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신인상으로 추천한 장편 소설이 (주) 다트앤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소개합니다.
가벼운 터취로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게 끌고간 이야기가 독자들의 시간을 훔쳐갈듯 합니다.
휴양지 여름밤의 휴대품으로 권합니다.
<고독한 자의 행로>
심사평 및 줄거리 요약
단편 중심의 등단 절차에 익숙해 있는 우리나라 문단의 관행상, 신인 소설 작가의 다양한
면모를 파악해 볼 수 있는 장편으로 등단을 하는 경우는 오히려 희소하다.
외국에서는 출판사에 아예 상설로 리뷰어와 위원회를 두고서 좋은 작품, 특히 장편소설
작품을 수시로 접수하고 평가하여 출판을 하는 과정이 보편적이다.
이번에 역사 깊은 계간지, "문학과 의식"에서 역량이 엿보이는 신인 작가를 발굴, 등단시키고
그의 장편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게 된 것은 신예작가 본인의 영광은 물론이려니와,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출판계와 문단 전체에도 좋은 본보기가 되리라고
자부한다.
작품 소개는 단행본이 곧 출간되기에 여기에서는 그 개요의 일부만 소개하여 작가의 역량을
품평하고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모아서 심사평을 달기로 한다.
줄거리 요약도 작가의 역량을 달아보는 의미에서 고치거나 압축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의
글을 이야기의 줄기에 맞게 생략된 부분만 설명하면서 이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니까 다이제스트 판 형식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서구는 물론 가까운 일본의
유명 S출판사, 국내 굴지의 영어 전문 S사 등에서 대역 본을 만들 때에 원문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미 시도하여 좋은 반응을 받은 바가 있다.
장편 소설 <고독한 자의 행로>는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킬러에 관한 이야기이다.
스릴과 서스펜스에 가득한 출발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문학적 함의에 대한 분석은 나중에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미국과 한국의 이중 국적자인 전문 킬러이자 저격수는 미국 정부 산하 특수조직의 직속
상관으로부터 북한의 국방장관을 살해하라는 밀령을 받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고독한 자의 행로
제임스 클락 저 (필명)
< 목 차 >
제1장 의뢰인
제2장 고독한 여행
제3장 암흑 속의 기다림
제4장 고독한 자의 행로
제5장 캘리포니아
제6장 혼돈의 시간
제7장 떠나는 자의 슬픔
제1장 의뢰인
1.
세계적인 초특급 호텔들이 들어선 사이판의 관광 리조트 지역을 지나서 북동쪽 방향으로
자동차로 30∼40분을 달리면, 사이판의 북동부 끝 지점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패망하던
일본군들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낙엽처럼 떨어져 죽어 갔다던 「반자이 클리프」라고
불리는 절벽이 있다.
이 절벽으로 가는 길목의 2Km 전방에서 좌측 해변으로 빠지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30여 미터
들어가면, 우측 언덕 위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층집이 바로 크리스 펠터(Chris Pelter)가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이 붉은 단층 가옥은 사이판 주민들의 주택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셈이다.
이 집은 비포장도로에서 약10°의 경사진 돌길을 50m 정도 올라간 야트막한 언덕의 정점에 서
있으며, 흰색의 나무 대문이 있고, 아름드리 야자수와 잡목들이 섞인 100평 정도의 정원이
딸린 집이었다.
집 뒤쪽은 약 30m에 이르는 수직 암벽으로 되어 있으며, 바로 태평양의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사이판의 기후는 일 년 내내 여름의 날씨지만, 특히 건기인 5월의 하늘은 그렇게 푸르고 맑다.
거실 뒤쪽 테라스에서 간이 의자를 난간 앞에 놓아둔 크리스는 릴 낚시대를 천천히 치켜세웠다.
오른손으로 낚시줄을 검지에 가볍게 감아쥐고, 양손으로 낚시대를 단단히 잡았다.
릴 끝을 뒤쪽으로 내렸다가 순간적으로 정중앙 앞으로 뿌리쳤다.
