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시베리아 벌판을 다시 내다보니 생각이 만발한다.
만발한 생각의 중심점에는 "사랑"이라는 인류 영원의 주제가 자리하였다.
"물색없이 거창한 주제를 잡았네", 라는 자책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여기가 어딘가.
시베리아 벌판의 이르쿠츠크가 아니던가.
이곳에 와서 춘원의 소설, <유정(有情)>과 그 주제 "사랑"이 어찌 떠오르지 않겠는가.
소설 <유정>의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이곳 이르쿠츠크까지 와서 숨을 거둔 최석인지, 그를 한없이 끝없이 찾아온 남정임인지,
아니면 소설의 나레이터인지 가름하기 힘든 나의 기억력과 평론적 판단력이었지만
하여간 이역만리를 배경으로한 이 오랜 순애보와 그 주제는 나를 사로잡지 않을 수 없었다.
재미삼아 한마디만 더 거들면 <유정>은 1960년대 중반에 영화화되어 "이민자"라는 여염집 미녀를
"남정임"이라는 대 스타가 되게하였고 이후 그녀의 파란만장과 요절을 초래하고야 말았으니
시베리아의 바람은 마냥 거세기만 한 것인가.
여기 오늘의 소제목을 남정임과 예까째리나로 삼았는데, 순정과 열정의 여인 "트루베츠카야 예카째리나"에
대해서는 저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시베리아 벌판에 버려진 아기의 외짝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우스찌아르딘스크에 있는 이 가게는 부랴트 계 러시안이 경영하는 식당 겸, 쇼핑 센터이다.
그녀의 모습을 담기가 무척 힘들어서 이 광경 하나를 간신히 건졌다.
춘원이 이르크추크의 외곽을 누볐을 때에도 이만한 정도의 마을과 사람들은 있었을 것이다.
이르쿠츠크에 다달으니 이런 벼룩시장이 숱하게 눈에 띄었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였던가.
시베리아의 첫발을 디뎠던 이르쿠츠크 관광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예까쩨리나"와 그 가족들이 묻힌 쯔나맨스키 수도원을 찾았다.
예까쩨리나는 저 유명한 여제 예까쩨리나 2세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제까브리스트(12월당)의 당원으로 이곳에 유배를 온 트루베츠키아의 부인으로
이곳에 유배된 남편이나 약혼자 혹은 연인을 모스크바에서 찾아온 최초의 여성이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이 실패로 돌아가고 전승국의 입장에서 파리에 입성한 러시아 청년 장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유-평등-박애의 신천지였다.
짜아리스트 러시아의 참혹함에 눈을 뜬 그들은 인류사상 처음으로
"가진자에 의한 못가진자에 대한 해방과 혁명"을 획책하게 되지만
이들의 반란은 사전에 누설되고 꿈은 박살이 난다.
1825년 12월14일의 일이었다.
주모자들은 사형에 처해지고 나머지는 주로 이르쿠츠크 쪽 동시베리아로 유배된다.
귀족 계급 출신의 청년장교들은 그 부인이나 약혼녀, 연인들도 모두 상류계급 출신의
지적 여성들이었으나 이들도 신분을 버리고 속속 이곳으로 들어온다.
당시 짜아리스트 러시아의 황제는 부인들에게 개가를 종용하고 그렇게만하면
모든 신분을 보장한다는 약속도 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형지에서의 그들의 생활은 참혹하였다.
우리에게 이러한 아내 또는 남편, 약혼자, 혹은 연인이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보고 긍정의 답이 나오면 행복한 존재이리라,
그리고 우리가 대상을 위하여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생각해보고 그럴 수있다는 답이 나온다면 또한 행복한 존재이리라.
15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이 아름답고 숭고한 이들의 사상적 스승은 푸쉬킨이었는데
그는 12월 혁명 이전에 이미 유폐된 상태였다.
이곳에 온 제까브리스트들 중의 핵심은 발콘스키와 그의 부인 마리아였는데
그들은 최초의 고난이 다소 누그러진 이후에는 정기 음악회도 열고
특히 문학과 예술, 생활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이 지역사회에 큰 노력을 기우렸다.
이르쿠츠크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워지는 데에는 이들의 공이 컸다.
