기사였다.
무서운 얼굴에 징기스칸의 흔적이 묻어있다고 느낀 것은 서양 역사관의 영향이런가.
시베리아의 진정한 모습은 아직도 미지이기만 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랄까 궁금증의 하나는 시베리아의 모습을 개념화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와서보니 시베리아 벌판은 개간되지않고 버려진 광활한 황무지였다.
소떼와 양떼, 그리고 말들이 방목되는 지역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였다.
어쩌면 미국의 네브라스카 주와 같은 풍경과 상황과도 연상되는 부분이 많았으나
물론 시베리아가 족탈불급이었다.
하긴 땅속에 자원이 그득하게 매장되어 있다는 점도 네브라스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이곳에서 맞딱드리고자 고대해 마지않았던 또하나의 현상은 브랴트 민족의 서낭당 제례의식이었다.
그들의 서낭당 기원 의식과 관습은 몽골과 고대 부여, 동이족들과의 관련성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다.
우리의 서낭당 무속 믿음과는 너무나 흡사한 바가 있었다.
살아있는 나무에 소원을 빌며 매듭을 메다는 형식과 형상은 더말할 바가 없이 닮은 꼴 형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번 연재의 후반부에서 다시 소개코자 한다.
말은 브랴트 족들이 신성시하는 대상이다.
시베리아 관통도로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 곳을 방문했을 때에 부랴부랴 건설 되었다고 한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조부 핏줄에 이곳 원주민의 피가 섞여있다는 미확인 정보를
어디에선가 들었다.
고등학교 동기 부부와 이번 답사에서 우연히 합류하였다.
내과 의사이자 행정 관서의 책임자로 있는 친구와 함께 하는 여정이 여간 다행하지가 않았다.
넓은 황야를 달리다보면 화장실이 급하다.
거의 이와같은 "푸세식"이었는데 남녀 공용인 경우도 많았다.
7시간의 버스 여행이다 보니 중간에 있는 가게와 주유소에 들려서 시베리아의 여러 풍물에 접할 수 있었다.
중간에 기착하여 준비해간 도시락과 이가게에서 내놓은 러시아식 스프를 국물로 삼아서 먹었다.
도시락은 이르쿠츠크에 사는 고려인이 만들 것이라고 하였다.
이곳 가게 주인은 전형적인 몽골리안 브랴트인이었는데 끝내 사진에 담지는 못하였다.
도로를 달리다보면 한국에서 수출한 중고 차량들을 자주 보았다.
전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았던 광경이었다.
굳이 선진국의 문자 흔적을 지울 필요가 없다고 하던가~~~.
신혼 부부도 간이 휴게소에 들렀다.
(계속)
바이칼 호
바이칼 호수(러시아어: О́зеро Байка́л, 부랴트어: Байгал далай, 몽골어: Dalai-Nor)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남쪽에 있는 호수로, 북서쪽의 이르쿠츠크 주와 남동쪽의 브랴트 공화국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브랴트 공화국은 2년전 국민투표로 사라졌지만.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이며, 이름은 타타르어로 "풍요로운 호수"라는 뜻의 바이쿨에서 왔다.
길이 636 km, 폭 80 km, 면적 31,494 km², 깊이 1637 m로, 아시아에서 가장 넓은 민물호수이며,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다. 호수의 바닥은 해수면보다 1285 m 아래로, 육지에서는 가장 낮다.
부피는 23,000 km³로, 북아메리카의 오대호수를 모두 합한 크기이며, 지구상의 민물의 20%에 해당하는
양이다.
약 2천5백만-3천만년 전에 형성된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이다.
생물다양성에서 바이칼 호수에 비길만한 다른 호수는 없다.
852개 종과 233개 변종의 조류와 1550여 종의 동물이 살고 있으며, 이중 많은 수가 고유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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