낚시대가 앞쪽에서 수평과 45° 각도를 이루는 순간, 검지에 감긴 낚시줄을 놓았다.
50g의 추가 달린 튼튼한 5호 낚시줄은 핑- 소리를 내며 검푸른 바다 위를 거의 70m정도나
날아가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중략)
‘걸렸다!’
크리스는 다랑어가 걸렸다는 확신이 들자, 낚시대를 힘껏 뒤로 젖혔다가 다시 앞으로 낚시대를
내리면서 릴을 재빨리 감았다.
낚시대를 재빨리 뒤로 젖혔다가 내리며 릴을 감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낚시줄이 팽팽히 긴장하는
것을 보았다. 제법 큰 놈이 걸린 모양이었다.
그 때였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전화벨이 울렸고, 크리스는 고개를 돌려 바로 옆 간이 탁자 위에 놓아져 있는 위성전화기를
노려보았다.
전화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이놈을 잡아 저녁 요리를 만들 것인가?
지금 릴을 감지 않으면, 이놈은 줄을 끊고 도망갈 수도 있다. 다랑어의 이빨은 날카로운 면도칼과
같아서, 이놈이 낚시줄을 보게 된다면 단박에 이빨로 줄을 물어뜯을 것이다.
잠시 동안 크리스는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가, 곧 바로 테라스 기둥에 묶어 둔 거치대에
낚시대를 꽂고는 위성전화기를 집어 들고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위성전화기의 액정 화면에는 ‘
번호였다.
순간, 번호를 확인한 크리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수화기 폴더를 열기 전에 잠시 심호흡을 하면서, 크리스는 이 일을 맡을 것인가? 아닌가를 잠시
생각했다.
‘내용을 보고 결정하자’라고 생각한 크리스는 수화기 폴더를 젖혔다.
“여보세요?”
크리스는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나, M일세.”
굵고 거친 미국 텍사스 남부지방의 억센 영어가 들렸다.
“알고 있습니다.”
“오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56번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수령하게.”
“…그러죠.”
“조심하게, 곧 다시 만나세.”
“알겠습니다.”
“다시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실패는 용납이 안 되네……. 그럼, 이만!”
전화는 끊어졌다.
생략부분 요약; 이 전화통화야말로 북한 국방장관 암살의 서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은 사이판, 정경과 풍물이 정밀 사진을 보듯 세밀하게 묘사된다.
이후 CIA 감찰부 요원이 주인공 크리스를 미행하고 접촉을 시도하는데 같은 미국 정보기관이
중복되게 한 인물에게 접근하고 감시하는 일은 사태의 추이에 궁금증을 더하고 나중에
전조(foreshadow)의 하나임이 판명된다.
4.
(전략)
크리스는 자신의 집에 도착하여 곧 바로 출입문을 열지 않고 집 앞 뒤로 각각 2개씩 있는 큰
창문들을 먼저 살폈다.
크리스는 외출시 반드시 창문을 꼭 닫고 난 다음, 머리카락을 1개씩 뽑아 창문 틈에
끼워두었다.
그것도 남들이 잘 알아채지 못하는 창문 틈 구석진 곳에 은밀히 숨겨 두었다.
만약 누군가 창문을 열었다면 머리카락은 반드시 제 위치에서 벗어나 있거나, 바닥으로 떨어져
있게 마련이다.
4개의 창문을 전부 살핀 크리스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다시 집 앞쪽의 출입문으로 돌아와서 출입문 사이에 끼워 둔 머리카락도 이상이 없음을
발견하고 크리스는 출입문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집안에 들어선 크리스는 곧장 뒤쪽 테라스
출입문도 확인하였다.
역시 머리카락은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곳에 얌전히 붙어 있었다.
크리스는 의자에 앉아 등허리에 끼워 두었던 M의 메시지를 다시 꺼내 읽었다.
수 신 : C
발 신 : M
임 무 : 북한 인민무력부장 김영식, 5.17∼20간 홍콩 방문 예정. 동 김영식을 제거할 것.