여담이지만 "Decabri"는 영어의 December, 프랑스어의 Decembre등에 해당된다.
모두 10을 뜻하는데 일년을 10으로 나눈 로마력의 마지막 달이 나중에 일년이
12개월로 될때에도 마지막 달, 12월로 정착되었다.
November의 Nova가 9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릴때 "데카 비타민"이 인기였던 기억이 난다.
비타민과 무기물이 10가지였으리라.
쯔멘스키 수도원에 예까쩨리나와 그녀의 자녀들 묘소가 있다.
이 사원은 물론 그리스 정교회의 건물이다.
수도원의 뒤쪽을 슬그머니 탐방해보니 러시아어로 말하는 학자풍의 두사람이 있었다.
여성은 흑인이었다.
호기심이 생겼으나 그들의 진지한 모습에 나같은 관광객이 끼일 틈이 없었고
단체에 묶인 시간은 더욱 짬이 없었다.
영화 "제독의 연인"으로 더욱 잘 알려진 꼴짝 제독의 동상이다.
백군 사령관인 제독의 드라마틱한 일생은 너무나 잘 알려져서 여기 소개할 필요는 없겠지만
현장에서 특히 수도원의 바로 앞 광장에서 마주한 감회는 말할 수가 없었다.
아, 긴 시베리아 여정의 버스 속에서 영화 "시베리아의 이발사"와
"제독의 연인"을 졸며 흔들리며 보고난 직후라서 감상이 더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러시아와 중국이 경제 합작을 많이하기 시작하였다는 신문 기사가 생각났다.
마침내 발콘스키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이르쿠츠크 곳곳에는 12월 혁명의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이곳으로 유배당한 귀족 장교 발콘스키가 살았던 집은 이제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볼콘스키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먼 친척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이 바로 발콘스키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근대 러시아의 불후의 명작들은 모두 데카브리스트들의 영향 가운데에 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겠다.
발콘스키의 거처를 옮겨서 쓰는 이 박물관의 관리인이다.
우리가 다섯시에 나오자 그녀들도 모두 퇴근 길에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곳에 와서 알게된 사실중의 하나는 이들의 정신적 스승, 푸쉬킨의 증조모(조모?) 대에 흑인의 피가 섞였으며
그 영향인지 푸쉬킨은 외모가 매우 조잡하였다고 한다.
아까 수도원에서 본 흑인 여성 생각이 문득 났으나 물론 관련이 없는 별개의 일일 따름이다.
앙우리의 발걸음은 키로프 광장으로 향하였다.
입구이자 앙가라 강변의 이 정교회는 밖으로 벽화가 있는 유일한 교회라고 한다.
오늘의 주제는 역시 "사랑"임에 틀림이 없었다.
백야의 저녁 나절에는 결혼식이 만발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결혼식을 올리면 모두 이 키로프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서 만인을 결혼의 증인으로 삼고
또한 함께 즐긴다고 한다.
사랑의 증인이 되는 즐거움을 여행의 즐거움에 더하여 얹었다.
붉은 띠를 띈 청춘남녀들은 들러리인 셈인데
우리나라의 함진에비 처럼 오징어 가면을 쓰고 소리소리 지르지는 않았다.
주례를 하던 습관대로 내가 뜬금없이 그들 앞에 섰다.
데이트 중인 청춘 남녀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르쿠츠크 시청사 뒤편에 자리한 '꺼지지 않는 불'.
2차대전 때 희생된 5만여 전사자들을 기리는 곳이다.
이르쿠츠크의 앙가라 강변에 위치한 예수공현성당은 샤머니즘과 러시아 정교회, 유럽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시베리아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곳에 난 길 이름은 우주인 "유리 가가린"의 이름을 따서 붙인 수많은 동명의 길 이름 중의 하나가 되었다.
사랑의 맹약을 열쇄와 자물쇄의 결합으로 채우는 풍속도는 어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알렉산더 대제의 동상이다.
아래 대좌의 조각은 먹이를 잡아먹는 포식자가 아니라 새끼를 안전하게 옮기는
자비로운 황제권을 상징한다고~~~.
앙가라 강의 유속이 아주 빠르다.
굳이 관광 일지에 한 컷 해두어야 할만큼~~~.
갑자기 강변역에 온 느낌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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