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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두 꼭지<멋쟁이 예이츠 / 우리들의 실크로드>

원평재 2010. 4. 22. 07:06

 

 

  

  

최근 여러군데 이런저런 졸문들을 올린 가운데

서평을 두 꼭지 쓴 것이 있어서 여기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출판사 온 북스에서 발간한 안병문 시인의 "멋쟁이 예이츠"에 관한 서평으로

격월간 문예지 <국제 문예>에 글을 올린 것이고,

또 하나는 고려원에서 발간한 김사훈 소설가의 장편 "우리들의 실크로드"에 관한 것이다.

 

 

예이츠의 대표작으로는 잘 알려진 "이니스프리의 작은 섬"이 있다.

며칠전 성균관 대학교의 명 총장이자 나하고는 중-고등학교의 동기 동창이라는 인연이 있는

서정돈 박사를 만날 기회가 있어서 명륜동 캠퍼스를 찾았다가 그 인근에서

이니스프리라는 옥호를 발견하고 시의적절하게 한 컷하여

여기에 함께 올리는 재미를 누려본다.

 

 

 

 

<멋쟁이 예이츠> (민병문 시인의 영시 평전) (온 북스)

 

모더니스트, T. S. 엘리엇의 난해한 시와 장황한 주석으로 땀을 흘리던 시절,

로맨티시스트 W. B. 예이츠의 가슴을 울리는 시는 구원이었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외엮어 진흙 바른 오막 집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 벌통 하나 두고,

벌들 윙윙대는 숲속에 홀로 살으리,

 

또 거기서 작은 평화를 누리리, 평화는 천천히

아침의 베일로부터 귀뚜라미 우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것;

한밤은 희미하게 빛나고, 정오는 자줏빛으로 타오르며,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곳.

 

모더니즘이 횡행하던 시절에도 그의 시는 버젓이, 또 때로는 은밀하게 우리의 가슴을

적셔주었다.

일생을 통하여 낭만주의의 열병을 한 번이라도 앓지 않은 자 누가 있으랴.

 

그러나 시대정신이 서정적 낭만주의에서 이성적 모더니즘으로, 다시 해체의

포스트모더니즘 쪽으로 옮아가고 국내적으로는 그 사이에 민주와 민족이라는

거대 담론 까지 가세하여 낭만주의는 버려야할 헌 옷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슴을 도려내고 머리만으로는 살 수 없듯이 때로 뜨겁고

때로 따뜻한 낭만주의와도 결별하여 살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낭만주의 시인 예이츠는 특별히 모더니즘의 시대와도 생의 상당한 부분을 겹쳐 살면서

어느 한 쪽에 편중됨이 없이 ‘이성적 낭만주의’를 구가하였기에 그의 시 세계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추억이 아니라 현재로 다가온다.

 

그래서 그런 가, 예이츠라는 이름의 커피점도 큰길가에 보이고

이니스프리라는 의상점도 패션의 거리에서 눈에 뜨이는데,

정작 예이츠의 시집이나 선집은 몇 가지가 고작이다.

 

민병문 시인이 문예지 ‘국제 문예’를 내는 ‘온북스’를 통하여 내어놓은 시화집

<멋쟁이 예이츠>는 이런 부족감과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책의 앞부분에 예이츠에 관한 풍요로운 화보 자료를 보여주는 것도 전문서 못지않고

원문과 함께 민병문 시인이 정치하게 번역해 놓은 시문 자체도 감동으로 와 닿는다.

또한 갈증을 풀어주는 오아시스 역할로는 소개하는 시마다 곁들인 간결한 해설과

그에 걸 맞는 마네와 드가와 샤갈 등의 명화들이 잘 어울려서 맡고 있는데,

영상시대에 길들여진 이 시대의 취향까지 파고든다.

 

시선 집은 세부분으로 나뉘어 구성되어있다.

 ‘이니스프리 작은섬’, ‘영원의 소리’, ‘노년을 위한 기도’가 이 세부분의 소제목인데

청춘 시절에서 출발하여 장년을 거쳐 노년으로 나아가면서 인간이 겪는 환희와

고뇌와 명상과 염원을 고루 담고 있다.

인류사의 새로운 도전, 노인 세상에서도 빛나는 경전이 될 수 있겠다.

 

예이츠는 시대의 편향을 넘어선 만고의 시인이다.

‘진흙 바른 오막 집을 짓겠다’는 것은 오늘날 도시인이 꿈꾸는 황토방에 다름 아니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 벌통 하나 놓고’라는 싯귀는 단순 소박한 낭만적 꿈을 넘어서

현대의 대량생산 방식이 저질러 놓은 환경 파괴의 회복을 일깨우는 선지자의

목소리이다.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이 곧 생명주의, 환경주의 임을 그는 진작부터 선험 한 것이다.

 

끝마무리에 ‘멋쟁이 예이츠’라는 소제목을 다시 쓰면서 시인의 일대기를 상세하게

서술해 놓은 점도 이 책의 가치가 단순치 않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작가의 일생에 관한 기록이 학문적 딱딱함이 아니면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중되기

쉬운데 여기에서는 그 두 가지가 평형을 유지하고 있음도 눈에 띈다.

예컨대 멋쟁이 예이츠의 주변에서 그의 시혼을 일깨워준 여인들에 대한 페미니즘적

접근은 시인의 단순한 여성 편력이 아니라 그 때마다 시인의 영혼이 갈망하고 깃들고자 한

시적 염원이었음을 명쾌하게 해설한 관점도 바로 그러하다.

 

잘 빚어놓은 시선집이 다시 한 번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 Innisfree 는 예이츠의 고향에 있는 실명의 호수이지만 사람이 살지는 않는 곳이라고

한다.

어떤 해설에 따르면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는 작가의 꿈이 서린 가상의 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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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려원에서 나온 장편 "우리들의 실크로드"는 우리시대의 새로운 사랑 방정식에 관한

현상을 그려낸 것인데 논란의 여지 속에서 출판 여부의 문제에 까지 이르는 긴 여정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작품에 나 나름의 간단 명료한 의미를 부여한 바 있음을 간략히

여기에 소개하고 넘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