첨 부 : 김영식 사진 3장, 홍콩 방문 일정표 1장, 현금 2만불 및 18만불 입금표 1장. 끝.
크리스는 북한 인민무력부장 김영식의 사진을 다시 자세히 보았다.
김영식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상반신 사진과 어떤 행사에서 술잔을 들고 있는 전신 사진,
그리고 옆 모습 상반신을 찍은 사진 등 3장이었다.
김영식은 금테 안경을 쓰고 있고, 앞이마가 머리 정수리쪽으로 조금 벗겨진 대머리였다.
눈은 보통 크기이나, 코는 끝이 뭉툭한 모양을 하고 있으며, 입술은 얇은 편이다.
전체적으로 얼굴형이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크리스는 김영식의 얼굴을 뇌리에 완전히
각인시켰다.
그런 다음 크리스는 돈 뭉치를 집어 들었다. 100불짜리 미국 달러로 2만불이었다.
그리고 크리스의 비밀계좌가 있는 스위스 루체른은행에 18만불을 입금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입금표 1장이 있었다.
크리스는 M이 보낸 메시지를 반으로 접어 입 속에 넣고서 우물우물 씹었다.
한참을 씹다가 꿀꺽 삼켰다.
그런 다음 김영식의 홍콩 방문 일정표를 외우기 시작했다.
한참 후 김영식의 얼굴과 홍콩 방문 일정을 완전히 기억한 크리스는 사진과 일정표를 잘게
찢어서 화장실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렸다.
오늘은 5월6일. 시간은 충분하다.
김영식은 5월17일 저녁에 홍콩을 방문할 예정이므로 적어도 1주일 전에만 홍콩에 가더라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크리스는 간단한 조깅 복장으로 권총이 들어 있는 건색(gun sack)을 허리에 차고 집을
나섰다.
물론 머리카락을 하나씩 뽑아서 출입문과 창문 틈새에 끼워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외출 때마다 이러는 것은 상당히 성가신 일이었지만, 수년간 몸에 배인 습관으로 크리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조치였다.
한순간의 안이한 생각과 방심이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크리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일은 도처에 널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M의 의뢰로 3명의 표적을 제거했고, K의 요청으로 1명의 표적을 처리했다.
특히 K의 요청으로 3년전 마카오에서 처리했던 북한 스파이 김용우는 상당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이후 김용우를 처리하는 과정이 스릴러물처럼 박진감 있게 묘사되어있다.
제2장 고독한 여행
5.
5월 11일 초저녁, 크리스는 홍콩으로 가기 위한 짐을 꾸렸다.
(중략)
크리스는 끌고 다닐 때 사용하는 긴 손잡이의 옆 쪽에 있는 특수한 잠금장치를 누르고 긴
손잡이와 지지대를 가방에서 분리하였다.
일반적으로 그냥 손잡이를 뺄 때는 이 손잡이가 가방에서 분리되지는 않지만, 특수 잠금장치를
누르면 손잡이를 분리할 수 있었다.
그런 다음 바퀴 2개와 강철 커버를 떼내어 안쪽에 있던 용수철, 강철막대 등 모든 부품을
분리하였다.
또한 마스코트처럼 늘 가지고 다니는 두툼한 목각인형을 가방에서 꺼내었다.
이 모든 것을 탁자 위에 올려둔 크리스는 총기 손질하는 기름을 꺼내어 이것들을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가방의 부속품들을 이렇게 손질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기름 손질을 다한 크리스는 부속품들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먼저 바퀴 커버 2개를 목각 인형과 용수철, 강철막대 등과 같이 끼워 맞추니 방아쇠가 달린
라이플의 노리쇠 뭉치가 되었고, 그 노리쇠 뭉치에 가방의 긴 손잡이 지지대를 연결하니 총열이
되었다.
그리고 나머지 지지대 하나를 ‘ㄷ’자로 접어서 노리쇠의 뒤쪽에 끼우니 그것은 완벽한
라이플이었다.
