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일간, 뉴욕-뉴저지에서 지내다가 피츠버그로 돌아왔다.
돌아온 다음날 아침, 숲길로 산책을 나가려는데 찬 공기가 느껴져서
반바지를 벗고 블루진 온바지를 입었다.
달력을 보니 절기로 "처서"가 지나가고 있었다.
가을이 오기 전에 여름 일지를 정리해본다.
# 1. 플러싱의 변모
2006년도에 끝으로 가 보았던 플러싱은 당시만해도 완전한 "한인타운"이었다.
여기 사시던 어떤 겸손한 문인의 말을 빌리자면 조금 미안한 표현이지만
"70년대의 청량리" 같다고 하였던가,
대략 그런 분위기의 동네였다.
이제 4년만에 다시 와본 이곳은 완전히 "차이나 타운"이 되어버려서 간담이
서늘하였다.
물론 그 사이에 그런 변화의 물결을 걱정한 한인 교민사회의 목소리는
끊임이 없었지만, 하여간 결과는 이런 모양이었다.
아니 앞으로 더욱 이곳은 격변하여 맨해튼의 차이나 타운 보다 더한 중국인의
거리가 될 것같다.
이미 이곳 시장은 중국계 미국인이 선출되었고 도심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다.
우리가 유태인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낼때 중국사람들은 "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차례를 기다리며 한 사람씩 건물을 샀다고 한다.
친구들과의 만남 장소를 이곳으로 하여서 오랜만에 잘 와보았다.
놀라운 중국계의 진출이다.
미국 경제의 불황이라는 말이 전혀 실감되지 않는다.
이곳에 살거나 비즈니스를 하는 중국계 미국인 못지않게
중국 관광객들의 물결이 또한 대단하다.
<위-아래> 사진이 4년 반의 변모를 보여준다.
위에서 보는 골목 광경은 2006년도에 찍은 아래 사진과 같은 장소,
7번 전철 종점 부근이다.
이때는 한글 간판 일색이었다.
이제는 한글이 가물에 콩나듯하다.
도심 경마장 풍경
논란이 되어온 공용 주차장
랜드 마크가 되어왔던 고려당 앞길도 한적하게 느껴진다.
플러싱 거리가 모두 붐비지는 않는다.
# 2. 금강산에서의 해후
오랜만에 친구 몇사람과 이곳 한국 식당 "금강산"에서 만났다.
반세기 만의 해후도 있었다.
악동 시절을 반추하는 대화는 옆에서 듣고만 있어도 재미있고 신이났다.
이 다음날 또한 친구는 바쁜 중에도 책방에서 만날 약속을 하여 내게 책을 선물하고
바쁜 저녁을 함께하였다.
항상 따뜻한 정을 잊지 못하겠다.
몸이 불편하여 만나지 못한 또 다른 친구는 다음을 기약하였다.
우리가 모두 고물이다.
빠른 쾌유를 빌었다.
# 3. 손자 병법
손자가 다니는 쿵푸 도장에 들러보았다.
태권도가 아니어서 좀 서운하였지만 우리의 맹세처럼 이-얼-산-시의 순서로
크게 외치는 소리에 어른을 공경하는 구절이 들어있어서 안도하였다.
손자 녀석은 우리를 의식하였는지, 하나-둘-셋-넷 하고 우리말로 순서를 외쳐서
웃음을 자아내었다.
이날 오후에는 한인 어린이들로 구성된 여름 학교 수료식에도 가보았다.
여름 캠프 수료식이라니 좀 우스웠으나 없는것 보다 좋았다.
허드슨 강변의 집으로 돌아와서 황혼의 마천루를 한 컷하였다.
<리포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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