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바이지만 문학 모티브 가운데 적지않게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동의 심상"이다.
사람이 구태어 시간을 내어서 글을 읽을 때에야 주변 일상의 이야기보다는
먼곳의 이야기, 혹은 먼 곳으로 가고 있는 과정에 더 시선이 끌리리라.
일리어드, 오디세이는 말할 것도 없고 바이런의 장편시나 현대의 SF, 스타트랙은 물론,
운문이고 산문이고 간에 동서고금의 명작은 바로 이런 배경을 기본 축으로 하고있다.
사실 지금은 대중 관광의 시대가 열렸지만 얼마전만 하여도 여행은 소수에게만 부여된
특전이었다.
천금을 물려받은 귀족이라 할지라도 따로 또 시간을 낼 수 있어야하고
이보다 더한 조건으로는 또 특별히 건강도 천혜로 타고나야했다.
이런 사람들이 이국정취의 글을 써서 시선을 모았다.
바이칼 리포트로 계속 글의 진도를 삼다가 이제는 별난 기차여행기까지
올리자니 공연히 마음이 캥겨서 거창한 문학사의 배경을 깔고 뭉게본다.
기차 여행이라면 어네스트 헤밍웨이도 많이 읊어댄 모티브인가 한다.
이제 거장의 단편 제목까지 들먹이며 거창을 떠는 것은
잘봐 달라는 꼼수이기도 하다.
환 바이칼의 여정은 짧은 거리에 비해 소요시간은 7시간이나 걸렸다.
시시때때로 간이역에 정지하여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세번씩이나 기적이 울려도
사람이 다 타지 않으면 출발도 기약이 없는
오랜만에 맛보는 느림의 미학이었다.
위의 첫 사진에서 보듯 옷을 훌훌벗고 호수욕을 하는 것은 이날 여행의 기본이었다.
곳곳에서 바다같은 호수가 쓰레기장이 되니 남의 일로 보이지 않았다
자작나무가 참 아름다웠다.
간이역의 화장실은 문이없는 개방식이었다.
오물을 구워놓고 파는데 맛이 좋았다. 보드카는 기본이었다.
35루불 정도이니 우리돈으로 1000원 정도인가---.
앞에 보이는 터널과 옹벽 공법 구간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시공했다고 한다.
가까이에는 원주민 촌, 슈미하 마을이 있었다.
원래 이곳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구간인데 1950년대에 바이칼 수력 발전소가
생기면서 일부 철도구간이 수몰되고 폐기되면서 환바이칼 유람 기차 구간으로
재편되었다고 한다.
경관이 특이한 빠라빈뉘 마을
이날이 내 생일이었다.
관광객 리스트에 올린 날짜를 보고 가이드가 시베리아 야생의 꽃으로
생일 축하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다.
이름도 모를 간이역에 무시로 쉬었다---.
나도 부지런히 내렸다.
백야의 저녁이 왔다.
하루 여정이 끝나고 다시 고향 이르쿠츠크로 돌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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