사실 그것은 크리스가 한국의 특수부대인 HID 복무 시절부터 사용해오던 「M24-SWS」저격용
라이플이었다.
그것은 미국의 레밍턴사에서 개발한 볼트액션 방식의 완벽한 M24-SWS가 틀림없었다.
이 라이플은 절대 고장이 없으며, 완벽한 명중률을 자랑하는 최고 품질의 강력한 저격용
라이플이었다.
그런 다음 크리스는 관광용 쌍안경에서 한쪽을 분리하여 목각인형으로 만든 노리쇠 윗부분
홈에 끼웠다.
그러자 그것은 망원렌즈 조준경을 가진 완벽한 라이플이 되었다.
크리스는 노리쇠를 후퇴 시켰다가 전진시킨 다음,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틱’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노리쇠가 전진하였다.
라이플에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크리스는 다시 그것들을 분리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가방의 부속품으로 끼워 맞춘 다음, 간단한 옷가지 몇 개와 여권과
현금들을 챙겼다.
이제 3시간 후면 이곳 사이판을 떠난다.
5월11일 20:30발 JAL604편을 이용해 홍콩으로 갈 예정이다.
그 누가 자신의 미래를 알 수 있겠는가?
(생략 부분 요약) 이제 크리스는 홍콩에 도착하여 김영식이 머물 것으로 예상되는 경비가
삼엄한 호텔로 다가가서 주변을 용의주도하게 살핀다.
‘쉽지 않겠군!’
크리스는 노천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쪽에서 위치를 확보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건너편 홍콩섬에서 이 구룡반도쪽의 「영화의 거리」를 겨냥한다는 것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건너편 홍콩섬과 이 「영화의 거리」까지 제일 가까운 곳도 직선거리로 약 3Km 정도가 된다.
크리스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M24 SWS 저격용 라이플의 최대 사거리는 약 3Km이지만,
목표물을 정확히 맞출 수 있는 유효 사거리는 1Km 정도이다.
크리스는 지금까지 1Km 안에 있는 목표물을 놓친 적이 없었다.
HID 50년 역사 이래 최고의 저격수가 바로 크리스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배를 이용하는 방법은? 배를 타고 빅토리아 하버에서 「영화의 거리」가까이
접근하여 배안에서 저격을 한다면?
거리상으로 가능성이 있지만, 배는 자체적으로 흔들리는 큰 약점이 있다.
그래서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확히 조준했다고 해도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에 배가 흔들릴 수도 있다. 더군다나 배를
임대하여 크리스 혼자서 운항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소형 선박을 전세 내는 문제도 선장이나 선원들이 있을 것이므로 크리스의 행동을 볼 수
있다.
이 일은 증인이 남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불가피하게 선원들을 죽인다고 할지라도 탈출로가 또한 제한되어 있다.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김영식이 쓰러지는 그 순간 홍콩 전체에는 비상령이 내릴 것이다.
항구 안의 모든 배는 그 자리에 정선을 당하고 홍콩경찰의 철저한 수색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방법뿐이다.
(중략)
크리스는 망원경을 꺼내어 인터콘티넨탈호텔과 홍콩박물관의 중간지점의 「영화의 거리」
에서 소고백화점을 보았다.
그 망원경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관광용으로 보였지만, 단순한 망원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라이플 사격시에 거리를 재는 특수 조준경이었다.
피사체인 소고백화점 중간 정도를 겨냥하자 렌즈 안의 아래쪽에 432m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소고백화점의 맨 상층을 겨냥하자 456m의 거리 표시가 나타났다. 500m 미만의 거리라면
크리스의 솜씨로는 100%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다.
대상 인물의 한쪽 눈까지도 정확히 맞출 수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는 소고백화점으로 향했다.
(중략)
제3장 암흑속의 기다림
10.
5월16일. 크리스는 아침 7시에 마카오를 출발하여 8시 10분경 홍콩의 침사추이 선착장에서
내리면서, 5월18일 저녁 8시에 홍콩에서 마카오로 들어가는 선박편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카오룽호텔에서 뒤쪽 골목으로 약 40여 미터를 들어가 조금 지저분한 뒷골목에 위치한
상해모텔에 투숙한 크리스는 짐을 놓아둔 채, 몇 가지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러 마카오
국제시장으로 향했다.
김영식이 영화의 거리를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5일18일에 맞추어, 5월17일 오후부터는
영화의 거리 인근지역의 빌딩에 대해서 대대적인 검색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5.17 오전중에는 제1의 타격지점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그
곳에서 밤을 지새운 다음, 그 이튿날 오후에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미리 준비해야 했다.
크리스는 국제시장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꼼꼼히 준비하였다.
그러다, 문득 시계를 본 크리스는 급히 시장통에서 대로변으로 나와 택시를 집어탔다.
택시운전사가 크리스를 뒤돌아보자, 크리스는 ‘리펄스베이’라고 한마디만 하였다.
택시운전사는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차를 몰았다.
리펄스베이는 고급 주택가 지역에 위치한 해변으로써 여유로운 리조트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넓고 평화로운 해변은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유명한 곳으로, 이른 아침 일출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과, 한낮에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일몰시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사랑 받고 있는 곳이다.
크리스는 택시 안에서 위성전화기를 꺼내어 메시지 수신함을 열어보았다.
새로 전송되어 온 메시지는 아직 없었다. 지난번에 M이 보낸 메시지에 의하면, D-1 데이,
즉 5월 16일, 낮 12:30에 리펄스베이에서 땅콩을 전달하겠다고 했었다.
지금 시간은 12:12. 이제 5분 정도면 리펄스베이 도착할 수 있다.
M이 땅콩을 어떻게 전달해 주겠다는 건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리펄스베이에 도착한 크리스는 해변으로 향하는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해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거나 또는 이미 바닷물에 반쯤 몸을 적신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미 홍콩의 날씨는 섭씨 27∼28도를 오르내리는 초여름을 보이고 있다.
다수의 관광객들도 해변 모래사장과 해변 옆의 작은 바다공원 일대를 무리지어 몰려
다니고 있었다.
그 때 위성전화기가 울렸다.
시간은 12시20분.
수신 : C
발신 : M
내용 : 땅콩은 풍선장수가 팔고 있음. “발신 음어 : 화성까지 가는 풍선 하나 주세요.
수신 음어 : 안드로메다 성운까지 가는 풍선을 드리죠.”
끝.
(중략)
조준경 내부에는 목표물 조준을 쉽게 하기 위한 십자선이 있다.
이 십자선의 상하좌우에 조그만 눈금들이 있다.
조준을 할 때는 항상 십자선의 정중앙으로 조준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 따라서
달리해야 한다.
그 이유는 탄환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지만 조준선은 직선이다.
즉, 조준경으로 보는 조준점과 총알이 맞는 탄착점이 거리에 따라서 달라지게 되어있다.
보통 대부분의 라이플은 250m를 영점으로 한다. 이것은 조준경으로 보는 조준점과
실제 총알이 맞는 탄착점이 일치하는 거리가 250m라는 뜻이다.
그러나 크리스가 가지고 있는 미국의 레밍턴사에서 개발한 볼트액션 방식의 저격용 라이플
‘M24 SWS’는 영점이 600m로 되어 있다.
즉, 600m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저격할 경우에는 스코프의 십자선 정중앙에 맞추어 사격을
하면 되지만, 600m 이내의 목표물은 탄착점이 조준점보다 높기 때문에 십자선 위쪽의
눈금에 목표물을 맞추어 조준을 해야 한다.
조준 스코프의 십자선 상하좌우로는 각 5개씩의 큰 눈금과 5개의 작은 눈금, 즉 각각 10개씩의
미세한 눈금들이 있다.
이 눈금의 차는 사격 거리의 50m를 뜻한다.
지금 타격점의 예측 거리가 456m일 경우에는 영점의 600m보다 144m가 더 가까운 거리다.
이는 탄착점인 600m보다 약 150m가 더 가까운 거리이며, 이는 스코프의 눈금 3개를 말한다.
즉, 스코프 십자선 정중앙에서 상층 눈금 3개째인 ‘상3 눈금’에 목표물을 겨냥해서 쏘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스코프의 배율수에 따른 미세한 오차도 감안하여 사격하는 것이 진정한 스나이퍼의
실력이다.
크리스는 이 모든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정확하게 계산하여 사격할 수 있는 세계 정상급
스나이퍼이다.
또한, 풍향에 따라 조절해야 하는 좌우 눈금도 중요하다.
풍향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좌우 눈금도 조절해야 하는데, 탄환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바람은 풍력 9등급인 초속 23m 정도의 ‘큰 센바람’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풍력 10등급에 해당하는 초속 27m 정도의 ‘노대바람’이 불 때는 작은 나무들이 뽑히고
건물의 지붕이 날아가는 피해가 발생한다.
이 ‘노대바람’ 이상일 경우에는 조준경의 좌우 눈금을 적절히 조절해 주어야 한다.
사격거리에 따라 스코프의 좌우측 눈금을 조절해주어야 하는데, 영점이 600m이며, 600m
떨어져 있는 목표물을 조준할 경우, 우측에서 좌측으로 노대바람이 불 경우에는 좌측
‘좌3 눈금’에 목표물을 조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스코프의 좌우 눈금 1개가 탄착점의 거리 1Cm가 된다는 뜻이며, 좌우 눈금을 조절하지
않고 사격할 경우에는 조준점에서 왼쪽으로 3cm 떨어진 곳에 총알이 맞는다는 의미이다.
(생략된 부분 요약 줄거리)
크리스는 김영식을 첫 번째 기회에는 맞추지 못한다.
아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비슷한 복장의 군관들이 여섯명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김영식의 다음 행선지는 마카오임이 판명되고 크리스는 그쪽으로 가서 완벽한 준비를 하고
시간을 기다린다.
크리스는 타격점인 김영식의 뒷머리까지 거리가 750m였기 때문에 다시 조준경 십자로
아래쪽 세 번째 눈금인 ‘하3’으로 조준점을 이동하였다.
크리스가 가지고 있는 ‘M24-SWS’의 영점 거리는 600m이기 때문에 대상물을 십자로
정중앙에 조준했을 경우, 600m 거리에 있는 물체는 타격점과 조준점이 일치하지만,
600m보다 가까운 거리의 물체는 타격점이 조준점의 위쪽에 있으며, 600m보다 먼 거리는
타격점이 조준점보다 아래쪽에 있게 된다.
타겟 조준이 끝난 크리스는 숨을 멈추었다.
김영식이 대문을 들어서기 위해 문턱을 딛고 올라서고, 크리스가 타격점을 조준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으나, 실지로는 이 모든 것이 고작 1∼2초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마침내 크리스는 방아쇠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퍽- 하는 소음기의 바람소리가 들리면서 구경 7.62mm의 작지 않은 총알은
김영식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크리스가 방아쇠를 당기는 것과 동시에 문턱을 건너던 김영식의 몸이 잠시 기우뚱
거렸다.
크리스는 스코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김영식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으므로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크리스가 쏜 총알에 의한 충격으로 김영식이 기우뚱거린다고 보기에는 시간상으로 너무
빨랐다.
총알은 음속보다 빠르기는 하지만, 타격점과의 거리를 고려해 볼 때 방아쇠를 당기고
약 2초 정도가 지났을 때 김영식이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것이 맞다.
과연 크리스의 예측은 적중했다.
김영식이 문턱을 넘다가 발을 헛디뎌 잠시 기우뚱한 사이에 대문 안쪽에서 김영식을
영접하기 위해 서있던 여자의 가슴이 붉은 색으로 물들며 여자의 몸이 고무공처럼 갑자기
뒤로 튕겨져 나갔다.
크리스의 위치에서 본다면 김영식과 여자의 몸은 실루엣처럼 2/3 정도가 겹쳐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김영식이 총알을 맞지 않는다면 바로 김영식의 뒤쪽에 서있던 여자가 총알을 맞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려다 다시 중심을 잡은 김영식은 잠시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고,
대문 안쪽에서 여자 옆에 서있던 남자가 여자에게 급히 다가서고, 김영식의 옆에 있던
경호원이 막 대문으로 뛰어들었다.
경호원들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크리스로서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크리스는 즉시 김영식을 향해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그 때 김영식의 뒤에 서있던 경호원 2명이 사태를 알아차리고 김영식의 등을 뒤에서 얼싸
안으면서 가로막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은 VIP를 전혀 보호하지 못하는 수준 낮은 경호방법이다.
본래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VIP를 바닥에 주저앉히고 경호원들이 그 위를 몸으로 포개
엎어서 경호원들 스스로가 총알받이가 됨으로서 VIP를 지켜 내어야 하는 것이다.
크리스는 사람의 몸을 절대 겨냥하지 않는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외국을 방문할 때는 강력한 방탄복을 착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방탄복을 착용할 수 없을 경우에는 방탄차를 적절히 이용하거나 바티칸 교황처럼 방탄
유리상자 속에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법이다.
이런 사항들은 크리스가 한국 특수부대인 HID에서 수없이 훈련 받아온 것들이다.
아뭏든 김영식의 오른편 뒤쪽에 있던 경호원이 김영식의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김영식의 고개가 옆으로 꺾어지면서 모자가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왼쪽 뒤에 있던 경호원은 김영식의 뒷머리에서 피가 튀고, 얼굴 앞쪽으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선혈을 보고는 ‘윽!’하는 비명을 질렀다.
김영식은 앞쪽으로 곤두박질하듯이 머리를 땅에 박으며 꼬꾸라졌다.
4명의 경호원이 달려들어 김영식을 끌어안고 다급히 대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때 현관 안에서 2명의 남자들이 더 달려 나오고, 거리를 통제하던 마카오 경찰들이
다급히 별장 대문으로 뛰어왔다.
이미 절명한 김영식이 4명의 경호원에게 들려서 머리쪽부터 막 현관 안쪽으로 사라지기
직전, 크리스는 세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김영식의 턱 밑에서부터 정확히 이마 방향으로 총알이 관통하자, 김영식의 얼굴이
머리에서 뜯겨져 사라져버렸다.
머리에서 얼굴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크리스는 아직 온기를 간직한 총신을 그대로 가방 안에 던져 넣고 숨어있던 나무 등걸
밑에서 재빨리 빠져나왔다.
가슴은 뛰고 있었지만, 머리는 냉정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증거를 남겨서는 안된다.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크리스는 즉시 달리기 시작하였다.
지난번 사전답사 때와 같이 밀림처럼 우거진 숲을 헤치고 웨스턴리조트를 향해 전력
질주하였다.
(이하 생략)
목표물을 향하여 확인 사살의 방아쇠까지 당긴 이제 킬러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동작주(agent)의 행동결과가 대상물(object)에 영향을 주었으면 이야기는 일단 종결
부분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말하자면 대단원의 막을 내릴 순서(denoument)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고독한 자의 행로>에서의 이야기 진도는 이제 겨우 전체의 절반을 넘었을
뿐이다.
물리적인 셈법으로 보아도 전체가 7장으로 되어있는데 킬러의 저격 성공 장면은
4장의 중간 정도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이야기는 아직 반이나 남아있는 데 말이다.
이와 비슷한 구조가 단편 소설이지만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The Killers"이다.
올 앤더슨이라는 대상을 죽이러 온 두 명의 킬러는 그날따라 정해진 식당에 매일 저녁
6시면 나오던 저격대상이 그날따라 나오지 않자 묶어두었던 식당 종업원 세 명을
풀어주며 철수하고 만다.
이들 젊은 식당 종업원들은 끔찍한 사건이 자기네 식당에서 일어나지 않은 "행운"에
만족하고 다시는 그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자고 한다.
그러나 "닉" 만은 그런 자세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앤더슨이 기숙하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위험을 늦게나마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앤더슨은 그런 상황을 미리 알고서도 "벽을 대면하고" 꼼짝 없이
누워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죽음에 노출되어있는 자신의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이려는 나약한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소년 닉은 그런 인간의 자세에서 많은 충격을 받는다.
죽음을 대책 없이 받아들이는 자세라든지 홀로 고독하게 면벽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협의이든 광의이든 인간소외의 모습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고독한 자의 행로>에도 인간의 소외와 고독의 모습이 표출된다.
제목 자체에 "고독"이라는 어휘가 나오는 것은 메시지가 너무 설명적이라는 면에서는
"덜 문학적", 극단적으로는 "비문학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다.
그러나 "스릴과 서스펜스"의 미학을 이미 전제하고 시작된 다소 "대중적" 내용으로
상위 개념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전략을 채택한 바에야 제목이 감내해야할 다소
억울한 수준의식 같은 것도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시대의 문학(contemporary literature)"에서 거대담론과 대중 문학을
이분법적으로, 다시 말해서 대립이항으로 구별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미국의 대표적 서점으로 일컫는 "반즈 앤 노블"에 들어가면 이제는 순수문학이니
대중 문학이니 하는 구분이 사라진지 오래이다.
팬터지, 뉴 팬터지, 로맨스, 뉴 로맨스라는 이름의 분류항 속에 찬란하게 빛나는
수많은 저술들이 그리스 로마의 고전이나 우리시대의 고전과 나란히 눈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포스트 모던한 시대상에 맞추어 정전과 주변부 문학이 따로 없이 모두 해체의
자유로움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댄 브라운이나 조앤 롤링, 존 그리샴, 다양한 메디컬 소설들, 우리나라의 김진명과
그 유파들이 써낸 다양한 팩션 소설들이 모두 이러한 흐름과 연계가 되어있다 할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작품들의 특징은 특수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놀라울 정도라는
것이다.
<고독한 자의 행로>를 쓴 제임스 클락이 보여준 킬러 세계및 지리상의 인문, 자연적
지식은 어지간한 전문가의 뺨을 칠만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찬은 아니리라.
최근 소설의 트렌드가 이토록 전문화 되고 있는 현상을 두고서 오죽하면 소설이
쓰여졌다기 보다 제작되었다는 표현이 나오고 소위 "글 공장", "소설 공장"의 존재가
존재 유무에 관한 논란 단계는 이미 지났고 존재의 윤리성에 대하여 시비가 붙을까---.
제임스 클락은 인간 소외의 문제제기에 관한 은밀한 전략 구사에도 능숙함을 보이고
있다.
세븐틴 마일즈 도로상에서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한국 처녀와의 조우라던가 그중에서도
산타크루즈에서 식사를 하게되는 영희를 통하여 그녀가 어학 연수를 온 이유는 멋진
해안에서 자살을 하려는 것이었다는 인간 소외 의식의 발로 장면이 또한 그러하다.
이런 작품구성이 너무나 눈에 띄는 전략의 구사에 다름아닌지 치밀한 작가 정신인지는
독자 반응 비평에 맡겨보고 싶다.
이제 작가로서 입신하려는 제임스 클락에게 끝으로 주문하고 싶은 필수 요소가 있다.
꼼꼼하게 쓴 매우 재미있고 잘 짜여 진 소설 작품이 그만큼 높은 수준의 노력을 기우린
점에 비해서는 사상과 철학과 휴먼한 정서가 다소 미흡함을 느낀다.
물론 그리스 로마의 신화 이래 사람 사는 방정식이 제신의 거동에서 한 치도 더 나아갈
수가 없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한다면, 이 작가가 이번에 공을 들여서 쌓은 작품의
품질에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는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제신의 사유와 행적을 훌쩍 뛰어넘어 새로운 경지를 가꿀 작가가 도래하였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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